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이스라엘의 하마스 학살, 그 많은 시민단체와 촛불은 어디에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 7. 10:20

 

이스라엘의 하마스 학살, 그 많은 시민단체와 촛불은 어디에

 

 

400 1, 스포츠의 게임 스코어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하마스정벌 첫날에 발표된  사망자 숫자이다. 단순히 스코어로 본다면 게임이 되지 않는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전쟁이라기 보다 차라리 학살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마음의 고향

 

방송에서는 비교적 양측에 대하여 균형잡힌 보도를 하려고 하는 흔적이 엿보인다. 팔레스타인측의 고통 받는 모습이라든가 국제사회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과 같은 보도는 어느 정도 전쟁의 심각성을 말해 주고 나름대로 판단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신문의 기사를 보면 일방적임을 알 수 있다. 주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도 하는 신문은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에 대하여 당위성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방송과 신문의 보도내용이 천지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마음의 고향과 같다. 바이블 자체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라고 보았을 때 매일 이스라엘에 관한 지명과 이스라엘의 사람이름이 등장 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기독교들에게는 친숙하다. 기독교관련 라디오나 TV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하루도 빠짐 없이 나오고 인용하는 문구 역시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시련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족속(族屬)'이라는 말

 

기독교들의 마음의 고향이 이스라엘이라면 불교도에게 있어서 마음의 고향은 인도이다. 스님들의 법문이나 불교관련 저명인사들의 강연을 들으면 항상 나오는 말이 '부처님 당시에'로 부터 시작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명도 매우 생소 하고 더구나 그 당시에 활동하던 사람들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정도로 이국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런 지명과 이름이 한자어로 음역된 경우는 마치 원래 우리말 이었던 것처럼 친숙하게 들리기도 한다. 아미타바(Amitabha)가 아미타(阿彌陀), 바이로차나(Vairocana)가 비로자나(毘盧遮那), 붓다(Buddha)가 부처(佛陀), 마하야나(Mahayana)가 마하연(摩訶衍)으로, 보디사트바(Bodhisattva)가 보리살타(菩提薩), 프라즈냐(Prajñā)가 반야(般若), 아누타라삼먀크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褥多羅三邈三菩提), 위빠사나(vipassana)가 비파사나(毗婆舍那)로 등등 원어가 한자어로 음역 되면 왠지 모르게 오래된 우리말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마술을 부린다. 그런데 원음을 떠나 의역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관세음보살'을 들 수 있다. 산스크리트 원어는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hvara')이다. 음이 아닌 뜻으로 번역한 것이 관세음보살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자국으로 들여 올 때는 원래의 이름을 변형하지 않고 들여 오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관세음보살의 경우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보는 하나님 이나 하느님과 같이 음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의역도 아닌 경우가 있을까. 이 경우 완전한 창작이라 여겨 진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명칭을 도용해 갔다고도 말한다. 가급적이면 원래의 경전에 있는 대로 원래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고교시절의 학교 교훈은 '기독적 인격'이었다. 입학하자 마자 찬송과 예배부터 시작 되었고 기독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3년 내내 지속 되었다. 1학년 때에는 성경시간이 주당 2번 있었는데 그 중 한시간은 슬라이드교육으로 할당 되었다. 주로 구약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이스라엘의 지명과 선지자들의 이름이 죽 열거 되고 계보가 소개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야훼로 말하는 것이었다. 족속이라는 말이 그리 나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하나님의 원래 이름은 야훼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원래의 경전에 나오는 이름에 충실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시민단체와 촛불들은 어디에

 

구약에 나오는 야훼는 이스라엘 족속에 있어서 사랑의 신이지만 타민족이나 타종교인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스라엘이 구약을 믿는 유대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독교가 신약을 뿌리로 형성 되고, 이슬람교가 마호멧에 의하여 새롭게 창시된 종교이긴 하지만 두 종교의 뿌리는 모두 구약을 기본으로 한다. 알고 보면 모두가 형제지간이다. 다만 이스라엘이 구약에 뿌리를 두가 보니 더 잔인하지 않았나 생각 된다. 구약의 내용자체가 잔인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량학살도 알고 보면 구약의 정신에 바탕을 둔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 받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뉴스를 보면 좀 깨어 있다고 생각 되어 지는 민족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규탄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의 대통령 또한 중재를 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반면에 미국은 친이스라엘 정책을 고수 하고 있고 대량학살에 대하여 방관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그 많다던 시민사회단체에서 규탄성명하나 제대로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 많은 촛불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200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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