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위빠사나 수행기1] 나도 수행을 잘 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2. 28. 13:29

 

 

[위빠사나 수행기1] 나도 수행을 잘 할 수 있을까

 

 

"어릴 때에는 수행과 공부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뒤늦게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마음만 있을 뿐 행동 하지 못하고 마흔 살이 되며, 마흔 살이 된 후에는 늙었다고 생각하여 다음 생에 수행자로 태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만 하면서 육십살이 되어 죽음만을 바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초펠스님이 지은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에 나온 글이다.

 

사는 동안에 수행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초펠스님이 지은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보리도차제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순서가 있다는 말이다. 즉 자신이 3악도에 태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귀의 하게 되는 동기가 '성문''하사도'이며, 자신이 윤회세계에 계속 머무는 것을 두려워 귀의 하게 되는 동기가 '연각''중사도'이며, 일체중생이 윤회세계의 고통속에 머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자비심을 가지고 귀의 하게 되는 동기가 '보살''상사도'라는 것이다. 이 와 같이 하사도에서 부터 상사도에 까지 단계를 밝아 가는 수행에서 필연적으로 생각 해야 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죽음에 대한 아홉가지 명상중에 하나가 '사는 동안에 수행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라는 것이다. 바로 위에 언급한 글이 바로 그 내용이다.

 

수행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참선, 염불, 절수행, 다라니수행등 자신의 근기와 기질에 맞는 수행방법을 선택 하면 된다. 이 중에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가 참선이다. 흔히들 가장 수승한 수행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참선은 스님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재가수행자들이 접근 하는 것은 용이 하지 않다. 또한 간화선과 같이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수행방법은 개념조차 파악 하기 힘들어서 멀게만 느껴 진다. 이런 참선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행방법이 '위빠사나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 동안 발표된 기사나 칼럼, , 논문에서 많이 보아 온 위빠사나 수행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 할 수 있도록 주변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 '붓다뉴스'에 위빠사나수행을 지도 하는 법사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었다. 항상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는 해야 될 수행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는 초펠스님의 '사는 동안에 수행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라는 내용에 자극 받아서 한번 찾아 보기로 하였다.

 

근본불교 1세대의 남방 선() 유발수행자

 

한국 위빠사나 선원. 강남구 논현동에 있다. 지도하는 사람은 '묘원법사'이다. 메스콤에 소개되어 있는 묘원법사는 근본불교를 접한 1세대 남방 선 수행자로 알려져 있다. 96년 부터 미얀마의 마하시 센터와 쉐우민 센터에서 7년여간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 '마음 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묘원법사는 보기에도 평범하게 생긴 '유발수행자'이다. 복장도 특별하지도 않고 양복차림이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그에 대한 기사와 그에게 지도를 받은 수행담을 많이 올려 놓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보는 알고 갔다고 볼 수 있다.

 

1층에 있는 수행센터는 꽤 넓어 보였다. 칠팔십평 정도 되는 공간에는 부처님상도 있었다. 그런데 늘 상 보는 그런 부처님하고는 달랐다. 남방불교에서 보는 부처님상이다. 사찰에서 보는 탱화라든가 보살상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지 않고 인도풍 상호를 한 부처님 액자가 걸려 있는 것이 유일 하다.

 

 

 

출처 buddhapia.com

 

 

 

도중에 들어간 강의

 

토요반은 오후 6부터 9까지 이다.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토요강좌는 직장인과 지방에 거주 하는 사람을 위해서 개설 된 것으로 보여 진다. 평일반도 있지만 생업 때문에 참석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배려로 여겨 진다. 토요강좌는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10월에 개강 했다 하니 벌써 3개월째이다. 끝나는 기간은 내년 4월까지 7개월 과정이다. 주로 12연기법 강의이다. 도중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진도가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와도 가능 하다고 이야기 한다.

 

강의가 시작 될 때 특별한 의식은 없다. 강사가 들어오면 서로 합장 한번 하는 것이 전부 이다. 곧바로 법문이 이어지는데 12연기법에 대한 교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특별히 만든 12연기법에 대한 챠트가 눈에 뜨인다. 이해 하기 쉽도록 도표로 그려 놓은 것이다.

