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할복과 소신공양, 윤회 하면서 흘린 피와 사대양에 있는 물 가운데

담마다사 이병욱 2008. 8. 31. 00:14

 

 

 

할복과 소신공양, 윤회 하면서 흘린 피와 사대양에 있는 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까

 

 

할복할 때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닌(介錯人)'

 

'료오마가 간다'는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우는 시바료타로의 소설이다. 막부 말기에 활약한 사카모토 료오마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제국의 아침' '영웅의 조건'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되어 나온 바 있다.  이 소설은 에도 막부 말기의 무사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오늘날 현에 해당 하는 번국이 수백개 있었는데 그 번국의 번주는 해당 지역의 사법권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번주의 명에 반드시 복종 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일생현명' 이라는 말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이 소설에 할복 하는 장면이 나온다. 번주의 명을 어겨서 할복을 명 받으면 시행 해야 한다. 그런데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면 금방 죽지 않는다. 고통 스러운 표정을 짖고 서서히 죽어 갈 것이다. 그래서 무사 답게 죽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 한 것이다. 즉 옆에서 목을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을 쳐주는 사람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 이거나 친척이라는 것이다.

 

할복은 매우 엄정한 의식 속에서 진행된다. 먼저 자신이 칼을 두손으로 잡고 힘껏 배에 꼽는다. 그리고 곧바로 오른쪽으로 젖힌다. 그 순간 '가이샤쿠닌(介錯人)' 즉 목을 쳐주는 사람은 '미안 하다'고 말하고 힘껏 칼을 내리 치는 것이다. 소설 속에 묘사 되는 장면은 단 한번에 목을 베어야 고이 잘 보내 주는 것이라 한다. 만일 빗나가 다른 곳을 치면 예의에 어긋 난 다는 것이다.

 

베트남 스님의 소신공양

 

삼보스님이 할복했다고 한다. 다행이 일찍 일찍 발견 되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명박정부의 불교탄압에 항의 하고 그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할복 했다고 한다. 바로 이틀 전에 수십만명이 모여서 변화를 촉구 하였지만 들은채 만채 하고 오히려 기독교 목사들로 이루어진 뉴라이트운동연합을 집단으로 초청해서 만찬을 하면서 지지를 당부 하는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고 한다.

 

삼보스님은 10.27법난의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그 때 당시 상원사 주지로 있었는데 신군부에 끌려 가서 삼청교육대 까지 갔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 하지 못한 할복을 두고 일부에서는 자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 이든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원하는 사항이 이루어 지도록 항의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항의 하는 방법은 더 이상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쓰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불교에서는 항의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방법은 소신공양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 스님의 소신공양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온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겨서 죽어가는 모습은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스님은 그 때 당시 베트남의 고승인 '틱 쾅 둑(Thin Quang Duc)'스님이다. 스님은 베트남 전쟁과 정부의 반불교정책에 항거 하기 위하여 소신공양 즉 분신을 선택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의 베트남 전쟁의 부당성이 전세계적으로 알려 지게 되고 미국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으며 전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을 촉발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베트남의 고승인 '틱 쾅 둑(Thin Quang Duc)'스님

 

 

 

두려울 것이 없는 스님들

 

범불교도대회가 수십만이 참여 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열렸다. 평일임에도 불구 하고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스님과 신도들로 인하여 서울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한결같이 외치는 구호는 종교차별과 불교탄압에 관한 사항이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보살이 언제 이런 구호를 외쳐 보았을까 살아 생전에 처음 데모에 참가 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생각 된다. 이렇게 외치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반응이 없다면 문제는 심각해 질 소지가 있다.

 

일반 사회 문제도 아니고 종교문제는 그 폭발력을 상상하기기 쉽지 않다. 언제 어떤 상황으로 발전 될 지 예측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무소유를 지향하고 인연을 끊고 사는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살고 죽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이 아니라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이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불교적인 관점이다. 살아 있으나 죽어 있으나 똑 같다는 말이다. 삶과 죽음이 항상 공존 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처자식이 있고 재산을 소유 하고 있다면 할복이나 소신공양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은 나 올 수 없을 것이다.

 

 

 

 

8.27 범불교도대회 

 

 

 

윤회하면서 흘린 피와 사대양에 있는 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불교에서는 윤회와 전생을 인정 한다. 인생을 단 한번 살다가 가는 원타임으로 보지 않는다. 성불 하는 그날까지는 수천억겁을 이별에서 저별로 윤회해 왔을 것이다. 선행을 많이 지어서 천상에도 태어 났을 수도 있고 악행을 많이 해서 지옥에 떨어졌기도 했을 것이다. 마치 두레박이 위 아래로 왔다 갔다 하듯이 3계와 6도를 수도 없이 왕래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천업겁 동안 살아 오면서 업을 짖는다. 그 업에 대한 설명을 잘 표현한 글이 있다. 전재성 박사의 '왜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야 하는가

(http://blog.daum.net/bolee591/14952281)'에 잘 나와 있다. 그 글을 보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 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와 사대양에 있는 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욱 많겠는가라는 말이 나온다. 사대양의 물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수천억겁동안 윤회 하면서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았음을 표현한 내용이다.  아함경에 나와 있는 경전 한가운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인 뭇 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가 없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와 사대양에 있는 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욱 많겠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가르침으로 미루어보건대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훌륭하다. 수행승들이여, 훌륭하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가르침을 제대로 잘 알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소로 태어나 소가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물소로 태어나 물소가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양으로 태어나 양이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염소로 태어나 염소가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사슴으로 태어나 사슴이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닭으로 태어나 닭이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돼지로 태어나 돼지가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도둑으로[7] 살면서 마을을 약탈하다 사로잡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도둑으로 살면서 길섶에서 약탈하다 사로잡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도둑으로 살면서 부녀자를 약탈하다가 사로잡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가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가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대들은 괴로움을 맛보고 아픔을 맛보고 허탈을 맛보고 무덤을 증대시켰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이제 그대들은 모든 지어진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초연하기에 충분하며 해탈하기에 충분하다.

 

 

 

윤회 하면서 소나 돼지나 닭으로 태어 났을 수 있다. 그 때 흘린 피가 사대양의 물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다. 설령 사람으로 태어 났다 할지라도 도둑질 하다 잡혀 목이 잘리거나 부녀자를 겁탈하여 잡혀 목이 잘린 경우도 그 흘린 피가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조계사 대웅전의 석가모니부처님

 

 

 

소신공양 하는 스님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인 '자타카'를 보면 동물로 태어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모두다 보살행을 실천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토끼로 태어 났지만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새끼를 가진 맹수에게 기꺼이 한 몸 바쳐 한끼 식사를 제공 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수억겁을 윤회 하면서 보살행을 실천한 결과 공덕이 쌓이고 쌓여서 성불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현정부와 불교계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기독교정부라고 노골적으로 비판 한다. 그리고 종교차별을 하고 종교편향을 한다고 성토 한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은 눈치이다. 이에 대하여 불교계에서는 그 수위를 점차 높여 가겠다고 말한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는 정부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생이 단 한번으로 끝나는 원타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이번생도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자타카에 나오는 토끼의 자기희생이 결국 한 동물의 새끼를 살렸듯이 소신공양 하는 스님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불교계에서 요구 하는 주장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08-08-3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