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잠결에 듣던 크리스마스 새벽송, 왜 지금은 더 이상 들리지 않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2. 24. 17:23

 

잠결에 듣던 크리스마스 새벽송, 왜 지금은 더 이상 들리지 않을까

 

 

통금시대에 듣던 새벽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통금시대에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새벽에 듣던 노래이다. 이런 노래를 새벽에 부른다고 해서 '새벽송'이라고 한다. 곤히 잠든 밤에 잠결에 듣는 노래는 단잠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한 곡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해서 두세곡 더 부른다. 그리고 왁자지껄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후에 잠잠 해 진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이런 새벽송은 몇 해 동안 계속 되었다.

 

통금시대에 살던 동네는 산동네이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농촌을 등지고 떠나 온 사람들이 처음에 정착 하는 동네가 '산동네'이다. 다른 말로 '달동네'라고도 한다. 주소는 산 몇 번지 하는 식이고 한 번지 안에 수십가구가 사는 것이 보통이다. 따닥 따닥 붙은 불량주택은 그 때 당시 열악하고 척박했던 한시대의 표상과도 같다. 지금은 재개발 되어 아파트 단지로 바뀐 곳이 많지만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농촌에서 산동네로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에서 더 이상 벌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남부여대(男負女戴)' 하고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60년대와 70년대에 농촌을 떠나 서울로 올라 오면 우선 산동네에 정착하였다. 농사만 짖고 살다가 올라 왔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대부분이 특정한 직장이 없고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에 바빴다. 이들이 농촌에 살던 때는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어서 서로 믿고 의지 하고 살았지만 막상 도시로 나와서는 어느 곳 하나 의지 할 데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정도 농촌공동체와 같은 생활을 만족 시켜 주는 곳이 있었는데 동네 마다 하나씩 있었던 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교회에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마치 농촌공동체와 같은 기분을 맛 보기도 한 것이다. 즉 교회는 어느정도 농촌공동체의 욕구를 일정 부분 충족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까 크리스마스 새벽에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찬송가를 부르고 대접 하는 모습이 꼭 농촌공동체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일요일 아침의 산동네풍경

 

산동네에서는 크리스마스 새벽송만 듣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만 되면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고성능 마이크에서는 찬송가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찬송가 중에서는 꽤 감상적인 찬송가도 있었다. 이런 찬송가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상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일요일 아침에 울려 퍼지는 찬송가는 교회에 나오라는 신호로 여겨 졌다.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울려 퍼지고 평일에도 울려 퍼진 날이 많았다. 교회는 저 멀리 있었지만 방송소리가 얼마나 컷던지 늦잠 자는 사람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찼다. 교회에 나가는 집이든 나가지 않는 집이든  구별하지 않고 매주 방송 하는 찬송가 소리는 산동네이기에 가능 했던 것일까. 이런 문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이 없었던지 꽤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

 

산동네에서 살다가 좀 더 아래 쪽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그 무렵에 통금도 해제 되었다. 그 때 부터 더 이상 새벽송을 들을 수 없었다. 또한 일요일에 방송 하는 찬송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벽송과 찬송가방송은 산동네에서만 있었던 특별한 현상 이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 이었다.

 

 

 

 

출처 kdaq.empas.com/qna/view

 

 

 

새벽송이 사라진 이유는

 

업무로 알게 된 사회친구가 있다. 그는 크리스찬이다. 직책은 집사라고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서 일까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려서 부터 교회에 다녔던 그 친구는 교회에 다니던 시절이 매우 재미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교회에서 행사준비를 하고 행사에도 참여하는 것과 같은 재미난 이야기이다.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말하는 것이 새벽송에 관한 이야기 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더 이상 새벽송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좋은 전통이 사라진듯한 아쉬움을 토로 하기도 한다. 또한 옛날과 같이 크리스마스 맛이 나지 않는다고 토로 한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때 당시 새벽송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산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었다고 보여 진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아도 전국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여진다. 마치 명절 풍습과 같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갈 것 같았던 새벽송이 사라진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안면방해(安眠妨害)' 일 것이다. 곤히 잠든 밤에 잠깨는 노래는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곤욕스러운 일이다. 한 곡도 아니고 메들리로 연달아 부르는 노래와 왁자지껄한 소리는 소음 내지 공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만일 요즘에 아파트에서 새벽송을 한다면 당장 경찰이 달려 올지 모른다. 누군가 신고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통금시대에 살았던 산동네는 환경이 매우 열악 하였다. 겨울만 되면 몹시 추웠다는 기억 밖에 없다. 연탄불에 의지하던 시절에 방바닥은 뜨끈 하지만 난방이 잘 되지 않은 방안은 서리가 날 정도로 추웠다. 곤히 잠든 겨울 밤에 난데 없이 울려 퍼지는 새벽송은 오늘이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전령사와 같았고 일요일 동네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찬송가는 교회를 나오라고 독려 하는 알림 같았다. 농촌을 떠나서 산동네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에 흡수 되었고 크리스마스날 새벽에 새벽송을 불러도 일요일 아침에 찬송가 방송을 하여도 용인 되던 시절 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더 이상 새벽송은 사라진 듯 보여 지고 또한 일요일 아침에 고성의 찬송가 방송도 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잠결에 듣는 새벽송과 교회의 찬송가 방송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된 듯한 느낌이다.

 

 

200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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