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부처, 통곡하다", 현대판 '억불숭기(抑佛崇基)'정책과 개신교의 도발

담마다사 이병욱 2008. 9. 6. 18:11

 

 

"부처, 통곡하다", 현대판 '억불숭기(抑佛崇基)'정책과 개신교의 도발

 

 

설마가 현실화

 

경철청장사퇴와 대통령의 사과가 이번 갈등의 최대쟁점이다. 둘다 들어 줄 수 도 있고 둘 다 들어 주지 않을 수 도 있다. 여기에다 다른 쟁점이 종교차별금지입법과 수배해제 문제까지 더하면 그 경우의 수는 훨씬 많아 진다.

 

8.27 범불교도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런 요구는 거절 되었고 급기야 불교역사상 최대의 인파가 모인 행사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설마 했는데 설마가 현실화 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음인지 사과 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여야 문제와 같이 정치논리로 생각 하는 것이다.

 

 

 

 

 

8.27 범불교도대회

 

 

 

현대판 ' 억불숭기(抑佛崇基)'정책

 

불교에 이판사판 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의 뜻은 사찰을 존속시키기 위한 이판승과 불법의 맥을 잇기 위한 사판승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정적으로 의미로 쓰여 끝장을 보자는 이야기로 쓰인다. 불교계는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 하고 있다. 이번에 밀리면 끝장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도대회를 열고 결집 하는 것도 일종의 생존권 차원이다.

 

개신교를 믿는 인사들은 공공연히 공무원 복음화를 이야기 하고 스님을 개종시키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정일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특히 현정부 들어 와서 심화된 느낌이다. 오죽 하면 불교계에서 현정부를 '개신교공화국'이라고 했겠는가.

 

현정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개신교로 이루어져 있다. 대통령부터 말단에 이르기 까지 개신교 일색이다. 청와대에 목사가 근무 하는가 하면 개신교단체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한다. 공무원사회는 상명하복사회이다. 잘리지 않으려면 지시한대로 해야 한다. 그 보다 더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서 먼저 한다. 공무원을 전부 복음화 하겠다든가 경찰복음에 앞장서겠다고 하는 말한마디 하면 공무원들은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 공무원이 개신교신자화 되면 불교계는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불교를 믿어도 자신 있게 불교를 믿는다고 말을 할 수가 없고 불교를 믿으면서 공무원에 도전 하는 것은 포기 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판 '억불숭기'정책이 되는 것이다.

 

정동주의 "부처, 통곡하다"

 

불교는 조선왕조 500년간 탄압을 받아 왔다. 왕조가 바뀌면서 통치 이데올로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개국 시킨 공신인 정도전은 '불씨잡변'이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불씨로 부른 것이다. 그 만큼 불교를 비하하고 불교탄압에 앞장 섰던 인물이다. 조선왕조의 불교탄압을 고발한 책으로는 정동주의 "부처, 통곡하다"가 있다. 부제로는 '조선왕조의 잔혹한 불교탄압史'이다. 이책의 내용의 요약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주 남산 삼릉계곡에서 머리와 손발이 잘려 나간 여래좌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사갓계곡에서는 여래입상이 두 동강 난 채 처박혀 있었고, 약수골 여래좌상의 머리도 잘려 나간 채 좌대는 거칠게 파헤쳐져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용장계곡 용장사 절터 삼륜대 위에 모셔진 여래좌상의 머리도 누군가에 의하여 모질게 잘려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웃고 있는 부처의 목을 잘랐는가. 소설가 정동주는 조선왕조 500년간 계속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이 당시 절을 망하게 했고, 승려들을 혹독한 부역에 내몰았으며 궁극적으로는 불교 자체를 없애려 했다고 주장한다. 고려시대 불교는 국가 제도와 사회 습속(習俗)의 골격이었으나 화려함과 장엄함을 지나치게 추구해 고려의 멸망을 초래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에 불교는 사라져야 할 지난 시대의 이데올로기이자 극복해야 할 모순으로 탄압받게 됐다는 것. 저자는 조선 유생들이 불교를 근원적으로 말살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승려가 되려는 사람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허가 없이 승려가 된 사람은 구속해 중벌로 다스렸다. 그래도 승려의 수가 계속 늘어나자 사찰과 승려에게 수백 종류의 부역을 짊어지게 했다. 정조 시절 전북 순창군에 있는 사찰들에 부과된 종이 부역은 7000(). 한 속이 10장으로 모두 7만장이 되는 셈이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종이를 만드는 작업은 시간과 일손이 꽤나 드는 일이었다. 1780, 90년대 과도한 부역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승려도 남지 않게 된 절이 속출했다. 사찰에도 강도 높은 탄압이 가해졌다. △절을 기생방으로 만들고, 비구니를 기생으로 삼아라(원각사) △절에 조상의 묘를 세우라(회암사) △부역을 감당할 수 없다면 절이라도 바쳐라(범어사, 불갑사) 불교 억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불상이 땀을 흘리거나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등 믿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변고’라 불리는 일이 생기면 유생들은 불상을 물에 던져 넣거나 불에 태우고 또는 목을 쳐서 불상의 머리를 떼어냈다. 불교는 인간을 현혹시켜 나라를 어지럽힌 죄를 지었으므로 사형에 처한다는 뜻이었다. 목이 없는 불상만 버젓이 그 자리에 남겨 둔 것은 부처를 공경하고 따르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협박이자 시위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불교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관리, 각종 사건과 통계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썼다. 이 밖에 조선시대 유생들이 쓴 ‘부처를 죽이라’는 107편의 상소문을 한 장()에 묶어 실었다.

