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감각적 욕망의 극복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27. 11:04

 

감각적 욕망의 극북에 대하여

 

 

 

 

박연차 리스트와 자연 리스트, 지금 세상은 두개의 리스트가 온 나라를 흔들다 시피 하고 있다. 전자는 '산 권력''죽은 권력'에 대한 보복으로 보여 지고, 후자는 '유한권력''무한권력'의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유한권력과 무한권력의 차이는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보면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엿 볼 수 있다. 잘못된 정책이나 잘못된 언행에 대하여 매우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비판을 넘어 조롱, 비아냥, 욕설등이 예사 이다. 어느 측면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도 생각 되지만 유한권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선출로 뽑혀지는 국회의원과 임명함으로 공직에 나서게 되는 장차관등 고위 관료들은 임기가 있다. 주어진 임기 내에 최대의 성과를 내고 국민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 못 하였을 때 가혹하리 만치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을 허용 하지 않은 그룹이 있다. 바로 '유한권력자'들이다. 이들은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았고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본의 힘으로 권력을 가졌기에 그 힘은 무한 하다. 이런 무한권력들이 '섹스스캔들'에 연루 되어도 비판 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한권력의 최고봉인 대통령 보다 더 높아 보이는 것이 무한권력이다. 무엇이 두려운지 아무도 이에 대하여 거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의 댓글 까지 차단 해 놓은 상태이다. 그런데 여기서 들려 오는 소문의 핵심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각적인 욕망'에 관한 것이다.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과시 하고 싶어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과시 하고 싶어 한다. 하다 못해 쥐꼬리 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힘을 과시 하고 남용 하기까지 한다.

 

군대에서 말년 병장들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비록 매우 짧은 기간일지라도 이 세상 어느 누구 보다도 부럽지 않은 권력의 맛을 본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힘은 '집합'에 있다. 집합시켜서 기합 한번 주면 파닥 파닥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졸병들이 식사때 마다 밥을 타다 주고, 근무 나갈때 장비를 챙겨 주고, 잠잘 때 마다 잠자리를 챙겨 준다. 마치 제왕과 같은 권력을 내무반에서 누리는 것이다. 이런 권력의 단맛을 보았기에 권력에 대한 향수가 남 다를 수 밖에 없다.

 

고기도 먹어 보아야 맛을 안다고 권력도 누려 보아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사회지도층인사들도 그런 케이스에 속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 했다는 사람들 역시 권력의 맛을 알고 있다. 그런 권력도 지나치게 사용하면 권력남용이 된다. 자신에게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과시 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속성이다. 이와 같이 남아 도는 힘을 쓰다가 스러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에 상당 부분이 '섹스스켄들'에 관해서 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중에 성추문에 휩쓸려 사라진 사람들이 수 도 없이 많이 있다. 한 때 환경운동가로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도 성스캔들로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잊을 만 하면 한번씩 터져 나오는 성스캔들 역시 당사자와 해당조직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 것은 명백히 권력남용에 해당 하기도 하지만 감각적인 욕망에 굴복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지금  장자연 리스트에 거명 되고 있는 인사들 역시 감각적욕망의 희생자들이라 볼 수 있다.

 

'배꼽아래' 두고자

 

감각적인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권력이 있것 없건, 부자이건 아니건 간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감각적인 욕망이다. 보통 5욕락을 누린다고 말할때 식욕, 성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5가지 욕심을 말한다. 여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이다. 성욕과 감각적인 욕망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마슬로우 욕구 5단계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감각적인 욕망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패가망신 하는 케이스를 수 도 없이 보아 왔다. 과연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까.

 

바닷물이 있다. 바닷물을 맛보기 위하여 바닷물을 다 마셔 보지 않는다. 단지 한 모금만 마셔 보아도 그 짠 맛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다 소유 할 수 없다. 한사람의 배우자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일부일처제가 생겨 난 것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에 만족 하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지위와 금력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소유 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도 최고로 인기 있는 사람을 소유 하려고 한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케익스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일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마리아 칼라스'등 여러명의 여자들과  결혼 경력을 가지고 있는 오나시스가 최후로 결혼한 사람은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이었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 가. 최고권력자이었던 대통령의 부인을 자신의 소유로 하였다는 '정복감'의 발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통령의 부인도 돈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배꼽아래'에 둠으로서 그의 정복욕을 만족 시켰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권력자들이 유명 영화배우나 탤런트등 연예인을 가까이 하는 이유도 자신의 정복의지의 발로라 볼 수 있다. 이런 욕구는 유한권력이나 무한권력 모두 다를 바 없다. 이런 것을 보면 돈과 권력과 감각적인 욕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감각적 욕망에서 해방 되려면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도 권력은 잠시 뿐이다. 천년 만년 가는 것이 아니다. 때 되면 내 놓아야 하고 내려 와야 한다. 감각적욕망 역시 그때 뿐이다. 그 느낌이 영원히 지속 되지 않는다. 한번 분출함으로서 맥없이 식어 버리는 것이 감각적 욕망이다. 그러나 그 감정과 이미지를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저장 해 놓고서 기회만 되면 표출 하려 한다. 마치 바다에서 갈증 난다고 자꾸 바닷물을 퍼 마시는 것과 같다. 새로운 감각적 욕망을 찾아서 가다 보니 결국은 장자연리스트 같은 것이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감각적 욕망에서 해방 되려면 수행 밖에 없다. 어떤 수행을 해야 되는 가.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된다. 감각적 대상을 보았을 때 알아 차리면 된다. 예를 들어서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지나간다고 할 때 단지 알아 차리면 된다. 그냥 '' '' 하고 알아 차리고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마음속에 저장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우리마음은 대상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일어 났다 사라진다. 그런데 그 순간적인 마음속에 17단계의 인식이 작용 한다. 맨 처음 대상을 보았을 때 눈으로 들어 온다. 그리고 예쁘다고 인식 하게 된다. 그 다음에 예쁜 느낌을 이제는 마음속에 저장한다. 이렇게 한번 대상을 봄으로서 그 대상을 마음속에 등록하여 이미지를 저장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저장된 이미지를 기억의 창고에서 꺼집어 내어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그냥 볼 뿐 마음속에 저장 하여 이미지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한다면 17단계의 인식작용 중에 4단계에 해당 되는 오문인식과정의 '무인작용식(無因作用識)'이다.

