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낙산사 숭례문 그리고 용산철거민 참사로 보는 '화재불인(火災不仁)'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 24. 10:35

 

낙산사 숭례문 그리고 용산철거민 참사로 보는 '화재불인(火災不仁)'

 

 

최초로 죄의식을 느꼈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의 일이라 기억 된다. 시골에서는 추수가 끝난 다음에 짚단을 논 가운데 쌓아 놓는다. 같은 또래의 조무래기 들이 그 짚단 주변에서 쥐불놀이를 하였다. 그런데 논둑길에 놓은 쥐불이 쌓아 놓은 짚단으로 옮겨 붙었다. 아이들은 불을 끄려고 하였지만 한번 붙은 불은 좀처럼 꺼질 줄 몰랐다. 불이 점점 확대 되고 거세어 지자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도망가기 시작 하였다. 한참 불을 끄다 보니 혼자만 남게 되었다. 점점 불길이 더 치 솟아 오름에 따라 왈칵 겁이 나기 시작 하였다. 혼자서는 더 이상 불을 끌 수 없음을 알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조마조마하고 쿵당 거리는 마음으로 산속에 숨어 있었다. 처음으로 죄의식을 느낀 순간이다. 불난 곳의 상황이 궁금 해서 도저히 숨어 있을 수 없었다. 슬며시 불난 곳을 보았는데 먼 친척 뻘 되는 아저씨가 삽으로 열심히 불을 끄고 있었다. 그 후로 그 아저씨만 보면 불난장면이 자연스럽게 떠 오르는 것이다.

 

불이 나면 모든 것을 삼켜 버림을 알 수 있다. 초기에 잡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대 되어 나중에는 커다란 불기둥과 함께 모든 것을 무너 뜨려 버린다. 그런 장면을 낙산사 화재에서도 보았고 작년에는 숭례문 화재에서도 보았다. 이번에는 용산철거민 농성 현장에서 보았다. 낙산사 화재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라면 숭례문화재는 고의적인 인재이다. 천재이든 인재이든 불길은 인정사정이 없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무너 뜨려야만 끝이 난다. 용산참사 같은 경우도 역시 인재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는 데 있어서 최악의 인재라 볼 수 있다. 불길을 피하기 위하여 매달려 있던 사람이 힘이 빠지자 힘 없이 추락 하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미천한 존재들은 왜 항상 이렇게 생을 마감해야 되는 것일까.

 

고고성(苦苦性)과 괴고성(壞苦性)

 

이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 말한다. 즐거운 순간 보다 고통스런 기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자신의 몸이 아플 때이다. 만일 뼈가 부러졌다면 뼈저린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 것을 '고고성(苦苦性)'이라 한다. 고통 그 자체라는 뜻이다. 또 한가지 고통은 '괴고성(壞苦性)'이다. 무너져 내리는 고통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나 무언가 잘 못 되었을 때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이다. 마치 가슴이 미어지고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은 뼈저린 고통 못지 않게 괴롭다.

 

살아 가면서 고고성 보다 괴고성을 더 많이 느낀다. 육체적 고통이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끝까지 가슴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괴고성을 자신의 주변에서만 느낄 수 있을까. 이미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이 보여도 내일 같이 여겨 지는 것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의 생각이다. 숭례문이 무너 졌을 때 마치 자신의 집이 타 버렸을 때와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용산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었을 때 자신의 주변의 사람이 죽었을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모두 무너져 내리는 고통의 연장선상이다.

 

불신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은 최후로 받는 괴로움이다. 그 전에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가장 크게 알아 차릴 수 있는 것은 서로 믿는 마음이다. 거짓말을 한다든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믿음은 깨진다.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넘어 갈지 모르지만 반복 되면 더 이상 신뢰 하지 않게 된다. 대화가 단절 되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 되다 보면 사단이 나게 되어 있다. 자그마한 불씨 하나로 커다랗게 불이 붙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 보는 정권이 그와 같은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불신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불똥이 튀면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번져 갈 것이다. 불길이 너무 거세면 불길을 잡을 수 없다. 커다란 불기둥과 함께 무너져 내려야만 끝이 난다.

 

 

 

 

숭례문도 초기진화에 실패 하였기 때문에 홀라당 태워 먹었다. 용산철거민 화재도 대응 방법이 서툴렀기 때문에 무너져 내렸다. 한번 붙은 불은 초기에 진화 하지 못하면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모든 것을 무너뜨린 다는 것을 TV화면을 통하여 똑똑히 보았다.

 

 

 

200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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