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파!”와 “아이고 아파 죽겠네!”고통(둑카)과 알아차림(사띠)
아침에 라디오 뉴스의 외신기사 중에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플 땐 욕을 하면 고통이 사라진 다는 것이다. 영국 ‘킬’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욕설을 하는 것이 인간의 ‘투쟁도피반응’ 반응 때문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더 자세하게 찾아 본 결과 투쟁도피반응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투쟁도피반응(fight-or-fight responce)
어떤 긴장된 자극이 주어졌을 때 그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기 위해 몸의 근육 활동력을 높이는 반응이다.
즉 고통이 왔을 때 욕설을 함으로써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결과적으로 근육의 활동을 높이기 때문에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욕설은 고통을 참으려는 남성다움으로 표시 될 수 있고, 여성들이 분만 할 때 남편을 향한 욕설등도 여기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다.
힘겨운 일이 끝났을 때 보상받고 싶은 심리
어떤 일을 힘겹게 끝내고 났을 때 무언가 보상을 받고 싶은 심리가 강하게 발동한다. 의사들이 몇 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난 후에 피 묻은 손을 씻고 탈진한 마음을 술로 푸는 것이라든가 힘든 노동을 하고 난 후에 뒷풀이를 하는 이유도 현재 상태에서 해방 되고 싶어 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심리는 시험이 끝난 학생들이 디스코장에서 마음껏 젊음을 발산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망가지고 싶어 하고 자신을 학대 하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이렇게 보상 받고 때로는 망가지고 싶어 질 때 ‘알아차림’이 있는 수행자라면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심리상태를 살펴 볼 것이다. 그런 알아차림은 어떤 것일까 한국명상원의 교재 마하시사야도의 12연기(paticca-samuppada)를 참고 하였다.
조용히 앉아서 알아차리면
알아차림은 빨리어 사띠(sati)의 번역어이다. 마음챙김, 마음새김 등으로 번역 되기도 하지만 알아차림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 듯하다. 사띠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교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사띠(sati)
대상에 깊이 들어가고 대상을 파지하고 대상에 확립하고 그래서 마음을 보호 하는 것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가능하게 하는 선한 마음부수법이다.
한자로 염(念)이라고 번역되는 사띠는 단순히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대상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런 알아차림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알아차림은 마음이 들뜸과 게으름에 빠지는 것으로부터 보호한다.
(청정도론, Vis.IV.49)
따라서 알아차림은 모든 요리에 맛을 내는 소금과도 같고 향료와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 알아차림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 알아차림은 대상에 깊게 들어 가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대상 주위에서 맴돌지 않고 대상으로 깊이 들어 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는 말이다. 정해진 대상이나 대상주위에서 맴돌거나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고 그 명상주제로 바로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둘째, 알아차림은 대상을 거머쥐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대상을 움켜 쥐거나 거머쥐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대상에 깊이 들어 감이라는 첫 번째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으로 정확하게 거머 쥐어서 그것을 파지하고 파악하는 심리현상이다. 이렇게 대상을 정확하게 거머 쥐지 않으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는 삼매를 실현 할 수도 없고, 통찰지로써 그 대상을 무상 고 무아로 관찰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 알아차림은 확립이다.
알아차림은 첫 번째의 대상에 깊이 들어감과 두 번째의 대상을 거머쥐는 것을 바탕으로 이제 대상이 확고 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넷째, 알아차림은 마음을 보호 한다.
대상에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있으면 그 대상을 통해서 나쁜 표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보호라고 말한다.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리는 강한 힘에 의해서 나쁜 표상 등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나쁜표상에서 보호 하는 것이다.
망가지고 싶어 하는 심리, 자학하는 심리는 분명 나쁜 마음이다. 그런 마음에 나쁜 표상이 떠 올라서 과거의 불선업의 과보와 만났을 때 쉽게 휩쓸려 간다고 볼 수 있다. 힘든 일을 마치고 난 후에 술이나 마약으로서 현실을 도피 하려 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런 때에 단지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일어 나는 마음을 응시 한다면 그 마음은 일어났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보내고 나면 자신을 학대하면서 망가진 몸을 그 다음날 아침에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고 아파!”와 “아이고 아파 죽겠네!”의 차이는
둑카(dukkha, 苦)에는 두가지 있다고 한다. 정신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고통이다. 또 정신적인 불만족과 육체적인 불쾌감 역시 둑카의 범주 안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을 한자어로는 고수(苦受)라 하고, 정신적인 괴로움을 우수(憂受)라고 한다. 고수와 우수 모두 느낌(受)을 말한다. 크게 다쳤을 때 “아이고 아파!” 했다면 고수이다. 육체적으로 진짜 아픈 것이다. 이런 아픔에는 누구든지 살아 있는 존재라면 예외가 없다. 부처님이나 아라한도 이런 고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고 아파 죽겠네!”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은 고수에서 우수로 넘어 갔다는 의미이다. 뒤에 “~죽겠네!”가 붙음으로서 육체적인 고통에서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확대 된 것이다. 부처님이나 아라한 같은 경우는 “아이고 아파!” 까지는 할 수 있어도 “아이고 아파 죽겠네” 라고 는 하지 않는 다고 한다. 제1의 화살은 맞을 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않는 다는 이야기와 같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알아 차리게 된다면 육체적인 고통에서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넘어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실험의 결과와 같이 욕설을 하지 않고도 괴로움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왜 그럴까 바로 그 것은 법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차리기만 하면 수술 할 때도 괴로움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모든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알아차림에 의하여 정신적인 고통은 얼마 든지 피해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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