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자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 7. 17:34

 

불자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

 

 

'하이에크'라는 사람은

 

케인즈와 하이에크. 케인즈는 경제학을 전공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라는 이름은 매우 생소하다. TV에서 방영한 프로를 보고 하이에크라는 사람이 있었다라는 것을 알았다. 하이에크는 케인즈와 더불어 당대를 주름 잡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케인즈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로서 계획경제주의를 제창 하였다면 하이에크는 시장경제주의를 주장 한 사람이다. 둘 다 옥스포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절친한 친구 이었지만 서로 주장 하는 경제이론은 정 반대이다. 케인즈의 이론이 대공황이후에 루즈벨트에게 채택되어 뉴딜정책의 밑바탕이 되었고 이후 1970대까지 약30여년간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에 하이에크의 시장경제 이론이 각광을 받으면서 레이건시대 이후 현재의 부시까지 30년간 주도권을 잡게 된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하이에크의 정책을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부른다.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이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30년간 전성기를 누린 셈이다. 하이에크의 시장경쟁의 원리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어떤 이들은 부시의 퇴장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은 물 건너 갔다고 이야기 한다. 지금 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사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신뉴딜정책과 같은 케인즈의 이론이 부활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졌다.

 

종교도 시장경쟁의 원리가 적용될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부시시대의 신자유주의를 답습하여 공기업 민영화라든가 재벌규제완화, 신문의 방송진출, 부동산규제완화등 각종규제를 철폐 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에 있어서도 경쟁의 원리를 도입 하여 국제중이나 특목고 영재학급을 신설하여 경쟁을 유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모든 규제를 풀어서 시장경쟁의 원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많이 가진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자국의 보호무역을 폐지하고 FTA를 체결하게 된다면 후진국은 더 이상 경쟁이 되지 않고 선진국에 예속 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쟁력이 없는 농업분야가 FTA의 직접적인 타격 대상이다. 이런 시장의 경쟁의 원리가 산업분야에만 적용 되는 것일까. 종교라고 해서 예외 일 수 없다.

 

우리나라를 '종교백화점' 같다고 한다. 동서양의 제반사상과 종교가 들어 와 충돌 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 한반도이다. 남과 북으로는 이데올로기로 맞서 있고 남남에는 서로 출발점 부터가 다른 종교가 병존하고 있다. 종교의 속성상 어느 한 종교가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질서와 같다. 아직까지 주도적으로 앞서 가는 종교는 없고 다만 팽팽히 맞선 상태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때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면 판도는 급속하게 재편 될 것이다.

 

메뉴얼화 되고 세트화된 개신교

 

불교가 들어 온지 1700여년, 천주교가 들어온지 200여년, 개신교가 들어 온지 100여년 되었다. 이 중에 가장 나중에 들어온 개신교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통계를 보면 60년대와 70년대에는 매10년마다 배가 성장 하였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성장하게 하였을까. 미국의 영향이 컷던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장경쟁의 원리에 적합하였다는 사실이다. 소위 개척교회라 불리우는 작은 규모에서 대형교회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기업의 성장신화를 보는 것과 같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준 것이다. 그렇게 되기 까지에는 교리의 '메뉴얼화'를 빼 놓을 수 없다. 어느 교회를 가나 바이블과 찬송가가 동일하고 예배순서 또한 일률적이다. 마치 맥도날드 햄버거의 제조매뉴얼 같이 체계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단을 쳐내고 정통을 옹호한 결과 '단순하고 명쾌한 교리'를 만들어 낸 것도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불교는 어떠 한가. 아직도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메뉴얼화는 미흡하다. 또한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지 않고 3법인에만 충실하면 되기 때문에 교리 또한 복잡하고 난해한 인상을 준다. 결정적으로는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는 것이다. 교세를 확장해야만 존립하는 그런 생활종교와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실하게 개척해야 될 절박감이 없다. 이런 점이 시장경쟁의 원리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무상 무아 고를 말하지 않는 불교는

 

순례법회를 다니다 보면 하나의 특이한 현상을 발견 하게 된다. 대웅전을 참배 한 후에 가게 되는 곳이 산신각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 드신 보살님들이 주로 많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기회가 되면 왜 산신각에 들르는가에 대하여 물어 보아야겠지만 우리나라 불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임에 틀림 없다. 영험있는 기도처를 찾아 다니면서 기도 하는 것도 산신각에 들르는 것 못지 않게 유행이다. 부처님이나 그 밖의 보살, 산신을 전지전능한 절대자로서 착각하는 경향이 커서 일 것이다.

