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와 '필업(筆業)', 사이버모욕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기가 태어 나면 이름을 붙여 준다. 일단 호적에 올라 가면 집에서는 물론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 이름을 불러 주고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이름을 유지 하게 된다.
이름을 보면 이미지가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한다. 그 사람의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되어 있다. 주로 과거에 일어 났던 행적이다. 그 중에 깊이 각인된 인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악행을 저질렀다면 악한 이미로서의 인상이 떠오를 것이고, 선행을 하였다면 선한 이미지가 떠 오를 것이다. 매스콤에 보도된 살인마의 이름석자는 그 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떠 오르게 한다. 반면에 남 몰래 기부를 한 연예인은 '천사'나 '보살'의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름석자를 알리기 위한 이미지 전략 또한 눈물겹다. 특히 정치인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미지 조작은 선거전략상 필수적이다. 가급적 유능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신문과 방송등 매스콤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이미지 향상을 위하여 허위로 학력을 기재 하거나 범죄사실을 숨기는 것은 보통이고 업적 부풀리기, 과대포장은 일반적이다. 이미지 조작은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반인도 결코 여기에 뒤 떨어지지 않는다. 옷을 잘 입는 것도 전략이고 마스크를 잘 가꾸는 것도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이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자신의 몸값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이름과 이미지가 겹쳐지게 만드는 것이다.
필명을 사용 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은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발달된 현대는 두 개의 세상을 살고 있다. 한 세상은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세계이고 또 하나의 세상은 사이버상에만 존재 하는 '가상세계'이다. 현실세계에 친구도 있고 모임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세계 역시 친구더 있고 커뮤니티도 있다. 그런데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에서 사용 되는 이름은 서로 다르다. 현실세계의 이름을 가상세계에서도 그대로 사용 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이미지 관리를 하는 정치인이나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자신이 만든 아이디를 사용한다. 아이디는 가상공간에서만 통용 되는 제2의 이름인 것이다.
아이디와 필명을 사용 할 수 밖에 없는 요인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인터넷 포털이나 사이트가 요구 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있어야 출입을 할 수 있게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 문자와 숫자로 조합된 아이디는 보기에도 딱딱하고 기계적인 냄새가 난다. 그런 점을 보완 하기 위해서일까 대부분의 포털에서는 인터넷필명을 가지도록 배려 하고 있다. 따라서 네티즌들은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거나 토론사이트에 글을 올릴 때 인터넷필명을 그럴싸하게 작명을 하여 사용 한다. 누가 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름을 만드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진짜일까
인터넷 필명은 자신의 정체성이 담겨 있고 또한 자신의 얼굴과도 같다. 비록 얼굴과 신원이 공개 되지 않는 사이버 공간이지만 올린 글만 보아서도 어느 정도인지 파악 할 수 있다. 전문지식이 있는지 깊이가 있는지 또 격이 있는지는 글로서 밖에 파악이 않된다. 그런 인터넷 논객 중의 하나인 '미네르바'가 검거 되었다고 한다.
미네르바의 글은 다 읽어 보지 않았으나 문제 되는 글은 여러 편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를 소재로 하여 몇 개의 글도 올려 보았다. 익명을 요구 하는 인터넷의 속성상 그의 전력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오로지 쓰여진 글로서 밖에 판단 할 수 없었겠지만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소유자 이었다고 판단 된다. 동시에 그의 거친 표현과 절제 되지 않은 언어 구사로 보아 약간은 반항적인 기질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그가 체포 되고 난 후에 밝혀진 사실은 30세의 초급대졸의 무직자 이었다는 것이다. 50대의 실물경제를 잘 아는 전직 증권사에서 근무 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 아니었고 고구마 파는 늙은이도 아니었을 뿐 더러 미국에서 공부한 파생금융상품전문가도 아니었다. 이것을 두고 검거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 진위 논란도 뜨겁다. 보수신문에서는 혹세무민 하는 인터넷논객이 별 볼일 없는 '좀비'이었다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기사를 내보내고도 있다.
