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점보러 갔을 때 "어떤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라고 말한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3. 10:15

 

점보러 갔을 때 "어떤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라고 말한다면

 

 

 

 

 

 

점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말은 많이 들었다. 점쟁이들의 특징은 지나간 과거는 잘 맞추는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잘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나간 과거를 잘 맞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의 책임도 있다고 한다. 점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 과정 중에 과거 이야기를 해 버리기 때문에 쉽게 과거를 맞춘다고 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비단 점쟁이 한테 만 해당 되지 않을 것이다. TV고발 프로에서 보는 '과외선생'이야기도 이와 유사 하기 때문이다. 과외선생이 어머니와 상담 할 때, 어머니가 자녀의 문제점에 대하여 술술 풀어 놓기 때문에 대처 하는 방법이 쉽다는 것이다.

 

사실 점쟁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는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우선 생김새 부터 보고 차림새와 자세를 보면 큰 테두리는 파악 할 수 있다. 얼굴표정이 밝고 위의 있게 생겼으면 현재 잘 풀려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반면에 얼굴이 어둡고 무언지 불안한 듯 하면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음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차림새를 보면 직업도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다. 넥타이를 매었느냐 캐주얼 차림이냐에 따라 대강은 나온다. 그러나 족집게 처럼 파악 할 수 없다. 단지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파악 할 수 있다. 그래서 점보러 갔을 때 "어떤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라고 말하는 점쟁이가 있다면 불합격이라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 후회하고 집착 한다. 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 하고 걱정 하며 살아 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거에 집착하면 추억에 젖어 사는 것이고, 미래를 걱정 하면 공상으로 사는 것이다. 둘 다 실재세계가 아닌 머리속의 세상 즉, '관념의 세계'게 살고 있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는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일종의 관념의 세계에 사는 것이고, TV를 보고, 라디오 음악을 듣고, 인터넷을 하는 것 역시 관념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머리속의 세상에서 즐거워 하고 기뻐 하고 미워 하고 슬퍼 하는 것이다. 이런 관념의 세상에서 살다 보면 실재의 세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실재의 세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느낌이다. 그 느낌은 딱딱한 것일 수도 있고, 부드러운 것일 수 있다. 또 차가운 것을 수도 있고, 따뜻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알아차리면 실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뜨거운 물에 디었을 때 라든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5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 온다는 것이다. , , , , 몸이 5가지 감각기관이다. 중요한 것은 5가지 감각기관으로 느꼈을 때 이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과거가 이와 같은 5가지 감각기관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기 때문에 각자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이모양 이꼬라지도 알고 보면

 

누구나 다 과거를 가지고 있다.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할 자신만의 비밀이 담긴 과거도 있을 수 있고, 누구한테나 자랑하고픈 영광된 순간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현재의 삶을 지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원인으로 생긴 결과가 현재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업질러진 물이다. 한번 지나 간 것 다시 주어 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가는 수 밖에 없다. 미래의 결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왕이면 선업을 쌓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를 크게 두가지 나눈다. '선업' '불선업'이다. 여기서 불선업을 악업이라 하지 않고 불선업이라 한 것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과 불만족, 불편함은 모두 불선업의 과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불선업은 왜 생기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불선심'때문이다. 선하지 않은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 선하지 않은 마음은 크게 3가지를 벗어 나지 않는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 차리자는 것이다. 5가지 감각기관으로 느꼇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위의 3가지를 벗어 나지 않는다. 눈으로 보았을 때 더 보고 싶은 것이 탐욕이고, 귀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반응이 성냄이 아니고 무엇일까. 현재의 이모양 이꼬라지도 알고 보면 자신이 저지른 과보에 대한 댓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점쟁이 한테 달려 간다고 해서 해결해 줄까. 한가지 긍정적인 면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 준다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처방을 즉각 내려 주는 것 따위이다. 즉 부적을 붙여라든지 기도를 해라 굿을 해라 든지 하는 것등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행위는 또 다른 불선업을 만들기만 할 뿐이다.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를 해야만 이 고통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심을 갖는 것이다. 불선심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라면, 반대로 선심은 '관용' '자애' '지혜'이다. 정 반대의 개념이라 볼 수 있다. 탐욕에 대비 되는 것이 관용이고, 성냄에 대비 되는 것이 자애이고, 어리석음에 대비 되는 것이 지혜이다. 결국은 지혜를 개발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갈애와 집착

 

지혜를 개발 하기 위해서는 갈애를 차단 해야 한다. 갈애는 왜 생기는가. 5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 오는 느낌을 차단 하지 못했을 때 발생 하는 것이다. 단지 느낌으로만 받아 들이면 끝났을 텐데 여기서 더 나가 버린 것이다. 사람을 보았는데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얼굴이 예쁘네, 몸매가 좋네 하면서 발전 시켜 나가는 것이 갈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에서 갈애로 발전 하여 과거가 형성 되는 것이다. 지금 받고 있는 과보가 과거의 갈애와 집착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자신의 과거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오죽 했으면 부처님도 개인의 업은 어찌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업에 대한 과보는 받아 들여야 한다. 단지 지금 부터 새로운 업을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쓰라린 과거가 실패의 연속 이었다면, 지금 부터는 고통으로 부터 해방 되기 위한 업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작업이 수행일 것이다.

 

 

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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