진흙속의연꽃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담마다사 이병욱 2008. 7. 29. 10:01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전경 두명이 시위대에 둘러 쌓여 옷이 벗겨지고 폭행을 당했다고 보수신문에서 보도 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설과 칼럼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부각 하면서 공권력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질타 한다.

 

3달째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되기 까지는 계속 될 것이고 향후5년 내내 지속 될지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보수신문에서 폭행사건에 대한 의제를 설정하였다. 이는 추후에 있을 촛불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성 진압을 예고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다가 누군가가 죽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 하겠는가. 불똥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 되기 쉽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번쯤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번쯤 폭행을 당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억울하게 당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폭행을 당하고 나면 대부분 당한 사실을 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속에만 묻어 두는 것이다. 알려 보았자 챙피하다는 느낌이 앞서고 득이 될게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폭행을 당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나면 사진을 찍지 않는 한 그 증거가 남아 있지 않는다. 단지 그런 행위만 있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그 순간에만 존재하였던 하나의 행위인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장소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어떤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행위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일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범죄를 저지른 순간이 마치 타자가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여 격분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 일어 난 후이다. 그래서 내 안의 어떤 다른 놈이 저질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종의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선한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악한 마음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격정적이고 격분하였을 때 마음을 진정 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좋아함과 싫어함이 너무나 분명한 사람이 있다. 한번 좋으면 그 누가 무어라 해도 좋은 면만 보이고 좋게만 평가 한다. 반면에 한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좀처럼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배 하는 것이다. 과거에 나에 대하여 서운하고 섭섭하게 대했던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인 폭행이든 언어적 폭행이든 어떤 폭력적으로 당한 감정도 깊게 남아 있어서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을 생각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미워지는 것이다. 그런 미움의 감정이 들때 중단 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그대로 멈춰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나 이유없이 미움의 감정이 들 때 가장 효과적인 감정조절 수단은 그 자리에서 멈추라는 것이다. 어린이들 노래중에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라는 구절이 있다. 노래 가사와 같이 그자리에서 그대로 멈추고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화내는 나를 바라보고 미원하는 나를 응시하라고 이야기 한다. 마치 제3자가 보듯이 하는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것이 '지관(止觀)'수행법이다. 즉 생각을 멈추고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용어로는 '사마타''삼마디'라고 한다. 선정수행의 초기 단계라고 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지혜가 열리고 동시에 자비심이 생긴다고 한다.

 

화를 잘내고 잘 미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아상(我相)'이 강함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위주로 하다 보니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고 뜬금없이 미워 하고 험담을 하게 된다. 일종의 악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또 한 부류의 사람은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있다면 끝까지 밀어 붙여서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대체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78. 악한 사람을 가까이 말라.

     정신 연령이 낮은 사람을

     가까이 말라.

     그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사람,

     그리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207. 어리석은  자와 함께 가지 말라

     거기 원치 않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원수와 함께 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거기 기쁨은 넘쳐 강물로 흐른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악한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멀라 하라는 것이다. 악한 사람을 교화시킨다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준다는 이야기는 없다. 단지 이들을 멀리하고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말이다. 악한사람 하고 같이 있어 보았자 그들과 같아 질 뿐이고 어리석은 사람들하고 있어 보았자 그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어서 마치 원수와 사는 것 마냥 고통 스럽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악한사람과 어리석은 사람들을 상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하고 같이 있어 보았자 오해만 받을 뿐이다. 이미 아상과 아집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곧이 곧대로 먹혀 들어 가지 않는다. 결국에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이들과 같이 있음으로 해서 폭행을 하고 폭행을 당하는 신업을 짖게 되고 미워하고 싫어 하는 감정으로서 구업을 짖게 되는 것이다. 대신에 마음이 넉넉한 사람, 존경 할 수 있는 사람, 현명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쁨이 강물처럼 넘쳐 흐른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대화 하지 않아도 즐겁고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을 잠시 휴가 보내는 것

 

문제는 이런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하고 부대끼며 살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다. 최선의 방법은 이들을 멀리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다 끊을 수는 없다.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일단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들이므로 이들을 설득 한다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바로 먼저 언급한 잠깐 멈추기이다. 화가 치밀어 오는 순간 미움이 밀물처럼 몰려 올때 잠깐 마음을 외출 시키는 것이다. 냉각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할때 협상을 중단 하고 15일간 냉각기를 갖는다. 이것은 법으로도 정해져 있다. 냉각기를 거치고 나면 의외로 현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극단으로 치닫던 노사가 극적인 화해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거나 화가 치밀어 오를때 일종의 냉각기를 갖자는 것이다.

 

악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상대 하지 않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끼리 사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악한 사람하고 부딪치기 싫어도  접촉해야 하고 미운 사람을 만나기 싫어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아집과 고집에 부딪쳐야 된다. 그런 경계에 부딪쳤을 때 맞 받아 친다면 똑같은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런 때에는 마음을 잠시 휴가 보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2008-07-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