검거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인터넷의 속성상 실명으로 글을 발표 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익명의 사람들이 포함 되어 있을 수 도 있다. 이번 발표로 만약 미네르바가 진짜로 아닌 것으로 밝혀 질 경우 시쳇말로 검찰은 '개쪽 나는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고 설령 진짜로 판명 날 지라도 소위 경제전문가라고 자처 하던 사람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 하였다는 비난을 벗어 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 필명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은 인터넷 필명이다. 다른 사람이 붙여 주는 별명과는 달리 필명은 자신이 작명을 한다. 자신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자를 사용 하는 것이 보통이다. 진흙속의연꽃 또한 누가 지어 준 것이 아닌 본인 작품이다.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걸 맞는 이름을 지어야 했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몇개의 이름을 사용 하다가 진흙속의연꽃으로 정착 되었다. 이제는 진흙속의연꽃을 알고 찾아 주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진흙속의연꽃이 블로그에서만 사용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각종 카페나 토론사이트에서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동창회 카페에 글을 올렸더니 어느 친구가 필명이 매우 고상하다고 하면서 본인이 맞느냐고 묻기도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늑대와 춤을' 이런 말은 영화의 제목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디언들은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짖는 다고 한다. 인터넷 필명을 보면 이런 스타일의 이름도 꽤 볼 수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법명이나 세례명을 인터넷필명으로 사용 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세대 가수들과 같이 숫자와 문자가 결합된 이름을 가진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지 이름은 자신을 나타 내는 또 하나의 인격이다. 비록 가상공간 일지라도 그 사람의 필명을 보면 어느 정도 정보를 알 수 있다. 진흙속의연꽃은 매우 좋은 이름이다. 이런 좋은 이름을 사용 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과연 그 이름에 걸 맞는 삶을 살아 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인생을 진행 하는 과정이라고 할 때 필명 역시 목표를 향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싶다.
'필업(筆業)'을 짖고 있는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사진은 물론 일체 정보를 공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 일부 법우들 외에는 모른다. 굳이 인터넷상에 모든 정보를 오픈하여 공개 할 필요는 없다. 이해관계를 추구 하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공유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글을 꾸준히 보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때 마다 부끄러워 어쩔줄 모른다.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 글을 통해서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바꿀 수 만 있다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올리되 항상 주의 하는 것이 있다. '필업(筆業)'이다. 인터넷시대에 글을 쓰고 올리고 하는 행위도 일종의 '업(業)'을 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신구의(身口意) 3업을 이야기 한다. 3업은 몸으로 짖는 행위, 말로 짖는 행위, 생각으로 짖는 행위이다. 이들 3업은 모두 없어 지지 않고 잠재의식 속에 고스란히 저장 되어 있다. 이것이 종자가 되어 인연이 되면 언젠가 발아 된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반드시 받게끔 되어 있다. 행위에 대한 과보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이 선업이든 악업이든 모든 의도적으로 벌인 행위는 그에 대한 댓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필업 역시 마찬 가지 일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올려진 글일지라도 인터넷의 바다의 둥둥 떠 다니다가 인연을 만나면 누군가에 의하여 읽혀 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진실을 써야 하고 쓴 글에 대하여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좋은 말이 있다.
참회 하나이다.
언어로 진실을 희롱한 죄
가슴 깊이 참회 합니다
이 글은 법구경을 번역한 석지현스님의 글이다. 언어나 글로 표현된 내용은 진실과 멀어지기 쉽상이다. 가급적이면 진실에 가까운 말이나 글이 되도록 노력 할 뿐이다. 그리고 잘 못 되었다면 그 즉시 참회 하여야 한다. 글을 쓰면서 항상 이 문구를 생각 하면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더구나 글을 쓰는 행위가 일종의 업을 짖고 있다고 생각 하면 더욱 더 그렇다.
사이버모욕죄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네르바는 그의 마지막 글에서 참회 하는 글을 올렸다. 10년전 IMF 외환위기 당시 미국에서 그가 한 행동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금융파생상품을 이용하여 돈을 번 것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고 도약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글이다. 글 내용으로 본 다면 현재 검거된 30세의 용의자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과연 검거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하여 참회 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참회가 자신이 쓴 글 내용에 대한 참회는 아니다. 약간은 거친 표현을 사용 하긴 하였지만 전문적인 식견으로 예측한 글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런 점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아 서일까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을 잡아 들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업을 짖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은 필업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인터넷실명제를 한다고 해서 크게 개선 될 것 같지 않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만 해칠 뿐이다. 자신이 올린 글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고 인터넷의 바다를 떠 돌다가 인연을 만나면 누군가 보게 될 것이다. 보는 사람이 자신과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볼 수도 있고, 반면에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볼 수 도 있다. 심지어는 가족이 볼 수도 있다. 갖은 욕설과 근거 없는 중상 모략의 글이 만일 사랑하는 자식에게 읽혀 졌다고 생각 한다면 어떠 하겠는가. 단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하는 사이버모욕죄와 같은 법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행위가 반드시 그에 대한 과보를 받을 수 밖에 없는'필업'을 짖는 것이라고 홍보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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