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방해업과 업장소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7. 2. 10:24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방해업과 업장소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거래를 하다 보면 돈을 먼저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이 정부기금과 같은 눈먼 돈을 확보 하기 위하여 먼저 입금을 해 주고 일은 나중에 하는 식으로 한다. 또 기간이 지나면 사용 할 수 없는 돈과 같은 경우도 이에 해당 된다.

 

돈에 대한 집착을 보면

 

비록 금액이 큰 경우는 아니지만 일단 돈이 들어 오면 마치 내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금방 일을 줄 것 같이 말을 하였는데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도 소식이 없다. 급기야 6개월이 지나고 1년 가까이 가도 소식이 없다가  연락이 온다. 이런 경우 일을 해 주고도 몹시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공돈이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먼저 돈을 받았기 때문에 늦게 나마 일을 해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화장실 가기전의 마음과 갔다 오고 난 후의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을 해 주고 돈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익월 결재, 즉 다음달 결재가 일반화 되어 있으나 두달이 가고 세달이 가도 도무지 결재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밀리다가 6개월 이상이 지나면 사실상 포기 하게 된다. 그러다가 거의 잊을 만한 때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의 기분은 마치 공돈이 생긴 듯한 느낌이다.

 

돈 거래는 일이 완성 됨과 동시에 이루어 지는 것이 좋다. 먼저 돈을 주어 버리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거래가 후불제이다. 월급도 후불제가 대다수를 차지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서비스 분야의 경우 선불제와 후불제의 차이는 매우 크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릴지라도 자신의 돈을 떼어 먹은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잊지 않는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덜 하기 때문에 잊을 수 있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돈 거래를 하였더라도 빌려 간 사람은 잊어 버릴 수 있다. 심지어는 빌리지 않았다고 딱 잡아 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금액이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평생 가슴에 안고 산다. 그만치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어떤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로 부터 방해를 받고 있는 듯한

 

사회에서 업무로 사귄 친구가 있다. 그는 지금 신용불량자이다. 자기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한 때 잘 나가던 벤처회사 사장 이었다. 회사가 성장 할 때에는 너무나 스무스하게 성장 하더라는 것이다. 주변에 도와 주는 사람도 나타 나고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갈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계약을 놓고 그 때 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 하더라는 것이다. 그 때 당시를 생각 하면 마치 누군가로 부터 방해를 받고 있는 듯한느낌이었다고 한다. 결국 계약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그 길로 회사는 하향 곡선을 그으면서 부도의 길로 갔다고 한다.

 

누군가로 부터 방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 또는 하는 일 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등이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업의 과보를 받았다고 말한다. 과거에 저지른 행위에 대한 업의 과보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선업을 지었다면 예전에 못 받았던 돈을 받든 듯한 느낌일 것이고, 불선업을 지었다면 먼저 받은 돈에 대한 일을 지금 해 주고 있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런 거래 관계가 금생에서 정리 되지 않고 내생으로 넘어 갔다면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 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 훼방을 놓는 듯한 느낌 같은 것이다. 그리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일 같은 것이다. 반면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귀인(貴人)’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경우도 과거 전생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업이 무르익어서

 

()이란 무엇일까. 빨리어로 업을 깜마(kamma)’라고 한다. 깜마는 영어의 do동사와 같은 의미이다. 즉 일반적인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다 업이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 의도가 개입된 행위를 업이라고 한다. 이것은 초기경에서도 명확히 정의 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의도적인 행위를 업이라고 말한다.

몸과 말과 뜻으로 의도하고서 업을 짖는다.

(증지부)

 

 

그런데 부처님과 아라한은 업을 짖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무명과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과 아라한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업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업을 짖는 데 있어서 유익한 업을 지을 수 도 있고 해로운 업을 지을 수도 있다. 여기서 선과 불선의 판단은 철저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에 따른다. 그래서 지은 업이 결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업이숙(業異熟)’이라 하고 빨리어로는 깜마위빠까(kamma vipaka)’라 한다. 업이숙을 업의 과보라 말하고 보통 업보(業報)’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업보는 업이 열매를 맺기에 적당한 조건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특정한 알음알이의 상태나 정신적인 요인을 말한다. 이런 업보는 다음과 같이 분류 할 수 있다.  

