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신선조에서 본 셋푸쿠(切腹)와 가이샤쿠(介錯), 법집행은 누구나 공평하게

담마다사 이병욱 2009. 7. 30. 10:09

 

신선조에서 본 셋푸쿠(切腹)와 가이샤쿠(介錯), 법집행은 누구에나 공평하게

 

 

2004년도 NHK 대하 드라마 신선조(新選組)를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보고 있다. 44화중 34화 까지 보았으니 꽤 많이 보았다. 주로 점심시간 후에 느긋하게 모니터를 바라 보면서 본 드라마는 일본의 문화에 몰랐던 사항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지만 보면서 또한 심적으로 불편한 느낌도 많이 가졌다. 그런 느낌 중의 하나가 그들의 할복하는 장면이었다.

 

신선조의 할복장면을 보면

 

본 드라마 중에 총3회의 할복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떠돌이 무사들 즉, 낭사들로 이루어진 조직에서 엄격한 규율은 필 수 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질서를 유지 하기 위하여 내부적으로 법을 만든다. 그런 법들 중의 하나가 무사도와 관련 된 것이다. 무사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다거나 도주 하였을 때 할복(割腹)’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이런 규정을 내부의 파벌 싸움에서 유리 하게 전개 하기 위하여 상대편을 모함에 빠뜨려 할복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장면이나, 집단으로 항명 하는 일파에 대하여 가장 만만한 상대를 찾아 할복 하게 함으로서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과 같은 비정한 장면을 보면 더 이상 드라마를 볼 맛이떨어질 정도로 충격적이다.

 

마지막으로 할복 하는 장면중의 하나는 자파의 중책을 맡고 있었던 간부이다. 이 사람은 좀 쉬고 쉽다고 하였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자 도주 하게 된다. 신선조 규율상 탈퇴나 도주 하는 경우 할복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도주 중에 추격자에게 순순히 잡히여 돌아 오게 된다. 무사도 방식대로 예를 갖추어  할복하는 장면은 일본의 할복문화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일본의 독특한 할복문화

 

근대이전 일본에서는 독특한 할복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할복(割腹)이라고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셋푸쿠(切腹)’라고 한다. 배를 가른다는 듯이다.

 

셋푸쿠를 하라키리(腹切)’라고도 한다. 외국에서 하라키리라는 말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셋푸쿠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셋푸쿠는 자발적인 것과 의무적인 것 두가지가 있다. 자발적인 셋푸쿠는 전쟁에 패한 사무라이들이 적에게 잡히여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배를 가르는 경우이다. 의무적인 셋푸쿠는 어떤 연유로 인하여 사무라이가 비천한 사형집행인에게 목을 베이는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모두 다 자발적인 죽음을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3명 모두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신선조 간부의 자발적인 셋푸쿠를 제외 하면 2명은 모함과 시범케이스에 걸려 든 것이다. 특히 조직의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시범케이스로 결린 사람이 할복 하는 장면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이샤쿠(介錯) 하는 장면

 

그 시범케이스에 걸린 사람은 무사도 아닌 회계원이었는데 글을 안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청원서를 대필한 죄로 걸려 든 것이다. 일단 할복 대상으로 결정 되자 강력하게 항의 한다 왜 하필이면 내가 할복 해야 하느냐. 그러나 가장 힘없고 백이 없는 그는 결국 할복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할복 하는 장면도 보지 못했고 할복 하는 방법도 모르는 그에게 칼을 가져다 주면서 그냥 배를 가르라고 다그친다. 그리고 뒤에서 가이샤쿠(介錯)역이 칼로 목을 내리치는 장면이다. 가이샤쿠는 할복자가 배를 갈랐을 때 목을 쳐서 고통을 줄여 주고 빨리 죽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가이샤쿠 역은 가장 친한 친구나 친척에게 맡기는 것이 보통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가이샤쿠 하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는다. 칼만 내려 치는 장면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가감 없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바람의 검, 신선조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칼싸움 장면 또한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드라마에서는 흉내만 내지만 영화는 매우 리얼하게 표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함부로 사무라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신선조 보다 못한 기득권층이 될 것

 

용산참사는 아직도 해결 되고 있지 않다. 또 제2의 용산참사가 예견 되는 쌍용자동차 사태도 진행중에 있다. 앞으로 있을 제3의 용산사태가 또 어디에서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배경을 보면 한결 같이 엄격한 법집행과 관련 되어 있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언제나 그렇듯이 힘없고 의지 할데 없는 서민들에게 적용 된다. 마치 신선조 내부에서 규율을 어기면 할복이라는 법을 만들어 놓고 정략적으로 또는 시범케이스로 적용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신선조는 의리라도 있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자신들의 간부가 걸려 들자 예외 없이 할복 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NHK2004 대하드라마 신선조.

신선조 간부가 셋푸쿠(切腹) 하고

뒤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이샤쿠(介錯)  하게 하는 장면.

 

 

 

 

신선조는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고자 했던 요즘 말로 하면 정치 깡패 집단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법을 만들어 놓고 법에 저촉 되면 간부라 할지라도 할복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 사회적 약자에게만 적용시키고 법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에게는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재투표와 대리투표가 문제 되고 있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판단 한다면 이들 모두 무효라고 볼 수 있다. 만일 헌법재판소에서 적법한 것으로 판정을 내린다면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고자 했던 정치깡패 집단인 신선조 보다 못한 기득권층이 될 것이다.

 

 

2009-07-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