 

알아차림의 위력을 보면

 

살다 보면 보지 않을 수 없고 듣지 않을 수 없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노출이 심한 옷이나 몸매가 드러난 옷을 입고 다니는 여인과 마주치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때 단지 '' '' 하고 지나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시 한번 더 쳐다 보고 그 이미지를 마음속에 저장 해 둔다. 그리고 생각 나면 그 이미지를 꺼내어 본다. 그 저장 과정은 마음의 인식과정인 17단계가 모두 작동 하는 것이다.

 

한번 저장된 이미지의 대상과 혹시라도 마주치면 이제는 말을 걸어 보려 할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점차 친숙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스켄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대상을 마주친다면 단지 '' '' 하고 그치면 가장 좋다. 마찬가지로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잔소리나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 같은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속이 뒤집혀서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에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단지 '들음' '들음' 하고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냄새나 맛과 같은 경우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이와 같이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다섯가지 감각대상과 마주쳤을 때 4단계에서 다음단계로 진행 하여 저장 하지 않고 곧바로 빠져 나오게 하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이와 같이 알아차림을 강화 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발생 될까 통상 수행이 깊어지면 다음과 같은 단계를 체험 한다고 한다.

 

첫째, 약한 희열로 소름이 끼치거나 닭살이 돋고 털이 일어나느 느낌.

둘째, 순간적인 희열로 전기에 감전 된 듯 짜릿하거나 시원하고 기분 좋은 느낌.

셋째, 파도 같은 희열로 파도를 탄 듯 공간을 떠 다니는 느낌.

넷째, 들어 올리는 희열로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이 들거나 실제로 공중부양을 함.

다섯째, 퍼지는 희열로 온 몸에 완벽하게 스며 들듯이 기쁨이 충만한 느낌.

 

이상은 희열은 수행중에 집중이 깊어 지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희열과 감가적인 욕망에 의한 희열은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행중에 나타나는 희열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범부들에게 부처님 법을 알게 되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하여 그림을 동원 하였다. 이것이 '얍윰(yab-yum)'이다. 여성배우자와 성관계를 하고 있는 남성신의 모습이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받아 들일 수 없는 매우 불경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을 잘 모르는 범부들에게 방편의 아버지의 반야의 어머니가 합일 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서 간접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범부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와 비교 될 수 없는 희열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중에 나타 나는 희열도 현상 일 뿐이므로 알아 차릴 대상이다. 그냥 알아 차리고 지나가야 한다고 한다. 희열이 오래 지속 되기를 바라는 것은 탐심이 작용 해서이고, 희열이 사라지면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 탐내고 성낸다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희열에 집착하는 것도 탐진치가 작용하기 때문에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모든 대상은 일어 났다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욕망 역시 일어났다 사라진다. 단지 과보만 남길 뿐이다. 장자연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인사들 역시 과보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의도적인 행위는 발생한 순간 그 행위에 대한 과보를 남기고 사라져 간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마음은 크게 믿을 것이 못된다. 일견 무책임 해 보이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영원히 지속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일어 났다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과보가 다음 마음에 전달 된다. 이렇게 마음은 일어 났다 사라지고 그 과보가 연속적으로 상속 되어 흘러 간다. 이것이 마음의 속성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 만치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서로 다르고 이순간의 마음 또한 다르다. 그러니 이 것이 과연 내마음이라 볼 수 있을까. 칭찬해 주면 기분이 좋아 지고, 그러다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돌변 하는 태도가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마음이다. 지금 평온한 마음일지라도 감각적인 대상을 보았을 때 거기에 끄달려 가는 것 역시 마음이다. 이렇게 감각적인 대상에 끄달려 다니지 말고 알아차리자는 것이 수행이다. 감각적인 대상을 보았을 때 단지 '' '' 하고 알아 차리고, 속 되집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단지 '들음' '들음' 하면서 알아 차리는 것이다. 이 것은 피치 못하였을 때 하는 방법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피하는 것'이다. 감각적대상과 부딪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손자병법에도 있지 않은가 마지막 계책인 36계는 '여의치 않으면 피하라' 이다. 피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다. 피하지 못하여서 온갖 리스트가 난무 하는 세상이다.

 

 

2009-03-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