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이겨도 덤덤 져도 무덤덤, 희로애락에 휩쓸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 우빼카

담마다사 이병욱 2009. 7. 22. 09:27

 

이겨도 덤덤 져도 무덤덤, 희로애락에 휩쓸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 우빼카(upekkha)

 

 

 

 

 

 

 

일본 씨름 스모가 있다. 가끔 일본 채널을 돌리면 스모 경기를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씨름과 비교 하여 여러가지 다른 점을 발견 하게 된다. 경기방식이나 차림새가 우리와 확연히 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승부가 결정 되고 난 후의 벌어지는 광경일 것이다.

 

이겨도 덤덤, 져도 무덤덤

 

우리나라 씨름선수 같으면 승부가 결정 되고 난후에 승자와 패자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다. 이긴 선수는 두팔을 번쩍 치켜 들고 포효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스모에서는 좀처럼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우승을 해도 덤덤한 표정이다. 포효 하지도 않고 두팔을 치켜 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패자 역시 주저 앉아서 멍하니 있거나 고개를 떨군다거나 하는 동작을 하지 않는다. 승자나 패자 모두 무덤덤한 표정이다.

 

90년대 중반에 고베 대지진이 있었다. 이때 TV로 지켜본 일본인들의 모습은 놀라우리 만큼 침착하였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이를 두고 그 때 당시 언론에서는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대하여 논평한 글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슬픔이 왔을 때 안으로 삭이고 밖으로 표출 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태도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보도 이었다.

 

기쁨과 슬픔이 찾아 왔을 때 이를 수용 하는 한일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전통과 문화의 차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역사가 한 때 단절 됨으로 인하여 전통과 문화가 말살 되다 시피 하였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와서 모두 다 휩쓸어 간 케이스와 동일하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과 문화가 단절 되다 보니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씨름도 그와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격식과 규칙을 새로 만들기는 하였으나 승부가 결정 되고 나서 승자와 패자의 행동을 보면 전통과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요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스모 같은 경우는 역사가 매우 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8세기 부터 인기 있는 스포츠 이었으며, 무가시대에는 사무라이를 위한 군대식 스모가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격식과 예의를 갖춘 국민스포츠로 발전 되었고 이겨도 무덤덤한 표정을 짖고, 져도 무덤덤한 표정을 짖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평온한 마음 우빼카(upekkha)

 

사람들은 대체로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다. 좋을 때는 한 없이 열광하고, 싫어 지면 또한 한 없이 미워한다. 기쁠때나 슬플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희로애락에 쉽게 휩쓸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러나 외부환경에 쉽게 동요 되지 않은 마음이 있다. 평온한 마음이다. 기쁠 때는 단지 기쁨이 왔구나하고 느낄 뿐이고, 슬픔 때는 슬픔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 마음이다. 이런 평온한 마음을 빨리어로 우빼카(upekkha)라 한다.

 

우빼카는 위에서 내려다 본다라는 뜻이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에 쉽게 흔들릴 수 없는 평온이나 공평무사한 고결한 정신적인 특질을 뜻하는 말이다. 선과 악, 좋아하고 싫어함, 있음과 없음, 즐거움과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고, 이들을 여윈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우빼카는 다음과 같은 경우로 설명 할 수 있다.

 

 

첫째, 삼선(三禪)과 사선(四禪)을 설명하는 경지를 설명하는 술어로서 쓰여 지는 경우이다. 삼선에서의 락정(樂定)과 사선에서의 정()이 그것이다. 특히 사선을 특징 짖는 핵심술어로 우뻭카가 쓰여 지고 있는 것이다. 사선에 들었을 때의 상태인 정()평온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무량심(四無量心)에서 쓰여지는 경우이다. 사무량심은 이웃에 대한 자애(, metta), 연민(, karuna), 더불어 기뻐함(, mudita), 평온(, upekkha)이다. 평온이 중생에게로 향하면 중생에 대한 공평무사하고 고결하며 평온한 마음 가짐으로 나타 난다.

 

 

알아차림이 있는 평온과 알아차림이 없는 평온

 

2002년 월드컵 당시 온 국민은 열광 하였다. 빨간티를 입고 거리로 몰려 나온 국민들은 열광 하고 환호 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 하였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집단으로 흥분 하고 환호하고 열광 하는 현상은 요즘도 종종 볼 수 있다. 인기가수의 공연이 열렸을 때 청소년들의 과도한 관심 같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스포츠스타나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나친 관심과 집중은 평정심이 깨진 결과이다.  외부 환경에 이리 저리 휩쓸리고 쉽게 동요 된 결과이다.  과도한 열광은 또한 분노로 표출 되기도 한다. 열광, 성냄, 분노와 같은 강렬한 에너지의 분출은 인간의 심성을 망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우뻬카를 한자어로 옮겼을 때 버릴 ()’자로 하였는지 모른다. 사무량심에서 단순하게 버릴 사자만 생각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이런 점이 한자의 가장 큰 단점이다. 평온이라는 말과 버릴 사자의 괴리는 너무 크다. 이럴 때는 원어인 우뻬카를 쓰는 것이 더 나을 듯이 보인다.

 

평온이라는 의미의 우뻬카는 침착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말한다. 기쁘다고 해서 너무 기뻐 날 뛰지 않고, 슬프다고 해서 과도하게 슬픔을 표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 즐겁거나 괴로울 때도 마찬 가지이다.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마음의 상태가 또한 우뻬카이다. 이런 느낌을 무덤덤한 느낌이라고 하고 빨리어로 우뻬카 웨다나(upekkha vedana)’라 한다. 그런데  우뻬카 웨다나의 경우 알아차림이 없을 때 조금만 자극이 와도 금새 바뀐다. 심심함을 못 견뎌 하고, 즐거움과 같은 변화를 추구 한다. 느낌에서의 알아차림이 없는 우뻬카와 사선에서의 우뻬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같은 평온이지만 알아차림이 있는 평온과 알아차림이 없는 무덤덤한 평온과는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스모선수들이 우승을 해도 무덤덤, 패해도 무덤덤하다. 과연 그런 표정이 알아차림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승자의 과도한 몸동작과 포효 그리고 패자의 한 없이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 보다 더 낮다는 사실이다.

 

 

 

 

2009-07-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