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법구경을 보며 마음가라 앉히기

담마다사 이병욱 2008. 9. 4. 12:11

 

 

법구경을 보며 마음가라 앉히기

 

 

 

 

 

 

 

모욕을 당했을 때

 

격정에 사로 잡힐 때가 있다. 감정이 매우 격렬해 지는 것이다. 이성은 마비 되고 그 자리에 감정이 차지 한다. 그 동안 이성에 억눌려 있었던 자신도 알아 차리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발견 하게 되는 것이다.

 

내안의 또 다른 나는 어떤 계기가 되면 발현 된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 하였던 모든 것들이 차곡 차곡 쌓여서 인연이 닿으면 표출 되는 것이다. 좋았던 감정도 있지만 기분이 나빳던 감정도 있을 수 있고 숨기고 싶은 감정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부족 하다고 생각 하는 것은 모두 콤플렉스가 된다. 주로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가장  많을 것이다. 키가 작아서 몸이 너무 뚱뚱해서 눈이 작아서..등 남들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은 모두 열등의식에 편입된다. 이런 의식을 표출 하려고 하지 않지만 누군가 자신의 열등의식에 불을 댕겼을 때 폭발해 버린다. 즉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졌을 때이다.

 

격정이 지나가고 나면

 

한바탕 격정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보는 자신의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한바탕 회로리 바람이 불어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과 같다.

 

격정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면 미쳐 날 뛰게 된다. 그리고 심한 상처를 받게 된다. 부끄럽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바탕 휩쓸고 간 격정과 분노로 인하여 만싱창이가 되어 버린 몸과 마음은 의지 할 곳을 찾게 된다. 지혜로운 이가 있어서 가까이 하면 좋겠지만 평소에 그런 사람을 사귀어 놓지 않았다면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럴 때 차분하게 음악도 들어 보고 경전을 떠 들어 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 지게 된다. 그 사이에 새로운 이슈가 발생하여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대로 멈추기

 

그 때 당시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 하고 격정에 휘말리지만 흐르는 세월과 함께 떠 밀려서 기억의 저편으로 이동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계기만 되면 어김 없이 다시 발현 하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악순환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분노와 격정에서 해방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선지식들은 수행을 통해서 극복 하라고 말한다. 즉 분노가 발생하였을 때 격정에 휩싸였을 때 그 다음이 중요 한 것이다. 보통 참으로 라고 말한다. 세번만 참으면 살인도 비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인욕'한다고 말한다. 참고 인내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바라밀을 붙이면 '인욕바라밀'이 된다. 단순히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금강경의 가리왕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또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고 욕보인다 할지라도 그 것은 결국 나의 전생의 죄업이 탕감 되기 때문에 받아 들이라고 말한다.

 

인욕바라밀을 다른 말로 표현 하는 멈추기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즉각적인 대응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다. 한 탬포 늦추는 것이다. 그러면 그 틈을 헤집고 또 다른 생각이 출현 하는 것이다. 격정과 분노는 내면 낼 수록 또 다른 격정과 분노를 연이어 불러 낸다. 그런데 잠시 멈칫하면 그 짧은 순간에 또 다른 수많은 생각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한 탬포 늦추고 잠시 침묵함에 따라 정신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인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이을 실천하는 인욕바라밀은 더더욱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도 쉽지 않다. 거기에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바라 보라고 까지 한다. 이 정도 되면 범부의 단계를 넘어 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경전  '법구경'

 

옆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인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경전을 떠들어 보는 것이다. 이미 수천년동안 사람의 마음을 사라잡았던 말 들이기 때문에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을 구애 받지 않는다. 그런 좋은 경전중의 하나가 법구경이다.

 

 

103. 전장(戰場)에 나가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기는 그것보다도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거니.

 

 

전쟁에 나가 백만명을 무찌르는 것 보다 자기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을 가장 위대한 승리하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어떤 행위를 하고 난 다음

 

어떤 행위를 하고 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게 되어 있다. 행위를 했는데 후회를 하고 있다면 확실히 잘못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67. 어떤 행위를 하고 난 다음

거기 후회하는 마음이 뒤따른다면

그 행위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

그리고 이 잘못에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쓰디쓴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68. 그러나 어떤 행위를 하고 난 다음에도

거기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없다면

그행위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리고 이 착한 행위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더없는 행복감에 젖는다.

 

 

행위를 하고 났어도 후회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잘 못이 없고 오히려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 다는 것이다.

 

왜 어리석은 사람과 가까이 하면 안 되는가

 

분노와 격정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만남이 중요하다. 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정신연령이 낮은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경전은 이야기한다. 대신에 지혜로운 사람과 사귀라고 말한다.

 

 

206. 지혜로운 이를 만나는 것은 축복이니

그의 곁에 살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도록 하라.

어리석은 자를 만나지 않음은

기쁨이다. 영원한 기쁨이다.

 

 

207. 어리석은  자와 함께 가지 말라

거기 원치 않는 고통이 따르게 된다.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원수와 함께 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거기 기쁨은 넘쳐 강물로 흐른다.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있는 다는 것은 고통이고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매우 욕심이 많고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면 분노의 마음이 일고 격정적인 감정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울리지 말라는 것이다. 반면에 현명한 사람들 즉 지혜로운 사람들은 덜 탐욕적이고 덜 즉흥적이고 덜 감각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옆에 있는 것 만 해도 향내가 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현명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 기쁨이 강물처럼 흐른다고 표현 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현명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현명한 사람들은 집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쾌락을 추구 하지도 않고 즐겁거나 괴로운 일을 당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수행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와 함께 있으면 향내가 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83. 현명한 이는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눈 먼 쾌락만을

뒤쫓지도 않는다.

즐거운 일을 당해도 괴로운일을 당해도

그는 전혀 거기 흔들리지 않는다.

 

 

미래세의 어느 누군가 이 경전을 본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부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 가는 사람들이다. 오욕락을 추구 하며 때로는 분노 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먼 미래 보다 당장 눈앞의 이해 관계에 민감 하게 작용 하는 것도 범부의 특징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짐승들의 본능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짐승과도 같은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현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이들을 현명한 사람 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오욕락을 즐기기 보다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다. 현인 위에 성인이 있다. 부처님과 같이 인류의 스승과 같은 사람들이다. 범부 보다 못한 사람들도 있다. 보통 잡인 또는 잡배, 잡놈이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이들은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 사기, 강간등 오로지 자기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들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경전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범부와 잡인을 포함해서 지칭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니 현인들이 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전은 말한다.

 

세상을 살아 가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다.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부딪치며 살아 간다. 때로는 좌절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 하고 격정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워 나간다. 인류가 예전 부터 해 오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반복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르침이 필요하다. 그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종교이다. 이미 수천년동안 거쳐 왔으므로 검증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수행의 종교인 불교 경전은 보배와 같다. 법구경에 나와 있는 내용은 언제 보아도 보기 좋다. 이런 감정은 천년전에도 이천년전에도 느꼇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또 천년후에 이천년 후에 미래세의 어느 누군가 이 경전을 보고 똑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전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관통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08-09-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