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위빠사나 수행기10] 행복이나 불행은 상카라에서, 짝쿠빨라와 맛타꾼달리

담마다사 이병욱 2009. 3. 30. 12:51

 

[위빠사나 수행기10] 행복이나 불행은 상카라에서, 짝쿠빨라와  맛타꾼달리이야기

 

 

 

 

 

 

12연기에서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일어난다의 좋은 예를 법구경의 제1게송과 제2게송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법구경 제1게송의 배경 '짝쿠빨라'장로 이야기

 

먼저 법구경의 제1게송이야기 이다. 흔히 짝쿠빨라(Cakkhu-pala) 장로 이야기라 한다.

 

짜꾸빨라라는 말은 짝쿠(cakkhu,)와 빨라(pala, 보호자)의 합성어 이다. 이 용어는 장로가 눈이 멀었음을 암시 하고 있다.

 

주석서에 따르면 장로는 과거생의 어느 때 내과 의사로서 눈먼 여인의 눈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기 전에 여인은 자신의 눈만 고쳐 준다면 평생종노릇을 하겠다고 약속 하고 거기에다 한 술 더 떠 자신의 자식들까지 대대로 종노릇을 하겠다고 약속 하였다. 그런데 시력을 회복 하게 되자 눈이 보이지 않는 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도중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이를 안 장로는 괘씸 하게 생각 하여 다시 눈이 멀게 되는 약을 주어 눈을 멀게 하였다.

 

이런 악업으로 인하여 장로는 수 많은 생 동안 괴로움을 겪었고 마지막 생에서 짝쿠빨라 장로가 되었다. 수행처에서 눈병이 났음에도 불구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 대로 열심히 정진 하여 아라한 되었다. 그런데 아라한이 됨과 동시에 장님이 되었다. 사람들은 장로가 눈이 멀게 된 것을 지나치게 열심히 정진한 댓가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전생에 저지른 악업에 대한 댓가를 받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짝쿠빨라 장로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아라한이 된 뒤에도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 했다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사실은 장로가 경행을 하면서 많은 벌레들을 밝아 죽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안 다른 비구가 부처님께 보고 하였다. 장로가 살생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은 장로는 살생을 하지 않았다고 평결 하였다. 왜냐하면 죽일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짝쿠빨라 이야기에서 알게 되는 중요한 사실을 3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첫번째는 자신이 지은 과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을 노래 한 것이 법구경의 제1게송이다.

 

 

마음이 마음부수을 앞서 간다.

불선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뒤 따른다.

마치 수레가 소의 뒤를 따르듯이.

 

 

이 게송을 12연기식으로 풀이 한다면 '식을 조건으로 해서 물질과 생명(명색)이 일어난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게송의 첫번째 구절의 마음은 ''에 해당 될 것이고, 마음부수는 '색수상행'이 될 것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음의 작용이 필연적으로 따라 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젠가 불선한 말을 했거나 행동을 하였다면 그에 수반 되는 괴로움은 필히 뒤따를 것이라는 이야기 이다. 짝쿠빨라 장로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장님이 된 것은 눈병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수행을 너무 열심히 해서 눈이 먼 것이 아니라 전생의 과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심코 읽은 법구경에 이와 같은 배경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그만치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 이다. 이 게송을 좀 더 아름답게 표현한 석지현스님의 것으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고통은 그를 따른다.

수례의 바퀴가 소를 따르듯......

 

 

둘째는 살생에 관한 이야기 이다.

짝쿠빨라 장로가 아라한이 되었음에도 불구 하고 경행중에 벌레를 밝아 죽여 살생을 하였다는 이야기 대하여 이 것은 살생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 하였다. 짝쿠빨라 장로가 경행중에 벌레를 밝아 죽인 것은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살생으로 볼 수 없다는 부처님의 말이다. 그렇다면 살생은 어떤 경우에 해당 되는 것일까 다음의 5가지가 이에 해당 될 것이다.

 

첫째,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

둘째, 살아 있는 생명이라고 아는것.

셋째,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려고 의도 하는 것.

넷째,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

다섯째, 살아 있는 생명이 죽는 것을 보는 것.