 

불교의 기본교리는 3법인이다. 불교인지 아닌지는 얼마나 3법인에 충실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3법인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비록 머리를 깍고 있지 않은 수행자라도 진짜 불교인이라고 볼 수 있고 삭발을 하고 염의를 둘렀을 지라도 3법인을 말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불교인이라고 볼 수 없다. 무상 무아 고를 이야기 하지 않고 단지 기도만 한다면 불교에서 한참 빗겨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영험한 기도처만 쫓아 다니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자신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는 전능한 절대자로 인식한다면 종국에는 교회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불자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

 

불자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가 어느 때일까. 개인적으로는 3법인에 충실한 강의나 법문을 들었을 때이다. 스님이든 재가법사이든 무상 무아 고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부처님법을 제대로 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에 남방 상좌부불교가 각광을 받는 경우도 바로 3법인에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좌부불교가 소개된 시기는 오래 되지 않는다. 80년대 말 부터 소개 되기 시작 하였으니 20년 가량 되는 셈이다. 급속하게 확산 되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부처님당시의 법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서 일 것이다. 여기서 지도 하는 법사는 재가법사인 경우가 많다. 유발수행자이다. 그들이 지도 하는 수행법은 매우 합리적이다. 철저 하게 무상 무아 고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21세기 불교는 상좌부 불교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종교는 보수적인가

 

보수와 진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전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가 서로 업치락 뒤치락 하면서 주도권 쟁탈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매우 심하다. 종교에서는 어떠 할까. 종교역시 보수와 진보의 주도권 쟁탈전이 없을 수 없다. 불교 같은 경우도 초기불교에서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화가 있었고 나중에는 대승으로 발전 되기도 하였다. 대승이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밀교와 같은 금강승으로 또 발전 되었다. 그러다가 이슬람의 침략을 받아 인도에서는 완전히 불교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힌두교와 밀교의 구분이 모호 해진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금강승은 종합불교라 볼 수 있다. 소승부터 대승, 밀교까지 전부 관통하는 통불교가 오늘날 보는 티벳불교이다. 티벳불교가 미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불교과정이 다 담겨져 있다는데 있다. 개인적인 수행과 대승의 자비사상이 녹아 있는 것이 티벳불교이고 통불교이자 종합불교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파가 당대를 못 넘는 이유

 

어느 사회이든지 보수로의 회귀성이 있다. 특히 종교분야에 있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하게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를 보면 종파가 매우 많다. 듣도 보도 못한 종파가 새롭게 생겨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 하는 종파는 조계종이다. 조계종은 선불교를 법맥을 이어 오고 있다. 한 때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종파가 주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바로 이런 것이 보수로의 대표적인 회귀성이라 볼 수 있다. 현재도 새로운 종파가 간판을 내걸고 교세를 확장 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에 대하여 '마성스님'은 그의 글에서 염려 할 것이 없다고 한다. 종교의 보수회귀성 때문에 당대로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 종파를 만들었더라도 더 이상 대을 이어 가지 못하고 당대에서 끊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보수를 지향 하는 곳이 종교계이기 때문이다.

 

유례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한국불교

 

상좌부와 대승불교, 굳이 보수와 진보로 나누자면 상좌부가 보수이고 대승불교가 진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인도에서는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상좌부의 경우 스리랑카나 미얀마, 태국과 같은 곳에서는 옛날 그대로의 전통을 유지 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부처님 당시에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하고 있다. 대승불교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선불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로 재탄생 되었다. 그렇게 1000년 이상을 큰 변화 없이 전통을 유지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예전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독선적인 교리와 배타적인 구원관으로 무장된 유일신교와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역사에 있어서 최근 100년간은 유례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으로 돌아 가야 하는 이유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한 이유 중의 하나로서 불교의 힌두화를 들고 있다. 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무상 무아 고의 반대 되는 개념을 받아 들였을 때 불교는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한 종교가 되었다. 불교를 불교 답게 만드는 것은 무상 무아 고를 이야기 하여야 하는 데 부처님이나 보살, 산신을 마치 절대자와 같이 여긴다면 무상 무아 고 하고는 한참 빗겨난 이야기가 되고 만다. 더구나 옛날과 다르게 유일신교와 공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신교의 절대자의 개념과 다를 바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만일 한국에 유일신교가 없는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불 보살을 절대자로 생각 하고 무상 무아 고를 이야기 하자 않는 한 종교의 시장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을 타개 하기 위해서는 근본으로 돌아 가야 할 것이다. 바로 보수로 회귀 하는 것이다.

 

미국불교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다. 미국은 원래 기독교 국가이다. 따라서 누구 보다도 기독교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와 반대 되는 모습을 불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절대자와 비슷하게 생각 하는 보살사상 보다도 위빠사나 수행과 같은 무상 무아 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상좌부불교, 대승불교, 금강승불교등 전세계의 모든 불교가 다 들어와 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 하는 그들이 선택한다면 과연 어떤 불교를 선택할까. 우리나라가 부처님 당시로 되돌아 가지 않고 현실에만 안주 하게 된다면 불교는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는 오해를 씻을 수 없게 된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미국으로 부터 온 포교사가 새로운 불교를 소개 하게 될지도.

 

 

2009-01-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