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기총과 KNCC의 고시원참사 위로금 인당 3000만원 지급 뉴스를 듣고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0. 28. 10:38

 

한기총과 KNCC의 고시원참사 위로금 인당 3000만원 지급 뉴스를 듣고

 

 

1억원을 십일조로 내고 싶다는 사람

 

"십일조로 1억원을 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의 말이다. 그 사람은 크리스찬으로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 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업이 잘 되어서 1억을 내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1억을 낸다면 자신의 수입은 당연히 10억이 될 것이다. 사업이 잘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좋고 십일조도 많이 내어서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이다.

 

대체로 크리스찬들은 10일조 내는 것을 의무적으로 생각 하는 경향이 있다. 소득이 생기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수입의 10%는 십일조로 헌금 하는 것에 대하여 별 다른 저항이 없는 듯 하다. 아마도 소득의 10%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의 어느 통계에 따르면 가구당 십일조가 344만원이라고 한다. 또 개신교의 연간 운영자금은 31760억원 이라 한다. 교인수가 개신교 보다 더 많은 불교 같은 경우는 고작 4610억원이라 하니 거의 7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이를 두고 어떤 스님은 개신교가 부럽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개신교인 같은 경우 자발적으로 소득의 10%를 십일조를 내는 것과 이 돈으로 교회운영은 물론 각종 공익사업까지 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다. 그리고 불교인들의 보시에 대한 태도를 지적 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 하는 한편  스님들의 노후문제도 매우 심각 하다고 하소연 하는 글이다. 주로 교회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부러워 하는 글이라 볼 수 있다.

 

댓가 없이 주었을까

 

논현동 고시원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의 희생자는 같은 처지의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중국동포들이라 한다. 그런데 병원비는 물론 장례치를 비용도 없다는 딱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랄까 인당 3000만원이 지급 되기로 했다고 라디오를  비롯한 언론에서 보도 되었다. 도움을 준 단체는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3가지를 생각 하였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봉사정신과 그 많은 돈을 기부 할 수 있는 재력 그리고 이를 통한 선교효과의 극대이다. 돈을 준 것이 아무 댓가 없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족들과 함께 합동으로 예배도 드리고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개신교의 이미지를 올리는 한편 선교효과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동포의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국교회입장으로서 이만치 좋은 홍보효과는 없었으리라 생각 된다.

 

중국동포에게 있어서 3천만은 얼마나 큰돈일까. 3년전에 중국 광동성 동관에 가게 되었을 때 물가를 비교해 보았다. 500그램의 동북미가 우리나라 원으로 환산 하면 280원 정도 된다. 40키로 라면 11000원정도 된다. 40키로는 우리나라 마트에서 사오만원 한다. 대략 4배 차이가 난다.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 근로직 같은 경우 7배정도 차이가 난다. 따라서 중국동포에게 지급된 3000만원은 1억에서 2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큰돈을 배풀 수 있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풍부한 재정에 있을 것이다. 십일조와 각종 헌금으로 모금된 자금이 이런 때 요긴 하게 쓰이고  방송에 까지 나옴으로서 사회의 공익을 위해 봉사 한다는 이미지를 한껏 높여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왕이면 모르게 주었더라면

 

이런 개신교의 봉사에 대하여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 단체들의 이름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돈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무관심해서 일까 아니면 돈도 없고 관심도 없어서 일까. 어려움에 처한 딱한 이웃에 대하여 모른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드시 종교 단체가 이들 어려운 이웃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종교단체는 돈을 버는 영리단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돈이 없는 곳이 종교단체이다. 주로 신도들의 보시로 운영 되고 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다. 신도들은 재보시 하고 성직자는 법보시 함으로서 상생 하는 것이다. 설령 종교단체가 돈이 있어서 도와 준다고 하더라도 소리 소문 없이 도와 주어야 한다. 요란하게 소문 내고 도와 주는 것은 가식적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를 강조 한다. 보시를 하되 보시를 했다는 상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쉬운 말로 티 내지 보시 하라는 것이다. 무주상보시야 말로 가장 큰 공덕을 짖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더 큰 공덕은 법보시이다. 금강경에서는 이를 표현 하기를 삼천대천세계를 다 보시 한다고 해도 한마디 법보시 보다 못하다고 하였다. 물질적으로 온 우주를 다 보시 한다고 해도 말씀 한마디의 공덕이 더 크다는 것이다. 개신교 단체의 기부행위는 소외 되고 의지 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삶의 의욕을 주는 아름다운 행위임에 틀림 없다. 그런 칭찬받는 행위가 언론에 알려 졌고 또한 적극적으로 홍보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알려 지게 하지 않고 도움을 주었더라면 더 훌륭하지 않았을까.

 

 

 

 

2008-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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