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몸과 마음으로 생긴 문제는 몸과 마음으로 풀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2. 18:20

 

 몸과 마음으로 생긴 문제는 몸과 마음으로 풀어야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차이점은

 

사마타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대상과 하나가 되느냐 분리되는냐의 차이 일 것이다. 번뇌가 있다면 사마타 수행의 경우에는 억누르려고 하지만, 위빠싸나 수행에서는 말리려 한다. 어떻게 말리는가. 객관적으로 관찰 하는 것이다. 즉 관념이 아닌 실제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따뜻한 느낌, 차가운 느낌 같은 것이다. 따라서 위빠사나 수행은 철저 하게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한다.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이끈 수행

 

위빠사나 수행은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이르게 한 수행법이다. 만일 이 수행 보다 더 좋은 수행법이 있다면 그 쪽으로 가겠다는 선지식도 있었다. 이 말은 자신이 이제까지 경험한 수행중 최고의 수행이다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1700년 역사이다. 주로 스님들은 선정수행을 하고, 일반신자들은 기복수행 하는 것이 보통이다. 복을 빌기 위하여 샤먼적이고 관념적인 수행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와 같은 사마타 수행으로 깨달음으로 이르지 못하였다. 6년간 고행을 하고 선정수행을 하였지만 도중에 포기 하였다.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이끈 수행은 사마타 수행이 아니고 위빠사나 수행인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전혀 경험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패러다임

 

위빠사나 수행은 이제까지 한국불교에서 전혀 경험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근본을 흔들어서 뒤집어 엎는 것 같은 이 수행법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대상을 단지 분리 해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순수 위빠사나 수행법은 세계적으로 마하시 사야도 방법이 유명하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다.

 

과거칠불이 깨달은 수행법도 위빠사나

 

그렇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최초로 발견한 수행일까. 그렇지 않다. 이세상에 출현 하신 부처님은 총 25분이다. 그 중에 근세의 부처님을 칠불이라 한다. 즉 비바시불(毘婆尸佛 Vipaśyin)·시기불(尸棄佛 Śikhin)·비사부불(毘舍浮佛 Viśvabhū)·구류손불(拘留孫佛 Krakucchanda)·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Kanakamuni)·가섭불(迦葉佛 āśKyapa)·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Śākyamuni)을 말한다. 이중 비바시불은 91겁전에 출현 하였고, 시기불은 31겁전에 출현 하였다. 나머지 5분의 부처님은 모두 1겁 이내에 출현 하였다. 미래의 부처님이 될 미륵 부처님도 1겁 이내에 출현할 부처님이다. 위와 같은 7분의 부처님이 깨달은 수행법 역시 위빠사나이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은 과거 7불이 거친 코스가 다 똑같다는 것이다. 모두다 왕족으로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아들을 하나 둔다. 그리고 부처를 탄생시킨 어머니는 곧바로 죽게 된다. 부처님을 낳게 한 자궁은 두번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처님들은 항상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역대 부처님의 공통적인 사항은 죽음에 대해서 숙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역관으로 가다 보면 최종적으로 마추 치게 되는 것은 '무명(無明)'이다. 모든 원인이 무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순관으로 가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곳이 '느낌'이다. 여기에서 위빠사나로 통찰 하고 '느낌이 갈애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발견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은 특별한 법칙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누구한테나 적용 되는 법칙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생긴 문제는 몸과 마음으로 풀어야

 

위빠사나 수행은 '느낌을 갈애로 넘어 가지 않게 하는' 수행 방법이라 볼 수 있다. 12연기 중에 이 단계에서 깨달음이 일어 난 것이다. 흔히 말하는  보리수나무아래에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가는 단계에서 깨달은 것이다.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저 하게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생긴 문제는 몸과 마음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이비설신의 6문이 6경과 마주쳤을 때 '느낌'으로 알아야 한다. 부처님이 "나는 모든 것을 알았다" 라고 말했을 때 '모든 것' '몸과 마음'이다. 즉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몸과 마음이다. 무엇으로 알아야 하는가.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느낌은 나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것은 6가지 감각기관의 느낌일 뿐이다. 또 그 느낌은 영원하지도 않고 매순간 변한다. 불교는 '실재(reality)'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느낌이 변한다는 것은 '무상(無常)' 하다는 것을 말한다. 무상함은 괴로움을 동반 한다. 변한다는 것은 또한 나가 없다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무상 고 무아를 통찰 하면 갈애로 넘어 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업을 짖게 되지 않음으로서 '열반(nirbana)'에 이를 수 있다.

 

열반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성취해야

 

역대의 모든 부처는 12연기를 통찰하여 열반에 이르렀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산물일 뿐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에 의해서이다. 열반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성취해야 한다. 누가 옆에서 도와 주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념이 아닌 실재 하는 대상을 관찰 함으로서 무상 고 무아를 봄으로서 갈애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열반을 처음으로 맛 본 단계를 '수다원'

 

이러한 열반을 처음으로 맛 본 단계를 '수다원'이라 한다. 수다원은 7생이내에 아라한이 되어 해탈하게 된다. 수다원과에 이르면 모든 부부관계를 끊고 수행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전한다. '사다함'은 한번더 인간으로 태어난 후에 해탈하게 된다. 그래서 '일왕래(一往來)'라 한다. '아나함'은 색계 정거천에서 태어난다. 유일하게 수행할 수 있는 천상이 정거천이라 한다. 여기에서 태어나 해탈하게 된다. 그래서 '불래(不來)'라 한다. 마지막으로 아라한은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해서 번뇌가 사라진 존재를 말하고 다시 태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생(不生)이라 한다.

 

열반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위빠사나 수행은 남방불교의 도그마가 아니다. 부처님이 객관적으로 통찰하여 깨닫게 된 단 하나의 유일한 길이다. 그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느낌에서 갈애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반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수행은 자아를 강화 시키는 사마타 수행이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자아를 강화 하지 않는다. 즉 번뇌를 억누르지 않고 풀어 버린다. 그렇다면 열반은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수행을 하게 되면 몸이 사라짐을 느낀다. 다음에 호흡이 사라진다. 그 다음으로 마음마져 사라진다. 이상태가 열반이다. 깨달음이란 정신적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없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또 죽어서 어디로 갈지도 두렵지 않다.

 

마하시 사야도, 쉐우민 사야도, 모곡 사야도

 

위빠사는  수행은 부처님이 가신 길이고, 또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다. 그런 위빠사나는 4가지 대상을 주로 본다. '신수심법'이다. 이들 4가지 대상을 알아 차리는 데 있어서 느낌을 본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스승에 따라 보는 방법이 약간씩 차이가 있다. 마하시 사야도는 몸보는 수행위주이고 쉐우민 사야도는 마음을 보는 수행 위주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마음을 가슴으로 오게 하여 그 콩닥 거림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6문을 차단 하게 되고 갈애로 넘어 가지 않게 된다. 또 한분의 스승은 모곡사야도이다. 이분은 대학자로서 아비담마 논장을 강의 하엿고 12연기를 체계화 시켰다. 12연기와 위빠사나를 병행하여 알게 된다면 좀 더 빨리 진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림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이글은 한국위빠사나선원의 대구법문(1) 518일자를 인터넷으로 듣고 요약정리한 것이다.

 

 

 

2009-03-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