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계의 새로운 비폭력 투쟁, 오체투지 또는 '전체투지(全體投地)'

담마다사 이병욱 2008. 9. 1. 10:33

 

 

 

불교계의 새로운 비폭력 투쟁,  오체투지 또는 '전체투지(全體投地)'

 

 

 

힘이 넘치면

 

모의교도소실험을 TV로 보았다. 평범한 자원자를 모집하여 간수와 죄수역할을 자원 하게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진행 되지만 차츰 틀이 잡혀져 간다. 간수는 간수의 역할에 충실 하게 되고 죄수는 자신이 죄수가 된 것 같이 행동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수는 자신의 권한을 과도 하게 사용하여 점점 더 죄수를 통제 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트집잡아서 주의를 주는가 하면 반항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수감한다. 그러면서 간수와 죄수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간다.

 

군대에 들어가면 신병훈련을 받게 된다. 훈련병은 피교육자로 전락 하고 훈련을 시키는 조교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도 조교의  과도한 권한 남용으로 인하여 마음속으로 집단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군대 뿐만 아니라 기업체 입사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선배사원들로 구성된 교육자는 마치 군대의 신병훈련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에도 과도한 권한 남용으로 집단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일부는 퇴소 하는 불상사 까지 발생 하게 된다.

 

힘이 넘치면 그 과도한 힘을 행사 하고 싶어 한다. 하다 못해 작은 완장이라도 차면 그 역할 이상의 힘을 행사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원성을 사게 된다. 촛불시위로 인하여 구금된 여성에게 브레지어를 벗으라고 하는 경우도 힘의 남용이라고 볼 수 있다.

 

'폭력프레임'에 걸려든 촛불

 

어떤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에 들어 오면 처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데 그 법이라는 것이 힘 있는 사람에게 자의적으로 편으로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면 공권력행사 차원을 넘어 폭력에 가깝다. 그리고 넘어 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범케이스로 법을 적용 한다. 그러면 함부로 그 선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을 강요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사그라 들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의 촛불은 꺼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대규모의 경찰특공대의 창설과 무자비한 진압의 효과도 클 것이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시민에게 중무장한 경찰이 탱크와 같은 물대포를 동원하고 가게 안까지 추적 하여 잡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종의 과도한 힘의 남용이다. 이와 더불어 폭력을 유도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폭도로 몰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국민과 시위대를 분리 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인 것이다. 이것을 '폭력프레임'이라고 한다. 평화적인 시위 참가자를 폭력집단으로 몰아서 격리 하는 전략이다. 보수신문에서 연일 기사와 칼럼과 사설에서 쓴 결과 상당히 먹혀 들어 가는 추세이다.

 

범불교도대회, 폭력프레임에 걸려 들지 않으려면

 

8.27 범불교도대회가 열렸다. 그 기세가 세서 그럴까 아직까지 이에 대하여 비판적인 기사는 보지 못하였다. 명백히 현정부를 비판 하고 반대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 하고 보수신문은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오히려 종교편향과 종교차별의 사례를 열거 하면서 부각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 마음은 다른데 있음에 틀림없다. 힘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논조는 돌변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기세가 세냐에 따라 추는 기울어 질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내놓고 있지 않는 정부는 무언가 내심 기대 하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 바로 '폭력프레임'이다. 폭력을 유도 하여 불교를 폭력집단으로 매도 하는 것이다. 촛불시위때 효과적으로 써 먹던 수법을 다시 활용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신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폭력프레임이 성공 하는 순간 불교는 국민들로 부터 고립이 되고 대신에 정부의 법집행의 정당성은 확보 될 것이다.

 

불교계는 정부와 보수신문의 폭력프레임에 넘어 가지 말아야 한다. 쇠파이프를 휘두른다거나 돌맹이를 던지는 순간 대반격을 당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불교계의 너무나 큰 상처를 입히기 쉽다. 비폭력적인 방법을 동원 해야 한다. 시위를 하되 그들의 폭력유도에 말려 들지 말아야 하고 프락치들의 준동도 경계해야 한다.

 

 

 

 

 

8.27 범불교도대회에서 절하고 있는 노보살

 

 

 

불교계의 새로운 비폭력 투쟁,  오체투지 또는 '전체투지(全體投地)'

 

비폭력투쟁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희생이다. 수경스님의 오체투지 같은 것이다. 그것도 천주교신부와 함께 하는 오체투지는 타종교와의 연대를 강화 하면서 효과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이다.

 

불교의 시위 특징은 요란한 구호 보다 참회 하면서 하는 특징이 있다. 시국법회 때 보는 108배 참회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밖으로 표출 하기 보다 안으로 자기 정화 하면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불교의 훌륭한 시위 수단이다. 그 보다 더 발전 된 것이 3보일배 투쟁이다. 이미 일반화된 이 방식은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 하고 있다. 정부나 경찰의 폭력프레임에 말려 들지 않겠다는 발로로도 여겨진다. 3보 일보 보다 더 극한 적인 투쟁방식이 오체투지라 볼 수 있다. 흔히 티벳에서 보는 절하는 방식이다. 사지와 머리를 땅바닥에 댄다고 해서 '전체투지(全體投地)'라고도 말한다. 자신의 온 몸을 땅바닥에 던져서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것이다. 어쩌면 죽음도 불사 할 수 있을 정도의 신념이 있어야만 가능 할 것이다. 죽음을 각오 하고 진행 하는 오체투지에 폭력프레임이 걸려 들 여지는 없다.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싸우는 오체투지야 말로 비폭력투쟁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낼 것이다.

 

 

 

200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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