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육바라밀과 상좌불교의 십바라밀은 어떻게 다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 주면 좋아 하고 서운하게 해주면 싫어 한다. 그 도가 지나쳐 좋아함과 싫어함이 극명한 사람도 있다. 좋아 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의 간이라도 다 빼 줄 것 같이 좋아 하지만, 미운사람이 나타나면 지나치리 만큼 한 없이 미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미워하는 감정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 될까.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 오히려 미워하고 싫어 하고 질투하고 성내다 보면 자신의 마음만 상하게 된다. 미워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더 고통을 받는 것이다.
미움이 지나쳐
미움이 지나쳐 자신이 더 고통을 받고 마음을 상처를 받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지혜를 알아도 실천 하는 사람은 드믈다. 아는 것과 실천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실천적인 가르침 중에 대표적인 것이 육바라밀이다.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라는 말의 말미에 모두 ‘바라밀’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바라밀은 어떤 뜻일까. 산스크리트어 ‘paramita’를 음역한 바라밀은 ‘피안에 이른다’ ‘구제한다’ 의 뜻이고 또한 성취, 최상, 완성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육바라밀에 있어서 바라밀의 의미는 ‘실천’에 가깝다.
보시에 바라밀이 붙어서 보시바라밀이 되면 보시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보시의 성취, 보시의 완성의 의미가 된다. 마찬가지로 인욕과 같은 경우도 단수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인욕바라밀을 함으로써 인욕을 실천 하고 완성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미워 하다 보면 자신의 몸과 마음만 상한다는 어리석음을 깨닫는 지혜 또한 인욕바라밀의 하나의 예라 볼 수 있다.
상좌불교의 십바라밀을 보면
육바라밀은 대승불교에 있어서 대표적인 실천사상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로 대표 되는 육바라밀은 북방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의 전유물일까. 남방 상좌불교에도 대승불교와 유사한 바라밀사상이 있다. 십바라밀이바로 그것이다. 육바라밀과 일부 일치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의미는 약간씩 다르다. 더구나 육바라밀에 없는 내용을 보면 어느 면에 있어서 더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상좌불교의 십바라밀을 마하시사야도의 12연기(paticca-samuppada)교재 역주에서 옮겨 본다.
바라밀의 원어인 파라미(parami)는 ‘중생을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바라밀(波羅蜜)로 음역 되었고, 영어로는 perfection이라 하는데 성불의 수기를 받은 보살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하여 윤회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닦아야 하는 10가지 덕성을 말한다. 소행장(Cariya-pitaka)에 근거한 10바라밀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시이다.
빨리어로 다나(Dana)라 한다. 이 기능은 나누어 줌으로써 사물에 대한 집착을 제거 하는 것이다. 이는 나누어 주는 집착 없음으로 표현되고 근접원인은 시물(施物)이다.
둘째, 지계이다.
빨리어로 시라(Sila)라 한다. 몸과 말로 하는 선한 행위를 유지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불선하거나 제멋대로 구는 몸이나 말의 행동을 제어 한다. 그 것은 언행이 청정해짐으로써 표현된다. 근접원인은 양심(hiri, 히리)과 수치심(ottappa, 오땁빠)이다.
셋째, 출리이다.
빨리어로 네깜마(Nekkhamma)라 한다. 감각적쾌락을 버려서 존재(有)로 부터 해방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청정하게 하는 것으로 감각적쾌락과 존재의 위험스러움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감각적욕망을 멀리 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사려깊은 두려움으로 감각적쾌락을 두랴워 하는 것이다.
넷째, 지혜이다.
빨리어로 빤야(Panna)라 한다. 참된 성질로 사물을 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감각의 모든 대상에 빛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혼동 하지 않음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삼매(samadhi)이다.
다섯째, 정진이다.
빨리어로 위리야(Viriya)라 한다. 부지런함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분발하게 하는 것이다. 끈질김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과 부수적으로 수반하는 모든 괴로움에 대한 사려깊은 두려움에서 일어나는 긴박감이다.
여섯째, 인욕이다.
빨리어로 칸띠(Khanti)라 한다. 참을성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싫어함이나 좋아함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극도로 성을 돋구는 상황에 처해서도 참는 것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일곱째, 진실이다.
빨리어로 삿짜(Sacca)라 한다. 말로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보거나 아는 그대로 발견 하는 것이다. 감미롭고 상냥한 언어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모든 중생들에 대한 동정적인 상냥함이다.
여덟째, 결의이다.
빨리어로 아딧타나(Adhitthana)이다. 바라밀을 완성하기 위하여 공덕행을 하고자 하는 결심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자신의 길에 놓인 모든 반대와 장애를 극복 하는 것이다. 자기 입장을 확고히 함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바라밀을 수행 할 때 보시와 같은 매우 큰 공덕이 되는 행위이다.
아홉째, 자애이다.
빨리어로 멧따(Metta)라 한다. 다른 중생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다른 중생의 행복을 열렬히 바라는 것이다. 도움을 주려는 태도로써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다른 이들의 좋은 점만을 보는 것이다.
열째, 평온이다.
빨리어로 우뻭카(Upekkha)라 한다. 칭찬과 비난에 직면해서 평등심을 유지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능은 감정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놓는 것이다. 공평함으로 표출되고, 근접원인은 자신의 과거행위에 대한 사려 깊은 지혜이다.
상좌불교, 과연 소승인가
상좌불교의 십바라밀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육바라밀에 없는 것은 출리, 진실, 결의, 자애, 평온이다. 공통된 항목은 보시, 지계, 인욕, 지혜, 정진이다. 그런데 자제히 보니 선정이 빠져 있다. 육바라밀에는 선정이 들어 가 있지만 십바라밀에서는 빠져 있는 것이다. 선정은 십바라밀에서 지혜(Panna,빤야)의 근접원인인 것을 알 수 있다. 선정을 지혜의 범주 안에 넣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육바라밀이나 십바라밀 모두 보시가 제일 먼저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오는 실천항목은 다르다. 육바라밀이 지혜라면, 십바라밀에서는 평온이기 때문이다.
또 육바라밀에 없는 항목 중에 눈에 띄는 항목은 자애이다. 멧따(Metta)로 불리우는 자애는 다른 존재의 행복을 열렬히 바라는 것이다. 이런 실천항목을 본다면 상좌불교가 추구 하는 목표가 매우 뚜렷하고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상구보리 하와중생’의 실천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더 중생에 대한 자비와 연민이 넘쳐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좌불교가 오로지 자신의 열반 해탈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승불교라고 여전히 폄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시하고 지계하고 인욕 정진함으로써 지혜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 자애의 마음으로 회향하는 상좌불교를 과연 소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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