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들쥐와 같이 몰래한 미디어법, 겉으로는 경제논리 속으로는 종교논리?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26. 10:52

 

들쥐와 같이 몰래한 미디어법, 겉으로는 경제논리 속으로는 종교논리?

 

 

아파트에 살면서 좀처럼 쥐를 볼 수 없다. 쥐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집이나 허름한 곳 또는 들에서는 쥐를 볼 수 있다. 사람의 눈을 피해 사는 쥐의 특성은 '몰래 몰래' 한다는 것이다. 늘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사람이 없을 때 나타나서 먹이감을 찾고 사람이 보이면 곧 바로 도망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쥐의 특성 때문일까  어느 미군 사령관은 한국인을 '들쥐떼'와 같다고 비하하기도 하였다.

 

마치 들쥐떼들과 같이

 

미디어법이 기습상정 되었다고 한다. 아무렇치도 않은 척 이야기 하다가 순간적으로 방망이를 두드렸다고 매스컴에서는 전한다. 마치 쥐의 특성을 보는 것 같다.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 거리다가 몰래 먹이를 찾는 것과 너무나 유사하다. 이렇게 기습상정 하게 된 배경에는 윗선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미 망가진 몸 더 이상 망가지기야 하겠느냐'는 오기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마치 들쥐떼들과 같이 법을 처리 하려는 것일까.

 

 

 

 

 

 

 

 

흔히 드는 논리 중의 하나가 '경제논리'이다. 신문과 방송을 겸영 하면 일자리 창출에 기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 하고 있지만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 이라고 야권에서는 반박하고 있기도 하다. 또 한가지 논리는 '정치논리'이다. 방송을 장악함으로서 정권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수층의 영구집권에 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야권에서는 비판 하고 있다. 또한 사이버모욕죄와 같은 법을 만들어 악성 댓글을 차단 하겠다는 것 역시 정치논리라 볼 수 있다. 집권당은 경제논리를 통하여 당위성을 말하고, 야권은 정치논리를 들어서 반박 하고 있지만 하나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 것은 종교논리이다.

 

겉으로는 경제논리, 속으로는 종교논리?

 

엠비정부는 개신교공화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엠비 자신이 독실한 신앙일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뉴라이트와 같은 극우 보수 기독단체의 회장인 목사가 직접 예배를 주관 한다고 하니 종교논리에 휘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반대 하는 미디어법을 강행처리 하는 것도 겉으로는 경제논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종교논리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생각 하기 까지는 그럴만한 요인이 있었다. 먼저 서울시장 시절에 한 발언이다. 서울을 자신의 신에게 봉헌하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부산에서 열린 어느 기도회에서의 축사이다. 공교롭게도 그 기도회는 '불교말살 기도회' 이었다. 이와 같이 심증적으로 여러가지 의심을 받고 있는 그가 미디어법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의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경제논리를 이야기 하지만 속으로는 이 나라를 자신의 신에게 바치고 싶은 것이다. 즉 방송법을 만들어서 자신의 종교에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내게 함으로서 선교도구로 활용 하고 , 사이버모욕죄법을 만들어 자신의 종교를 비방 하는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함으로써 안티를 줄여 보겠다는 발상일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경제논리 보다 종교적인 논리를 우선적으로 생각 나게 하는 요인이다.

 

조중동이 방송을 접수 하게 되면

 

동아일보 2 26일자를 보면 '잿밥'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기자가 칼럼을 썻는데 잿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원래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비유를 써야 하나 약간은 배려 한 느낌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주교에 대한 예우는 극에 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때 매일 3개내지 4개면을 선행이야기로 도배 하다 시피 한 내용이었다. 이런 현상은 정진석 추기경이 추기경의 서품을 받았을 때도 마찬 가지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 났을까 궁금 하였는데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칼럼에서 알아 내었다. 최근 최시중이 쓴 칼럼을 보면 동아일보의 창업주인 김성수가 천주교 세례자 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대목이 있다. 동아일보가 천주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기사를 내 보내고 도배 하다시피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김수환추기경 장례식날 제목은 " 님은 떠났지만 우리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었다.

 

신문이 특정한 종교인에게 장악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동아일보를 통하여 '타종교인게는 불공정하고 자신의 종교에는 우호적이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방송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mbc kbs2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또는 중앙일보에 접수 되다면 그 폐해 또한 불을 보듯 명약관화 할 것이다. 종교논리로만 본다면 선교의 장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직접적인 선교는 힘들더라도 간적적인 선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교회나 성당의 선행위주 보도, 시상식때 소감 발표, 골세레모니 중계등 직간접적인 선교는 얼마든지 시도 할 수 있다. 반면에 타종교에 대하여는 간접적인 비하를 일삼을 수 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대사를 집어 넣는다든가, 바위에 절하고 무속행위를 보여 줌으로서 불교와 전통종교는 저급한 '미신행위'나 하고 '우상숭배'나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라고 은연중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불평등의 심화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같은 신문은 보수층을 대변하고 있다. 보수층은 기득권 세력으로서 이들 대부분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이다. 강남3구와 양천, 분당등과 같이 이들 보수층이 사는 지역의 종교 분포도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들 지역의 종교구성 비율을 보면 70내지 80프로가 개신교 아니면 천주교인이다. 이들 지역의 1위는 개신교이고 2위는 천주교이고 불교는 3위로서 소수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개신교와 천주교가 보수화 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보수층을 대변하는 조중동이 방송을 장악 하게 된다면 정치적인 불공평함 못지 않게 종교적인 불평등도 심화 될 것이다.

 

 

 

20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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