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아츠히메'와 관련된 일본문화의 글을 다수 올렸더니
블로그 전성시대인가
블로그 전성시대 인 듯하다. 포털 사이트는 물론 언론사의 홈페이지나 좀 규모가 있다는 대형사이트에서는 예외 없이 블로그가 개설 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만들어서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 블로그는 인터넷시대에 최대의 히트작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에 블로그가 그 해의 최대의 히트작품으로 선정 된 바 있다. 인터넷시대의 초기에는 주로 게시판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하였고 그 후에 카페가 활성화 되어 카페를 중심으호 활동 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제는 블로그가 주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 신문의 경우 자신들의 독자층과 광고주를 의식 하면서 글을 써야 되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나 칼럼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 블로그는 광고주도 없고 글을 쓴다고 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이 글을 생산해 낼 수 있다. 수 많은 블로그에서 수 많은 글이 양산 되는 것은 다양성의 상징이다. 그런 글 중에는 꽤 가치 있는 글이나 정보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글은 용케도 누군가에 의하여 캐치 되고 세상에 알려 지게 된다. 이런 점에 있어서 블로그에서 생산 되는 글은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설정 할 수 있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 보니
블로그를 개설하고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많이 보아 주는 사람들이 생겨 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자신과 생각을 공유 하는 사람의 글이라면 더욱 더 친밀감과 애착을 가지고 지켜 봐 주는 것도 인터넷시대의 또 다른 풍습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적극적인 행위가 댓글이나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방명록에서 어느 네티즌으로 부터 질문을 받았다. 올리는 글 중에서 왜 일본 드라마에 대한 내용이 많은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일본과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아 하고 약간은 불쾌한 일일 수 있다.
일본은 바로 옆에 있는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경제대국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강대국이 되었는가를 아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런 강대국이 되어 가는 과정을 일본의 근대화에서 찾아 보고저 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가장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통해서이다. 그 것도 일본인이 직접 쓴 책을 통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쓴 '일본은 있다' 와 '일본은 없다'와 같은 책으로는 그들의 내면적인 모습을 들여다 보기 힘들다.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 보려면 일본인 그들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읽어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런 작가 들 중에 '시바 료타로'가 있다. 흔히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 우는 시바 료타로는 소설뿐만 아니라 일본인에 대한 수많은 평론을 쓴 사람이다. 그 사람의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데 소설 '료마가 간다'이다. 그 책을 읽어 보면 왜 일본이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모름지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쓴 책을 보아야 정확히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것은 마치 이어령이 우리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에 대하여 써 놓았듯이 자국민이 자국을 평가한 책이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메이지유신에 심취한 사람들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높았다. 과거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는 '료마가 간다'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소설이 바로 메이지유신이 성립 되기 전 단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여러권으로 된 대하 소설로서 작가는 전후에 실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하여 집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소프트방크'를 창립한 한국인 출신 재일교포
메이지유신의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메이지유신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그 때 당시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가 통치 하던 시대이었다. 265년간 일본을 지배한 도쿠가와 가문은 1600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을 격파함으로써 시작 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도쿠가와가문은 자신의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영지를 재분배 하게 된다. 즉 자신들에게 협조한 가신들에게 영지를 주어 다스리게 하는데 이를 '후다이(譜代)'영주라 부른다. 반면에 동맹세력이나 복속세력에게는 그들의 영지를 인정 하면서 지방분권적으로 다스리게 만드는데 이를 '토자마(外様) '영주라 부른다. 즉 후다이는 막부의 주요지지기반이라 볼 수 있고 토자마는 막부가 막을 내릴 때 까지 적대적인 세력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다. 막부는 이들 토자마를 다스리기 위하여 일정기간 인질로 잡아 두는 참근교대라는 독특한 제도를 시행 하고 있었다. 즉 중앙집권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방분권적인 이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속에서는 이런 이원적인 정치제제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고 재미 있게 표현 하고 있다. 후다이와 토자마의 관계가 그렇듯이 무사들의 세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상사(上侍)'와 '향사(鄕侍)'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상사는 새로운 지배세력을 의미 하고 향사는 전쟁에 지기 전에 정권을 장악 하였던 토착세력을 의미 한다. 상사와 향사는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어서 상사가 향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고 향사는 상사에 대하여 절대 복종 하여야 했다. 이런 체제가 근 200년이상 진행 되다가 미국의 페리의 내항으로 인하여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들고 일어난 것이 토자마영주와 향사들이다. 그 토자마영주의 대표주자가 지금의 남쪽 큐우슈우의 가고시마를 중심으로 한 '사츠마번 (薩摩藩)'과 지금의 시모노세키 부근에 근거를 둔 '죠오슈번(長州藩)', 그리고 시코구 남단에 있는 '토사번(土佐藩)'이다. 이들 번국의 영주와 하급무사출신의 향사들이 소설속의 주인공 들이다. 그 중에서 토사번 출신의 사카모토 료오마가 시바 료타로 소설의 실제 주인공이다.
문화의 힘은 무섭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는 3번을 읽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일본 근대사에 대한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실감은 나지는 않았다. 그런 중에 최근에 NHK에서 일본 근대사를 다룬 대하시대극 '이츠히메'가 금년초 부터 방송 되었다. 소설에서 읽은 내용과 큰 차이는 없었다. 소설 속에서 상상 하던 내용이 드라마를 보면서 더 많이 이해 되었다고 할까 신선한 충격을 받은 느낌 이었다. 특히 무사들이 상투를 튼 모습은 소설 속에서는 거의 상상 할 수 없었다. 또한 상사 앞에서 복종 하는 모습의 깍듯한 예절도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장면 이다. 참으로 이상 한 것은 상투를 튼 우수꽝스러운 무사의 모습이 보면 볼 수록 익숙해 진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문화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tvpot.daum.net/clip/
드라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츠히메공주와 그와 연인 관계에 있었던 상사출신의 무사 이야기 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향사출신의 무사이야기라 볼 수 있다. 즉 가문과 신분에 의하여 철저하게 소외 되고 능력을 인정 받지 못하던 사회에서 시대가 바뀌자 이들이 대활약하는 시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메이지 유신이 성립한 배경도 따지고 보면 가문과 신분에 의하여 지배된 정치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향사들에 의하여 주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이 성공 하자 정권을 잡은 향사출신의 하급무사들이 우선적으로 한일이 폐번치현이다. 즉 가문과 신분에 의하여 통치 되던 봉건적인 잔재를 일소 하고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 하여 다스라는 획기적인 정치체제인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칼을 차고 다니지 못하게 함으로써 봉건적인 잔재를 청산 한다. 이로써 일본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 하고 강대국으로 부상 하게 된다.
시대에 변화에 적응하지 않으면
책을 통하여 또 드라마를 통하여 본 일본의 근대화의 이야기는 아래로 부터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다. 역설적으로 위로 부터의 개혁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해 주기도 한다.
메이지유신은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 받고 있다. 소설을 써도 드라마를 해도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일본인들이 가장 재미 있게 보고 또한 일본인중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인물의 상당수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활약 하던 사람들이라 한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남의 나라의 성공적인 역사이지만 현실을 살아 가는 우리에게도 무언가는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맹목적인 남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추종 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겪은 불행했던 역사가 어떻게 시작 되었고 지금도 계속 되고 것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남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면서 찾아 보고져 하는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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