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동네마다 수행센터를 하나씩, 미래의 한국불교를 위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 22. 13:58

 

동네마다 수행센터를 하나씩, 미래의 한국불교를 위하여

 

 

아파트에 입주 할 때 가 되면

 

여기저기서 재개발이 한창이다. 더 이상 아파트를 지을 땅이 없어서 노후되고 난개발된 주택단지를 깨끗이 밀어 버리고 그 자리에 타워형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아파트에 입주 할 때 가 되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교회에서 설치한 간이천막이다. 주변의 교회들이 전도 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몰려 오는 것이다. 마치 즉석 노천 시장이 열린 것 같다. 이들 교회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알리기 위하여 전도 할 뿐만 아니라 커피도 제공 하고 심지어 이사도 도와 준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신도유치를 하기 위하여 사활을 거는 현장에서 항상 느끼는 사항은 불교는 없다는 것이다.

 

입주가 완료 되고 난 후에 그 아파트를 방문 하였다. 일요일인데 불구 하고 아파트 주변의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여의도 S교회의 자식 교회가 있었다. 먼저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있었던지 전세버스로 나가는 차량이 있는 가 하면 예배를 보기 위하여 진입하는 차량으로 얽혀 있어서 도로는 북새통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하여 교통을 통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신자가 아닌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었다.

 

불자가 2000만이라는데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한지 어느 덧 5년이 되었다. 그 전에는 정서상 불자 이었다. 정서적으로 불교와 가깝다고 할지라도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불교를 가장 가장 많이 접할 때가 산에 갔을 때 이다. 산에 가면 산사가 있기 때문이다. 산사에서 보는 불교는 매우 은둔적이다. 너무나 고요 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 구경 하기 힘들다. 언제나 열려져 있지만 선뜻 법당에 들어 갈 용기는 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쭈뼛거리다가 내려 오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불교는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어 왔다. 그 결과 도시는 물론 농촌, 산간 오지 까지 교회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외형상 보는 모습은 영락없는 기독교 국가인데 불자가 2000만 이라고 한다. 통계상 잡혀 있는 숫자는 1000만이지만 정서적으로 불교와 가까운 사람들 까지 합쳐서 2000만 불자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동네에서 교회나 성당을 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도록 널려 있는 것이 교회이다. 교회에서는 기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치원도 운영 하고 공부방도 운영 한다. 주변의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서 점심까지 제공 하는 교회도 있다. 일요일만 되면 교회 주변은 늘 북적인다. 그것도 아이들 손을 잡고 오는 젊은층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동네에서만 기독교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도 접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재단에서 세운 병원과 학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교회는 반드시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반면에 불자가 갈 수 있는 곳은 그 다지 많지 않다. 한 도시에서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다. 기독교와 정서가 맞지 않고 불교가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정서적 불자가 갈 수 있는 곳

 

동네에서 구멍 가게 보다 더 많다는 것이 교회이다. 100미터 내지 200미터에 거의 한개 꼴로 있는 교회는 매우 다양하다. 상가에 전세 내어서 운영 하는 개척교회가 있는 가 하면 단독건물로 지어진 멋진 교회도 있다. 성당 같은 경우는 동네에 하나씩 있는데 보기에도 품격이 있어 보인다. 반면에 사찰은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보이는 것은 점집이다. 막대기에 깃발을 달아 놓은 점집은 보기에도 매우 궁색해 보인다. 이름도 보살이라는 글자가 들어 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것이 불교라고 오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기독교와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다. 그러다 보니 정서적으로 불자일 뿐이지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 먹고 불교를 공부 하려면 멀리 떨어져 있는 포교 전문 도량을 찾아 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찾아 간 곳이 강남에 있는 S선원이다.

 

S선원은 포교를 전문으로 하는 도량이다. 불교교양대학이 있어서 초심자에게 불교예절에서 부터 기초불교교리를 가르친다. 처음 접하는 예불이라든가 기초교리를 배우면 불자로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이 나이 들어서 오는 사람들이고 초심자이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추어 교육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의 훌륭한 여러 수행 방법이 있지만 근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절수행이나 관음기도등과 같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기도 위주이다. 의식도 체계화 되어 있어서 어느 면에서 보면 마치 기독교의 예배순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런 교육기관은 극히 드믈 다는 것이다. 기존 제도권 종단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교육체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입교한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작업이다. 정기적인 모임과 법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우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고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순례법회'이다. 전국에 걸쳐 있는 전통사찰을 전세버스를 내어 순례 하는 것이다. 마치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전국에 걸쳐서 수백개에 이르는 천년고찰이 있다는 것은 불교만의 가장 큰 장점이자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불교유산이다. 신행생활에 있어서 타종교와 가장 차별화 되고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순례법회만한 것은 없다고 여겨 질 정도이다.