 

도중에 들어 갔기 때문에 12연기의 처음인 무명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무명 다음에 이어지는 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이번 강의는 주로 행을 위주로 하여 이루어 졌다. 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것일까 윤회가 계속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윤회가 계속 되는 것은 무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모든 원인은 무명에 기인 한다고 한다. 즉 무명인 상태로 죽으면 다시 무명인 상태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런 무명을 탈출 하기 위하여 12연기를 정확히 이해 할 필요가 있고 수행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윤회의 길이냐, 해탈의 길이냐

 

전생의 나는 현재의 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전생의 몸이 현재의 내몸이 아니듯이 또한 전생의 마음 역시 현생의 내 마음이 아니다. 다만 전생에 지었던 행위, 업과 같은 과보가 현생에 전달 되었을 뿐이다. 즉 전생에 지은 과보에 따라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한다. 자기가 지은 과보 만큼 현생을 사는 것이다. 과거의 몸, 과거의 마음은 나가 아니라는 것을 분리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의미 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신견(有身見)' 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전생의 나가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 상견이고, 전생의 나가 없다고 생각 하는 것은 단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견과 단견을 배격한다. 전생의 나는 현재의 나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런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행위가 전해 질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행위에 따라 3악도로 떨어질 것인가와 천상에 태어 날 것인가가 결정 된다. 지은 바 공덕이 없으면 3악도에 떨어지고, 공덕이 있으면 3선도에 태어 난다. 이것이 전형적인 윤회의 사이클이다. 공덕을 짖긴 짖되 지었다는 생각 없이 짖는 것과 지었다는 생각을 하고 짖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공덕을 지었다고 생각 하고 짖는 공덕은 잘해야 욕계천신으로 태어날 뿐이고 윤회의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공덕을 지을 때 공덕을 지었다는 생각 하는 마음을 알아 차린다면 해탈로 가는 길로 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윤회의 길로 가는냐, 해탈의 길로 가느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노팅(Noting)' '와칭(Watching)'

 

법문은 1시간30분 동안 쉼 없이 이루어졌다. 흔히 보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농담이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우스개 소리는 없었다. 법문이 끝나고 '경행'시간이 되었다. 일어서서 걸으면서 발에 마음을 집중 하는 것이다. 발을 뗄 때 때는 것을 느끼고 발을 들 때 드는 것을 느낀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 닿는 무게를 느끼고 발을 옮길 때 떼어 지는 가벼움을 느낀다. 다음에 이어지는 위빠사나 수행에 앞서 몸풀기라 여겨 진다. 30분정도 경행명상이 끝나자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갔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허리를 펴고 고개를 당기고 하는 자세는 법회할 때 하는 입정과 다를 바 없었다. 허리가 불편 하거나 아픈 사람은 준비 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된다. 더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뒤가 젖혀지는 의자도 준비 되어 있었다. 눈은 감으라고 한다. 법사의 지시에 따라 마음을 놓는 곳을 가리키면 그 쪽으로 마음을 놓는다. 어떤 화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그대로 보라고 한다.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대로 보라고 한다. 온갖 생각이 난무 하지만 그저 바라 보라고 한다. 이것을 '노팅(Noting)'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노팅 하는 마음을 또 바라보라고 한다. 마음이 마음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와칭(Watching)' '마음바라보기' 라고 한다. 이렇게 40분정도를 보낸다.

 

인터뷰시간에 나온 여러이야기들

 

9가 되자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이것으로 각자 뿔뿔이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행 중에 일어났던 변화에 대하여 일어난 사항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 하는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인터뷰'라고 한다. 약 칠팔십평의 공간에 약 30여명 정도 되는 인원 중의 64의 비율로 여성이 더 많다. 대다수가 어느 정도 불교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 처럼 보여 지고 연령도 젊은 층부터 노년층 까지 다양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찰법회에서 보는 연령층보다는 젊게 보여 진다.

 

한 여성수행자가 수행 중에 일어 났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수행 중에 몸의 특정 부위가 아프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법사는 수행이 진전된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여성은 수행 중에 몸이 없어 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떤 남성은 직장에서 보기 싫은 상사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런 현상도 수행의 진전이라고 말한다. 보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 마음을 관찰 하라는 것이다. 마치 채널을 다른 곳에 돌렸다가 다시 오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것이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때 그 시간 만큼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고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더러운 인간일까

 

수행 중에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다리가 저리고 시간이 매우 더디게 지나가는 것을 느꼇을 뿐 인터뷰 하는 사람들처럼 특이한 경험은 없었다. 온갖 잡생각과 잡념만 떠 오를 뿐 마음 집중은 좀처럼 되지 않았고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수행이 진전되면 인터뷰 하는 사람처럼 수행의 묘미를 느낀 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좀 더 진전 되면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인간이라는 것도 또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들어서 알고 있다. 단순히 머리로 알고 있거나 머리로 이해 하려는 것과 수행과는 다를 것이다. 나에게도 인터뷰 하는 사람처럼 특별한 체험을 느낄 수 있을지 또는 내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 이었던 가를 느낄 날이 올 수 있을까.

 

 

 

2008-12-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