 

이와 같은 사항을 보면 살아 있는 낚지를 산채로 먹는 다든가 파리나 모기를 잡는 다고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 모두 살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아라한의 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라한이 되면 누구나 신통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통을 얻으려면 선정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러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 져서 걸을 때 벌레를 밝아 죽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짝쿠빨라 장로는 선정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경행중에 벌레를 밟아 죽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살생을 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은 살생이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부처님도 선정 수행을 하였기 때문에 신통이 있었을 것이고 걸을 때 깃털처럼 가벼워서 벌레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구경 제2게송의 배경 '맛타꾼달리'이야기

 

법구경의 제2게송 이야기는 맛타꾼달리 (Matthakundali)이야기에서 근거 한다.

 

맛타꾼달리는 바라문 아딘나푸바카(Adinnapubbaka)의 외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맛따꾼달리를 극진히 사랑 하였지만 지독한 구두쇠이어서 대장장이에게 들어 가는 돈을 아끼려고 자신이 손수 아들의 귀거리를 광택해 주었다. 그래서 광택 낸(matta) 귀거리(kundala)란 뜻의 '맛타꾼달리'로 부르게 되었다. 16살 때 맛타꾼달리는 황달에 걸렸지만 아버지는 돈을 아끼려고 의사를 부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차도가 없자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볼까봐 아들을 바깥 마당에 옮겨 놓았다. 부처님 께서는 천안으로 맛타꾼달리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큰 연민을 일으켜 바라문의 집앞에 오셨다. 너무 병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소년은 부처님에 대한 깊은 신심을 불러 일으키고는 죽었다. 그리고는 넓이가 30평방이나 되는 황금궁전의 천신들 가운데 태어났다. 맛타꾼달리가 자신의 전생을 조사해 보자, 전생의 아버지가 묘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시체를 화장하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맛타꾼달리의 모습으로 변해 묘지에 가서 아버지 옆에 서서 울기 시작 했다. 왜 우냐고 묻자 천신은 달을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 하는 과정에서 천신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아버지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다음날 바라문은 부처님을 식사공양에 초대 하였고 공양을 다 마치자 부처님께 단지 믿음만으로 천신계에 이를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바라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맛타꾼달리가 바라문에 나타나도록 해서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 시켜 주었다. 부처님의 법문이 끝나자 맛타꾼달리와 바라문은 모두 예류과를 얻었다(DhA.i.20ff.;Vv.vii9;VvA.322ff.;Pv.ii.5;PvA.92).

 

 

위의 맛타꾼달리이야기를 보면 '소년은 부처님에 대한 깊은 신심을 불러 일으키고는 죽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과연 어떤 신심이었기에 깊은 믿음으로 충만 하였을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의 세가지라 볼 수 있다.

 

첫째가 삿다(saddha)이다. 우리말로 표현 하면 신뢰라는 뜻이다. 삼보에 귀의 할 때와 같은 믿음을 말한다.

 

둘째가 빠사다(pasada) 이다.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를 말하며 청정한 믿음을 말한다.

 

셋째는 아디목카(adhimokkha)이다. 이 믿음은 확신을 말한다. 해탈 열반을 향하는 확신, 결단, 결심을 말한다.

 

이와 같은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해에 기반을 둔 확신을 뜻한다. 따라서 소년이 부처님의 대한 생각만으로 천신계에 태어 났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위의 맛타꾼달리이야기가 법구경의 제2게송의 배경이 된다. 교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불선'대신에 '선'을, '괴로움' 대신에 '행복'을, 그리고 마지막 구절을 '그림자가 물체를 떠나지 않듯이'로 바꾸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마음이 마음부수을 앞서 간다.

선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행복이 뒤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떠나지 않듯이.

 

 

이것을 다시 석지현스님의 아름다운 번역게송으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다.

 

 

2.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순수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기쁨은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불행이나 행복은 상카라에서

 

위와 같이 짝쿠빨라장로이야기와 맛타꾼달리소년이야기를 통하여 법구경의 제1게송과 제2게송의 마음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이 두개의 게송은 '상카라()로 인하여 식이 생긴다'라는 연기의 가르침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12연기에서 상카라(sankara)는 업형성력으로 볼 수 있고, 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상카라의 업은 모두 의도(cetana)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법구경의 제1게송과 제2게송은 불행이나 행복이 상카라에서 생긴다고 설하고 있고, 실제로 행복(수카, sukha)이나 불행(둑카,dukkha)은 식과 함께 생긴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식은 연관된 마음부수와 그 물질을 토대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으로 인하여 정신-물질(명색)이 일어난다'는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다.

 

 

 

2009-03-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