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누가 관세음보살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08. 9. 21. 09:36

 

 

누가 관세음보살인가

 

 

 

 

 

 

일하는 삼매에 빠지다 보면

 

모든 일에는 납기가 있다. 언제까지 해야 될 시한이 있는 것이다. 짧게는 몇일짜리 부터 길에는 수년이 걸린다. 물건 하나 1주일 걸렸다면 1주일 납기인 셈이다. 배하나 만드는데 2년이 걸렸다면 보통 2년 납기를 준다. 그리고 그 기간에 해당되는 거래가 이루어 지는 것이 보통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납기가 없다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느슨한 일정보다 타이트한 일정이 잡히면 긴장감이 감돌고 그 일정에 맞게끔 모든 사항이 점검 된다. 그리고 오로지 납기를 맞추기 위한 체제로 돌입하는 것이다. 시한을 정해 놓고 하는 일은 무척 집중이 잘 된다. 일을 하다 막하면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아이디어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면서 실력 또한 부쩍 상승함을 알 수 있다.

 

일하는 삼매에 빠지다 보면 주변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다 보니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고 소란스러워도 들리지 않게 된다. 문제 해결하기 위하여 애쓰다 보면 시간 또한 금방 흘러 간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어느새 저녁시간이 된다. 밤에 일할 때는 시간은 더욱더 잘 흘러가는 것처럼 느낀다.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집중하게 되면 시계의 도는 속도는 가속이 되는 느낌이다. 드디어 일을 완성 하게 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밀려 오는 풍족감을 느낀다. 돈의 값어치로 따질 수 없는 일종의 행복감인 것이다.

 

하루에 밥 먹는 것이 가장 큰 일과인 사람들

 

사람들은 노는 것보다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공임으로라도 써 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기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하는 일 없이 밥먹는 것이 하루 일과중 가장 큰 행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절망 하고 좌절한다. 경제적인 고통은 고사 하고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더 커서 일 것이다.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일을 함으로써 댓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그 댓가는 천지 차이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은 그 공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복잡하고 협업적인 작업은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크다. 어느 경우이든지 노동력을 투자 하면 거기에 합당한 댓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 받는 돈으로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다. 들어 오는 돈이 적다면 겨우 먹고 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수입이 많다면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할 것이다. 즉 삶의 질이 높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회속에서 살아 가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난 이상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함으로써 댓가도 받을 수 있고 또한 자아실현도 이룰 수 있다. 놀고 먹는 것 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특히 돈을 받으면서 놀고 먹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마땅한 보직이 없어서 출근은 하지만 맡겨진 일은 없다. 이런 경우는 식사 하는 것이 하루 일과중 가장 큰일이 될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에 밥먹는 것이 가장 큰일인 경우는 보직이 없는 조직에서만 있는 케이스는 아니다. 재산이 많고 여유로운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한끼 식사를 하기 위하여 한 두시간 차를 몰고 나가서 맛집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먹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일이 되어 버렸을 때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가장 큰 고통임에 틀림 없다. 좀 더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 하는 것은 어떤 면에 있어서 큰 착각이라고 일깨워 주기에 충분한 사례라고 보여 진다.

 

아무 댓가 없이 일하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도 있다. 일을 하긴 하는데 어떤 댓가를 받지 않고 하는 일이다. 봉사활동 같은 것이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시간과 정력을 투자 한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일에 열중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특별한 마음을 가졌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 관계에 매우 민감 하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덤벼 들지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고 생각 하면 끊어 버린다. 이런 경우는 상거래 활동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댓가 없이 봉사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기독교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천사'라고 부르고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 부를 것이다.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정근을 많이 한다. 어떤 이는 항상 입에서 관세음보살이 떠 나지 않은 사람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 일까. 기독교의 유일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물론 아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보살행을 실천 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 한다면 위대한 원력과 신심을 바탕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제도 하는 대영웅으로 보아야 한다. 관세음보살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구제 한다. 여기에는 다른 어떤 댓가가 있을 리 없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많이 소유한 사람이 봉사를 하면 그 순수성을 의심 받기 쉽다. 그러나 별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봉사하면 그 진정성을 더 알아 준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남을 도와 준다면 이것이먈로 진정한 보살행이라 여겨 진다. 얼마전에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승가와 스님을 비하한 발언이 인터넷에 유포 된 적이 있었다. 목사들이야말로 모든 것을 소유 한 사람들이다. 결혼해서 자녀도 갖고 교회가 성장하면 재산 또한 늘어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에게 비하 하는 발언은 아무리 수사를 동원 한다고 해서 먹혀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다. 소유하는냐 비소유 하느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누가 관세음보살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넓은 평수에서 살고 싶어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또 좀 더 멋진 옷을 걸치고 싶어하고 명예와 권력을 추구 하면서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을 이해관계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수행자들이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소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 자체가 봉사라고 볼 수 있다. 소유 하면서 봉사 하는 것은 순수성을 의심 받을 수 있고 또한 어떤 댓가를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소유하지 않고 일하는 것은  그 것 자체가 보살행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살이라 부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사도 바로 보살의 다른 이름이라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누군가 애절하게 부르면 달려 가게 되어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 간다. 만약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가는 것은 상상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유 하지 않은 사람들은 달려 가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모든 것을 버렸으므로 더이상 버릴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버려야 겠다는 마음까지도 버렸다면 이미 온 우주를 다 얻은 거나 다름이 없다. 온 주우가 다 내 것인데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2008-09-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