(정동주의 "부처, 통곡하다"에서)

 

 

조선왕조 500년은 '억불숭유'정책으로 일관 하여 왔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 한다는 것이 기조이다. 현대에 들어 와서 ''자가 단지 ''자로 바뀌어 '억불숭기'정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군의 진주와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다 보니 미국의 종교인 개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건국60년의 의미를 강조 하는 것도 뉴라이트계열의 목사들이다. 건국하는데 있어서 한경직, 김활란, 임영신과 같은 기독인들이 역할이 컷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건국일 행사시에 기독교식으로 했다는 것이고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국무회의 할때 기도 부터 하고 회의에 들어 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뉴라이트가 건국일을 진정한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불교가 조선왕조 500년동안 살아 남은 이유

 

불교는 조선왕조 500년동안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하였다. 혹심한 탄압에도 불구 하고 법맥이 유지 된 것은 산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행의 종교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만일 교회 같이 도시에만 절이 있었다면 그리고 신도들만 바라보고 사는 생활인이었다면 진작에 맥이 끊어 졌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유지 된 것은 독특한 승가사회와 수행의 전통, 그리고 그 승가와 수행을 유지 시켜준 산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하지 않았을까.

 

 

 

 

깊은 산중에 있는 산사.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

 

 

 

요즘은 왠만한 산사는 아무리 깊숙히 있어도 도로가 나 있어서 접근 하기 쉽다. 아직도 도로가 나 있지 않아서 산길을 몇십분 걸어 올라 가야 볼 수 있는 전통사찰도 많이 있다. 교통이 발달 되지 않았던 그 옛날에는 깊숙한 산중에 있었던 산사에 올라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500년간 탄압을 했어도 불교가 살아 남지 않았나 생각 한다

 

조선왕조500년간의 혹독한 탄압이 지나고 시대는 바뀌었다. 일제에 의하여

역사는 단절되고 민족의 전통과 문화는 초토화 되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뿌리가 뽑혀 나갔기 때문에 새로 시작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때 미군이 들어 오고 미국의 영향력하에 나라가 건국되고 미국의 종교가 급속 하게 퍼져 나갔다. 이미 뿌리가 뽑혀서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무혈입성 했다고나 할까. 불교는 그런 와중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전통을 고스란히 보전 하여 왔다. 조선왕조500, 일제36, 미국영향력하의 60년도 버텨 온 것이다. 역설적으로 산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 했고 승가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수행의 종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더 일어 나는 것이 종교의 본질

 

이제 본격적으로 개신교공화국을 만들기 위하여 신정부는 시동을 걸고 있다. 공직자들의 발언과 목사와 개신교지식인들의 발언을 보면 내심 전쟁이라도 한번 하자고 하는 듯 하다. 그리고 실력을 점검 해 보는 것 같다. 세가 별 볼일 없는 것 같으면 사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세를 보여 주면 사과 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 땅을 완전한 기독교 나라로 만드는 것처럼 보여 진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극복의 대상이지 공존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훼불하고 방화하는가 하면 사찰이 무너져라 기도회도 갖고 성시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닐까.

 

이판사판은 불교용어이다. 부정적으로 쓰일 때 끝장을 보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먼저 도발했다면 생존권 차원에서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개신교인사들로 이루어진 정권은 이 참에 이 땅을 확실한 기독교국가로 만들고져 하는 야망을 보이는 것 같다. 공직자의 각종 발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심지어 최대 기독교단체 같은 경우는 대통령의 사과도 반대하고 종교차별금지법 발의에도 반대 하고 있다. 동길 교수 말대로 불교도대회가 불교의 쇠망의 원인을 제공 할수도 있을 것이다. 시위를 빌미로 더욱 더 탄압을 하게 되면 쇠망의 원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동안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한 혹독한 탄압에도 불구 하고 불교는 살아 남았다. 불교도대회를 빌미로 탄압하여 불교를 억압하겠다는 발상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짓밟으면 밟을수록 더욱더 일어 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이와는 반대로 불교도대회로 인하여 불교의 중흥을 맞이 할 수 도 있다. 결집된 힘을 보여 줌으로써 함부로 대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상의 종교전쟁은 시작 되었다. 그 도발은 명백히 현정부와 개신교측에 있는 것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  사천왕상은 동서남북을 지키고 불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신이다. 칼을 들고 있는 동방의 지국천왕, 여의주를 들고 있는 남방의 증장천왕, 비파를 켜고 있는 북방의 다문천왕, 깃발을 단 당을 쥐고 있는 서방의 광목천왕이다. 사진은 동방의 지국천왕모습이다. 수타사 봉황문

 

 

 

2008-09-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