 

제도권 종단을 보면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 하는 제도권 종단은 조계종이다. 조계종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먼저 나오는 글이 '수행과 전법으로 정진 하는 조계종'이라고 쓰여 있다. 수행만 하는 곳이 아니라 법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중의 하나인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현 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보여 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는 불교는 그런 캠페인이 무색할 정도이다. 산중을 제외 하면 사람이 사는 곳에서 불교를 접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제도권 종단에서 너무 승가 위주로 또는 수행위주로만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사실은 부처님 법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많아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제도권 종단이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력한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도시의 밤하늘은 십자가 천지로 변하였다. 불교의 교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혹시 종단의 울타리안에 있으면서 안주 하는 것은 아닐까.

 

공무원들은 일단 공직에 들어 가면 특별히 사고 치지 않는 한 정년퇴직 때까지 신분이 보장된다. 그리고 퇴직 하게 되면 늙어 죽을 때 까지 연금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자기개발 보다는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까 하는 것이 더 큰 관심사일지 모른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권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면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잘리지 않고 정년 까지 무사하게 마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눈치보기 복지부동등 몸보신을 위주로 오랬동안 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 경쟁력이 없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적응 하지 못하고 실패 하는 이유가 무사안일한 사고 방식으로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공무원 신분으로 있으면 아쉬울 것이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 되는 거대한 소비집단 임에도 불구 하고 그들이 누리는 권한과 복지혜택은 과분할 정도이다. 혹시 제도권 종단에 있는 승가사회가 공무원들과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교에도 개척정신을

 

한국교회의 특징중의 하나를 든다면 '개교회주의(個敎會主議)'를 들 수 있다. 어떤 종단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생존하는 시스템이다. 개척해서 키워 나가는 것이다. 철저하게 시장경쟁의 원리 아래에서 성장 하는 것이다. 지금 밤하늘에 보는 십자가 천지도 바로 이와 같은 개교회주의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누구나 원한다면 교회를 만들어 성장 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벤처회사가 성장해 가는 모습과도 같다. 여기에는 많은 부작용이 없지 않을 수 없다. 물질주의라든가 세속주의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장점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교세확장이다. 동네에 교회가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신도는 늘어 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신도를 확보 하기 위하여 피나게 노력하고 연구한다. 어떻게 하면 질 좋은 서비스를 해 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역기능이 있음에도 불구 하고 개교회주의가 성공하였다는 사실을 불교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S선원은 특이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불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 알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 놓은 것이다. 만일 종단에 속해 있었더라면 독자적으로 성장 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마치 개신교의 개교회주의를 보는 것과 같은 개척정신을 불교에 적용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제도권종단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받게 되는 불이익 같은 것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또 너무 물질적이고 세속적이지 않느냐 하는 비난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 하였다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 하다. 설령 방편으로 불교를 배웠다 할지라도 이것을 기회로 해서 좀 더 넓고도 깊게 불교를 알 수 있는 뗏목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강한 보수회귀성

 

21세기는 불교의 시대가 되리라고 하는 데는 세계의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구의 사상과 종교로는 더 이상 복잡하게 변화 해 가는 현실을 반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서 불교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불교TV에서 본 김지하는 말하기를 서양에서는 이미 불교신자가 가톨릭을 추월 하였고 미국에서도 1000만명에 달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매일 참선을 하고 특히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보급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서구와 미국에서 유행하는 불교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의 불교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염불이나 절수행, 다라니 기도 같은 '사마타' 수행법이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위빠사나' 수행 위주라는 것이다. 위빠사나는 남방 상좌부 불교의 수행방법이다. 서구와 미국에서 유행하는 수행방법이 바로 위빠사나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대승불교를 신봉 하고 있지만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그들은 근본불교부터 시작 하는 것이다. 이런 수행방법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수행센터가 세워지고 수행열풍이 불고 있는 것을 보면 근본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종교의 강한 보수회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네마다 수행센터를 하나씩

 

기존 제도권 종단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동네마다 십자가 천지가 되었다. 불교도 동네마다 최소한 하나 정도는 사찰이 있어서 부처님법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법을 배풀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면 무언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으로 안되면 패러다임을 바꾸면 된다. 개교회주의와 같은 '개사찰주의'도 좋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부처님당시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반드시 사찰의 형식을 띠지 않아도 좋다. 단월드가 곳곳에 있듯이 동네마다 수행센터가 하나씩 들어 서는 것이다. 유발수행자가 지도 해도 무방하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무상 고 무아의 3법인에 충실 하면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수행방법이라 불리우는 위빠사나와 같이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수행방법은 불자가 아닌 일반인은 물론 타종교 신자에게도 매우 유효한 홍보 수단이다. 부처님 당시로 돌아가서 부처님 법에 충실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교 다운 것이다. 3법인에 충실하고 수행을 하였을 때 불자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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