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12연기와 위빠사나, 보석 같은 인터넷 법문을 들으며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21. 10:15

 

12연기와 위빠사나, 보석 같은 인터넷 법문을 들으며

 

 

흔히 넑고도 큰 의미로서 '바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고통의 바다' '윤회의 바다' '중생의 바다' 와 같이 용어 뒤에 바다를 붙여서 강조 한다. 특히 이런 현상은 불교의 경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런 바다의 이미지가 요즘에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바다'와 같이  새로운 용어로서도 많이 쓰여 지고 있다.

 

단순반복성작업과 '멀티태스킹'

 

현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업무가 컴퓨터로 처리 되고 수시로 검색하고 조회 해 보아야만 일을 원활 하게 처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컴퓨터는 네트워크와 접속 되어 있다. 따라서 일하면서 인터넷도 하고 인터넷도 하면서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이 일반화 되었다. 그래서 모니터에 수 많은 화면을 띄어 놓고 작업 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사실 이런 멀티태스킹작업은 예전에도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것과 같은 케이스이다. 물론 단순 작업일 것이다. 단순히 반복 되는 작업에서는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작업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때에 따라 업무의 효율이 오르기도 한다. 집중을 요구 하는 작업에서는 금물이지만 단순반복성 작업에 있어서는 최적의 조건이라 볼 수 있다.

 

한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보면서 하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작업 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케이스이다. 그러나 들으면서 하는 작업은 가능 하다. 한쪽 눈으로는 작업을 하고 두 귀로는 들으면서 하는 행위이다. 물론 글을 쓰는 것과 같이 고도의 집중을 요구 하는 경우에는 소리가 귀에 들어 오지 않지만 단순 반복성 작업과 같은 경우에는 가능하다. 이런 면으로 보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크게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보석같은 인터넷 법문을 들으며

 

정보의 바다와 같은 인터넷에서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보석과 같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런 자료 중에 법문이 있다. 인터넷법문이다. 굳이 사찰을 찾아 가지 않아도 작업 하면서 들을 수 있다. 한쪽 귀로 법문을 듣고 두 눈으로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중요한 이야기는 다 들어 온다. 설령 놓쳤다고 할지라도 다시 되돌려서 들으면 된다. 그런데 이런 법문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들을 만 한 가치가 있어야 듣는 것이지 들을 가치가 없으면 듣다가 말게 된다. 그런 법문을 즐겨 듣는 사이트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한국위빠사나 선원의 대구법문'이다. 제목은 '12연기와 위빠사나 대구법문'인데 24회까지 올라와 있다. 한회에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에 걸친 꽤 오랜 법문이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 있는 말이다. 그 열정과 확신에 찬 법문은 아무래도 부처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 일 것이다.

 

 

 

 

 

 

 

법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깨달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보통 법문을 한다고 하면 후자가 가장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주로 공식적으로 초대 된 곳에서 '고승대덕'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법문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보통 1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속적으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믈다. 또 한편으로 소속 사찰에서 법문하는 경우는 지나치게 보시만 강조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마치 기복신앙을 조장 하는 듯한 모습이다. 기도를 강조 하면서 그에 따른 가피와 신비스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찰 운영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전자와 같이 깨달음과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법문은 그다지 기도나 기복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깨달음에 이르게 된 '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때문에 그 끝이 없을 정도로 소재거리가 풍부하다. 보통 시리즈로 역어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법문을 잘한다고 반드시 수행을 잘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수행을 잘 한다고 해서 법문을 잘 한다는 법 또한 없다. 그러나 법문을 들어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정법을 이야기 하는지, 지혜가 있는지, 어느정도 깨달았는지에 관하여 미천한 중생일지라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부처님이 깨달은 좋은 법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것도 '행운'이고 복이라면 ''일 수 있다.

 

 

 

2009-02-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