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탁발 스님과 노방 전도사, 무애행인가 막행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24. 08:52

 

탁발 스님과 노방 전도사, '무애행(無碍行)'인가 '막행(莫行)'인가

 

 

고교시절 선생님의 별명은

 

고등학교 시절에 어느 선생님의 별명은 '미친개'이었다. 언제부터 미친개로  불리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꽤 오래 된 듯 보였다. 아마도 입학하기 전부터 그런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 별명이 해를 이어 전수 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학년이 올라가게 되어서 마침내 그 선생님의 시간이 되었다. 듣던 대로 험상굿게 생겼고, 특히 흰자위가 번뜩여서 눈동자가 매우 날카로웠다. 좀체로 웃지 않은 얼굴에 무표정한 그 선생은 듣던 대로 파격적인 행동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미친개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어느 특정한 사람을 기억할 때는 그 사람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떠 오른다. 특이한 생김새나 차림새 또는 말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이미지와 그 사람을 동일시 하게 된다. 이렇게 한번 고정된 이미지는 여간 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비록 지금은 다른 이미지일지 모르지만 그 때 당시에 느꼈던 이미지가 고착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일까.

 

놀이공원에서 보는 탁발스님

 

불교와 기독교로 대표 되는 우리나라의 종교 역시 이미지를 먹고 산다. 출발부터 다른 두 종교가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 국민의 반 이상이 이들 종교를 믿고 있는 현실에서 가급적이면 좋은 이미지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는 별개로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가 '탁발' '노방전도'라고 볼 수 있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극히 드문 일이지만 탁발을 나오는 스님을 볼 수 있다. 무조건 들어와서 목탁을 치면서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불자라면 차마 외면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보통 내보내기 마련이다. 특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 다닌다'라고 말하면 두말 없이 나간다고 한다. 사무실이나 가정집을 도는 케이스는 그다지 많이 볼 수 없지만 서울대공원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또한 탁발하는 스님이다. 앞에 보시함을 놓고 목탁을 치면서 절을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남이 보건 말건 열심히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면으로 보면 마치 수행 하는 것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자가 보았을 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다들 그 주변을 피해 가는 것으로 보아 거부감을 가졌음에 틀림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선뜻 보시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주말마다 그리고 가장 사람들이 번잡할 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방전도 하는 것도 관광상품?

 

인사동거리는 이제 한국을 대표 하는 명소가 되었다. 가장 한국적인 물건들을 파는 거리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거리로 변모 하였다. 거리는 차량통행이 제한 되어서 보행자 천국이다. 주말에 보는 인사동 거리는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으로도 넘쳐 난다. 그런 거리에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확성기에서 전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들린다. 흔히 말하는 '노방전도사'이다. 그의 앞과 뒤에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관광지어서 일까 한자와 영어로도 쓰여 있다. "야소천국 불신지옥(耶蘇天國 不信地獄)" "Load Jejus Heaven, No Jejus Hell" 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중국인 관광객과 영어를 아는 관광객을 겨냥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노방전도사가 확성기를 이용해서 커다랗게 떠 들고 다녀도 제지 하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옆에 있는 경찰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노방 전도 하는 것도 관광상품이어서 일까.

 

 

 

 

 

 

어부지리를 얻는 천주교

 

탁발과 노방전도는 극과 극의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고정된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 하면서 절을 하는 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온 거리를 헤집고 돌아 다니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한편이 '()'적이라면, 다른 한편은 '()'적이다. 한편이 보시를 바라는 입장이라면 다른 한편은 어떻게 해서든지 알리려 한다. 마치 한국에 있어서 불교와 기독교의 현재의 모습을 투사(投寫)해서 보는 것 같다. 이런 이미지가 본래의 불교와 기독교의 이미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이런 이미지가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 된다. 그래서 불교 하면 탁발이 떠 오르고, 기독교 하면 노방전도가 떠오르게 된다.

 

탁발과 노방전도가 전반적으로 해당종교의 이미지를 갉아 먹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곳이 천주교이다. 아직까지 천주교에서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노방전도 행위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서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잘 짜여진 성직자들의 복지체계에 대하여 부러워 하는 스님도 보았다. 노후 복지가 제도적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굳이 길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항이 좀 더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종교로서의 이미지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천주교의 성장세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로마교황청의 관리감독하에 있기 때문에 '외세의존' '국부유출론' 같은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나홀로 스님'을 승가라 볼 수 있나

 

외세의 지원이 없는 불교나 개신교는 독자적으로 생존해 나가야 한다. 특히 개신교 경우 필사적으로 신도를 늘려 가야 생존 할 수 있다. 그래서 사활을 걸고 신자 유치 경쟁을 벌인다. 신도가 많아야 교회가 커 나갈 수 있고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겁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대표적인 말일 것이다. 여기서 불신은 '불신(不信)'을 말하지만 일부는 불신을 '불신(佛信)'으로 해석해서 말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때에 따라 기도도 하고, 파괴도 서슴치 않는 것도 자신들이 잘 되기 위한 바램일 것이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개신교의 목회자와 비교하여 불교의 승가는 그리 필사적으로 신자유치에 매달리지 않는다. 승가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과 같이 노후를 보장 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불안감에서 일까 일부 스님들은 사적인 재산을 축적한다고 한다. 특히 '나홀로 스님'이나 '떠돌이 스님'일 경우라 한다.

 

불법승 3보라고 하였을 때 '()''승가(僧伽)'를 말한다. '나홀로 스님'이 아닌 여러 대중스님의 집합체가 '승가'이고 3보 중의 하나인 ''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홀로 스님'이나 '떠돌이 스님'을 과연 승가로 보아야 할까. 또한 승가공동체를 떠나 홀로 탁발하는 스님의 모습은 과연 무애행일까 막행일까.

 

탁발과 노방전도, '무애행(無碍行)'일까 '막행(莫行)'일까

 

미친개 하면 그 선생의 얼굴이 떠 오르듯이 탁발과 노방전도는 불교와 개신교의 이미지를 갉아 먹는다. 특히 종교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일 수록 더욱 더 이미지에 좌우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가 선한 이미지, 봉사하는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 한다. 또한 매스컴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번 추기경의 장례행사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은 결정적으로 천주교에 유리하게 작용 했을 것이다. 거의 전시간대에 걸쳐서 연일 보도 되는 천주교에 대한 동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선교를 해준 셈이다.

 

이와는 반대로 탁발이나 노상전도를 하는 행위는 해당 종교의 이미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고집스러운 일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다양한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획일화 되고 제도화된 틀 속에서 안주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걸림없이 사는 '무애행(無碍行)'을 하는 종교인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위도 지나치면 '막행(莫行)'이 된다. 막행한다고 했을 때 그 막행은 '막장'을 의미한다. 갈 때까지 갔다는 의미이다. 막장이라는 말이 반드시 '막장드라마' '막장정치'와 같이 갈때 까지 간 드라마나 정치에만 쓰여진 용어는 아니다. 때에 따라 종교에도 적용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서 보는 어느 스님의 '탁발'과 인사동거리에서 '예천불지'를 부르짖는 노방전도사, 과연 이들의 하는 행동을 '무애행'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막행'으로 보아야 할까.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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