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미의 극치 국립중앙박물관, 국가 상징물은 왜 '지붕과 처마'를 외면 하나
군계일학(群鷄一鶴). 무리지어 있는 닭 중에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을 표현 하는 문구이다. 가끔 지나갈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대문의 기와 지붕이 군계일학처럼 보인다. 시멘트와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진 빌딩 사이로 보이는 동대문은 품위와 격조가 넘쳐 보인다. 그 자태는 주변의 멋대가리 없는 빌딩을 압도 하고 고고 하게 서 있다.
가장 한국적인 미(美)는
한국의 미는 어디에 있을까. 딱히 꼬집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기와 지붕의 처마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치켜 올려진 처마는 그 다지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다. 최상의 황금비율로 적절하게 들려져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심적 부담을 주지 않을 뿐더러 적절하게 올라간 처마는 격이 있어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중국의 처마가 급격하게 올라 가 있어서 다소 경박한 느낌을 주고, 일본의 경우는 거의 처마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내려가 있어서 시늉만 낸 경우를 볼 수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처마는 묘한 밸런스를 유지 하고 있어서 주위의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중후한 맛이 난다. 처마만 그럴까. 석탑에서 보는 처마 역시 같은 개념이다. 슬쩍 들려진 모서리는 지붕에서 보는 처마의 연장선상이다. 슬쩍 들려진 맛이 없는 석탑과 지붕의 처마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슬쩍 들려진 맛이 없다면 밋밋하고 싱겁기 그지 없을 것이다.
동대문. 지붕과 처마가 한국적인 미를 잘 표현 하고 있다.
박스모양의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았다. 살을 에는 날씨에 가 본 박물관은 마치 벌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에 바람 까지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20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지하철로 가게 되면 한참 걸어야 한다. 지하철과 가까운 곳에 출입구가 있는데도 불구 하고 그 곳을 폐쇄 해 놓았다. 그 대신에 빙 돌아서 정문으로 가도록 해 놓았다. 정문을 활용 하라는 의도 일 것이다. 추운 겨울 날씨에 벌판과도 넒은 곳을 반드시 정문을 통과 하라는 것은 방문자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라 느껴 지고 행정 편의 주의적인 발상이라 볼 수 있다.
정문으로 가 보지만 정문은 보이지 않는다. 문이 없는 공간을 통해서 들어 가는 것이다. 정문 앞에 정류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 역이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다. 승용차로 가는 사람들은 박물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 가가 때문에 추위를 느낄 겨를이 없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사람들은 여간 불편 한 것이 아니다.
정문아닌 정문을 통과 하면 마치 호수를 연상 하는 커다란 연못이 나오고 주위에는 조경이 잘 가꾸어져 있다. 무척 넓은 정원의 곳곳에는 드문 드문 석탑도 보인다. 마치 야외 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곳에 가지 않는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건물은 무척 거대 하다. 일자형으로 길이가 약250미터 내지 300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매번 느끼는 사항이지만 매우 디자인이 매우 단순하다. 네모난 박스를 옆으로 뉘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거대한 컨테이너를 보는 것 같다. 디자인 공모를 통하여 선정된 건축물 치고는 별다른 감흥이 일어 나지 않는다. 모든 장식을 걷어 낸 단순미의 극치, 바로 이런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 될 수 있겠다.
국립중앙박물관. 박스모양의 단순미가 특징이다. 사진 blog.daum.net/hjkim780531/
건축물에서 보는 열등의식
어느 나라 이든지 그 나라임을 상징 하는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궁궐'이나 '국회의사당' '박물관'과 같은 것이다. 그런 상징물은 그 나라의 이미지이자 정체성이라 볼 수 있다. 영국과 같은 경우는 국회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중국과 같은 경우는 '자금성'과 '천안문'이 대표적이다. 일본이라면 '천수각'이 있는 오오사카성이 떠오른다. 모두다 전통과 역사를 상징 하는 건축물이다. 박물관과 같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건축물 또한 역사적인 건축물을 따라 가는 경향이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이 보았을 때도 이미지가 잘 매칭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대만의 '고궁박물관'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국립박물관은 역사와 전통을 상징 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현대건축물의 표상과도 같이 느껴진다. 서구문화를 추종 하는 듯한 국적불명의 건축물과 같은 것이다.
서구를 추종 하는 듯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먼저 대학캠퍼스를 들 수 있다. 마치 영국의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연상하는 고딕식 건축물이 바로 그것이다. 식민지시대에 건축 되었다고는 하지만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이 그대로 묻어 난다는 것이다. 칠팔십년대에 지어진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와 세종문화화관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이러한 서구건축물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의 반발일까 최근에 지어진 국가의 상징물과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너무 현대화 되었다. 단순한 이미지는 마치 주변의 아파트와 빌딩의 단순하고 경쾌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주변의 이런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처마의 미를 살릴 수 있는 건축물을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상징 한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대만의 고궁박물관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 한다면 우리의 중앙박물관도 우리의 이미지에 걸맞는 상징을 가졌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불타 버린 남대문이나 수백년간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대문의 이미지를 투영한 건축물 같은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미를 간직한 처마의 아름다움을 살린 건축물 같은 것이다.
처마의 미를 살린 현대식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청와대를 들 수 있다. 비록 권위주의 시대에 독재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긴 하지만 한국의 미를 살린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처마의 미가 살아 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오래 된 것 들이다. 그런 모습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같은 궁궐에서 볼 수 있고 산중에 있는 천년고찰에서도 볼 수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자랑스럽게 내 놓을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건축물은 처마의 미를 표현한 건축물이라 여겨진다.
이왕에 국가를 상징 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만든다면 지붕과 처마가 들어 가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동대문의 지붕과 처마가 보는 이로 하여금 주변의 빌딩을 압도 하고 품위와 격조가 있어 보이듯이 말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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