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너무 많이 무너진 노숙자, 그렇게 바랬기 때문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14. 16:16

 

너무 많이 무너진 노숙자, 그렇게 바랬기 때문일까

 

 

가공할 어둠을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파란 창공을 보게 된다.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도 깊다. 반면에 밤에 타는 비행기는 그 어둠을 가늠 할 수 없다. 아마도 이럴 때 '검을 현()'이라는 한자어가 실감이 날 정도이다. 영어로 표현 하면 '배스트 블랙니스(Vast Blacknes)'정도가 되겠다.

 

사업을 하다 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업이 망해 갈 때 그 과정을 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곧 바닥이 곧 닿을 것 같은데 바닥은 보이지 않고 끝까지 추락하였을 때 동시에 마음도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그 무너 내릴 때의 마음이 밤중에 비행기에서 바라 보는 가공할 정도로 넓고도 깊은 어둠 같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바닥에서

 

노숙자에 대한 프로를 종종 보고 있다. 주로 서울역에서 노숙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한결 같은 모습은 자고 있는 모습이다. 차디찬 바닥에 두터운 종이 몇 장 깔고 지저분한 이불을 푹 뒤집어 쓴채 죽은 듯이 자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더 이상 내려 갈 곳 도 없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땅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자세가 노숙자가 처한 현실을 말해 준 다.

 

 

 

 

 

바닥은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다. 더 내려 간다면 지하가 있을 것이다. 지하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광막한 어둠만이 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보는 가공할 만한 어둠 같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노숙자들이 자는 곳은 가장 낮은 곳이다. 보통 땅바닥이지만 땅바닥 보다 더 낮은 곳이 지하철 바닥이다. 그래서 지하철 바닥으로 몰리는 모양이다. 갈데 까지 가는 곳이 가장 낮은 지하철 바닥이다. 아마 지하철 바닥 보다 더 낮은 곳이 있다면 더 낮게 내려 갈지 모른다.

 

너무 많이 무너진 그들

 

노숙자들의 대부분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더 이상 이세상을 살아 가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재기할 여력도 없다. 너무나 많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한번 무너져 내린 마음은 여간 해서 끌어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너진 사람에게 꿈과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 해 보았자 멀고 멀어서 도저히 갈 수 없는 먼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어느 노숙자가 말하기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오가는 사람이 가장 부러웠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돈도 권력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보통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가장 부러웠다는 말이다. 한 때 자신도 보통사람이었다가 지금은 보통사람측에도 끼지 못한 회한이 가득 찬 말이라 볼 수 있다.

 

어느 노숙자가 반평짜리 고시원에 입성 하는 장면을 보았다. 16만원 하는 반평짜리 고시원은 간신히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그러나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차가운 바닥에서 나와 두다리 뻗고 자는 것만 해도 무척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까지에는 무너진 마음을 가장 먼저 추스렸다고 한다. 반평짜리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아마 그 다음 단계는 한평짜리로 올라서는 꿈을 꿀지 모른다. 마치 혹독한 지옥에 있다가 그 보다는 약간은 편한 지옥으로 상승 된 것 같은 모습이다. 한번 무너져 내리면 한단계 올라가기가 그토록 힘들다는 것을 프로는 보여 준다.

 

모든 것은 바램이 있어서

 

노숙자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이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죽지 못해서 살아 가는 사람 같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너무나 많이 무너졌다. 한번 무너져 내린 마음은 그 어떤 다른 것으로도 회복하기 힘들다. 여기에는 종교와 같은 관념적인 개념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쓰러진 바닥에서 일어나려면 바닥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처절한 현실인식 밖에 없다. 차가운 바닥을 차갑게 느끼고 딱딱한 바닥을 딱딱하게 느꼈을 때 현실인식을 하게 된다. 결국은 스스로 느끼고 알아 챌 수 있을 때 만이 땅바닥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노숙자들의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저만치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제는 갈래야 갈 수 없는 저 먼 언덕임에 틀림 없다. 죽음이 구원해 주기 전까지는 결코 갈 수 없는 언덕이다. 그 언덕으로 건너 가고자 해도 갈 힘도 없을 뿐더러 가고자 하는 마음도 없이 물끄러미 쳐다 만 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세상 사는 사람들 역시 노숙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따뜻한 방이 있고 당장 먹을 것이 주어져 있다는 것 외에 그 무엇이 노숙자와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노숙자가 되고 되지 않고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쩌면 노숙자는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바랬기 때문에 노숙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은 바램이 있어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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