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사념처의 사띠(sati), "마음챙김"이라는 말보다 "알아차림"이 더 친근해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27. 07:49

 

사념처의 사띠(sati) 번역어, "마음챙김"이라는 말보다 "알아차림"이 더 친근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말의 뉘앙스가 다른 이 말들은 모두 '사띠(sati)'의 번역어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챙김'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알아차림'이라고 말하는 사띠는 신행단체 마다 부르는 말이 서로 다른 듯 하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불교tv에서 초기불교를 강의 하는 각묵스님은 사념처 강의를 할 때 사띠를 '마음챙김'이라고 정의 하였다. 그 근거로서 '사티 빠따나(sati-patthana)'를 예를 들고 있다. 사띠를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자이다. 염을 우리말로 풀이한 가장 적절한 어휘가 '마음챙김'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한 설명으로서

 

첫째, 마음이 대상에 깊이 들어 가는 것

둘째, 대상을 거머 쥐는 것

셋째, 대상에 확립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마음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는 뜻에서 마음챙김 이라는 것이다. '챙김'이라는 말은 '화두챙김'이라는 말의 '챙김'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간화선 수행자가 좀 더 이해 하기 쉬운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무래도 출가수행자의 입장에서 용어선택을 하지 않았나 생각 된다.  그러나 재가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챙김이라는 말은 그다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무언가 접근 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챙김이라는 말 보다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훨씬 더 친숙하고 가슴에 다가 옴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불교방송의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프로를 들어 보면 분명히 '알아차림'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알아차림이라는 용어는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 처음 부터 끝까지 '알아차림 부터 시작 하여 알아차림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경우이든지 알아 차리라고 말한다. 움직이면 움직임을 알아 차리고, 느낌에 변화가 있으면 그 느낌을 알아 차리고, 무언가 하려 하면 그 의도를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알아차림 만능주의'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알아차림이라는 쉽고 친근한 단어 대신에 '마음을 챙겨라'라고 한다면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공통어는 '계속해서 주시하라'

 

사띠가 마음챙김으로 번역 되든, 알아차림으로 번역 되든 그 뜻은 '대상을 분리 하여 지속적으로 기울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vipassana) vi'분리하다'라는 뜻이고, 빠사나는 '계속해서 주시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상을 분리해서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위빠사나이다.

 

대상을 분리 하여 지속적으로 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보통 우리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매순간 변화 하는 몸과 마음의 실재 성품을 보자는 것이다. 그 보는 방법이 '사념처(四念處)'이다. '신수심법(身受心法)' 네가지에 대한 고찰이다. 네가지 대상 즉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을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느냐이다. 위빠사나 수행센터에서 나오는 교재를 보면 명쾌 하게 정의 해 놓고 있다.

 

신념처는 육체의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는 것,

수념처는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느낌을 알아 차리는 것,

심념처는 정신 또는 의식의 과정을 알아 차리는 것,

법념처는 이상의 세가지 범주에서 나타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것, 즉 모든 심리현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결국 무상 고 무아를 보자는 것

 

그래서 걸을 때나, 서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몸에서 일어 나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려서 '물질과 정신이 분리 되는 지혜'를 알자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하려는 의도를 알아 차려서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 것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 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신념처이다.

 

느낌에는 세가지가 있다. 괴로운 느낌, 즐거운 느낌, 무덤덤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모두 알아차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탐심과 괴롭기 때문에 성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즐거운 느낌 또한 계속 즐겁기를 바라는 탐심이 있고 즐거움이 사라져서 성을 내는 성냄이 있다. 이런 느낌들을 알아 차리면 모두 일어났다 사라지는 무상함과 그에 따르는 고와 무아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생멸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수념처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홀연히 일어 날 수 있다. 특히 감각대상에 생각이 일어 났을 때 가장 강렬하다. 그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자는 것이다. 단지 '생각' '생각' 함으로서 알아차리고 '소멸의 지혜'에 이르를 수 있다. 이 때 어떤 생각이 일어 났을 때 한번 알아차리기만 해도 그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심념처이다.

 

알아차림은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된다. 특히 위의 세가지를 제외한 모든 심리적인 현상이 대상이다. 볼 대상이 생기면 '' '' 하고 알아차리고, 들리는 대상이 있으면 '들림' '들림' 하고 알아 차린다. 그런 대상을 알아차림으로 인하여 빠른 사라짐을 경험 하고 영원 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상 고 무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법념처이다.

 

이렇게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근기(根基)'를 개발 해야 한다. 보통 5근이라 불리는 우는 근기는 빨리어로 '인드리야(indriya)'라고 한다. 5근은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를 말한다. 근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이와 같은 5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 될 것이다.

 

마음챙김보다 알아차림이 더 친근해

 

이상으로 살펴 본 바와 같이 사띠를 마음챙김 보다 알아차림으로 인식 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 하기 쉽다. 볼 대상이 생겼는데 "'' '' 하고 마음 챙겨라"고 하는 것 보다 "'' '' 하고 알아 차려라"라고 하는 것이 더 알기 쉽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까 대부분의 수행센터에서는 알아차림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 교재도 보면 처음 부터 끝까지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나오지 마음챙김 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참고로 한 책은 '우 쿤달라 비왐사' 법사가 지은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행복한 숲) '이다.  

 

 

2009-03-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