 

 

1. 기능에 따라

1) 생산업(janaka kamma)

2) 돕는업(upatthambhaka kamma)

3) 방해업(upapilka kamma)

4) 파괴업(upaghataka kamma)

 

2. 과보를 생산하는 순서에 따라

1) 무거운 업(garuka kamma)

2)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asanna kamma)

3) 습관적인 업(acinna kamma)

4) 이미 지은 업(katatta kamma)

 

3. 성숙하는 순서의따라

1) 금생에 받는 업(ditthadhammavedaniya kamma)

2) 다음 생에 받는 업(upapajjavedaniya kamma)

3) 세번째 생부터 끊임없이 받는 업(aparapariyavedaniya kamma)

4) 효력이 없는 업(ahosikamma)

 

4. 과보를 생산할 장소에 따라

1) 해로운 업(akusala kamma)

2) 욕계 유익한 업(kusala kamma)

3) 색계 유익한 업

4) 무색계 유익한 업

 

 

이렇게 총 16가지가 된다. 이 열여섯가지 중에 방해업다음생에 받는 업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보이지 않는 방해업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떼여도 그 원한은 평생 가게 된다. 하물며 수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전재산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면 그 심정은 어떠 할까.

 

알고 지내는 가까운분 중에 그런 분들이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당한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믿을만 하기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 하였는데 어느 날 잠적해 버린 케이스이다. 그렇게 당하고 나면 정상적인 생활을 거의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분노와 자책감이 뒤얽혀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허다하다고 한다. 만일 도중에 떼어 먹고 도망간 사람을 만났다만 아마 사단이 날지도 모른다.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 가는 것이다.

 

한을 품고 살아 가는 사람중에는 육체적으로 폭력을 당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금생에서 만나게 된다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파장은 항상 미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불선업을 쌓은 사람은 아마도 되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업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방해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방해업은 과보를 생산해 내지 못하지만 다른 업이 과보를 산출 하는 기능을 할 때 그 것을 방해 하고 좌절 하게 하여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에 대항 하거나 그 기간을 단축 시키게 기능을 하는  업이다.

 

 

돈 떼어 먹은 일을 예로 든다면 그 과보로 인하여 그 동안 닦아 왔던 선업의 과보를 다 까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삶의 과정에 있어서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방해업이 끼여 있는 것을 누구나 인지 할 수 있다.

 

한번 지은 업은 반드시 과보를 남기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과보를 금생에 받을 수도 있고 다음생에 받을수 도 있다. 조건을 만난 업이 익어서 과보로 작용 하기 때문이다. 업이 조건을 만나 금생에 익게 된다면 금생에 과보를 받을 것이고, 조건을 만나지 못한다면 내생으로 넘어 갈 것이다. 내생에서 지은 업이 조건을 만나면 그 때서야 성숙 되어 과보로 작용 할 것이다.

 

돈 떼어 먹은 사람을 금생에 만나지 못하고 다음생으로 넘어 간다면 업이 조건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업이 익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내생에서 돈 떼어 먹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서로 잊어 버렸겠지만 어떤 계기로 인하여 만남이 있었다면 조건은 성숙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틀어진다든가 하는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현상은 모두 다 전생에 지은 업이 조건을 만나 익어서 과보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업장을 소멸 하려면

 

업을 잘 못 해석 하면 운명론적으로 치우 칠 수 있다.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모두 업보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이라는 것이 모두 불선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 행위를 함으로서 선업의 과보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잘 몰라서 한 때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참회하거나 봉사 하는 삶, 그리고 청정한 삶을 살아 간다면 조금이라도 누그러 뜨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익한 선업을 증장시킨다면 과거의 나쁜 업들의 과보가 진행 되는 것을 막거나 파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비담마 이론에 의하면 업장은 소멸 할 수 있다. 과거에 저지른 불선업 보다 더 큰 선업을 지으면 상쇄 소멸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가 운명론적인 종교가 아닌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종교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봉사(보시, dana)하고 도덕적인 삶(지계, sala)을 살려고 노력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9-07-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