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후기

집착의 끝은, 12연기와 우빠다나(upadana)

담마다사 이병욱 2009. 8. 28. 21:31

 

집착의 끝은, 12연기와 우빠다나(upadana)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라는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티우드가 주연한 이 영화의 특징은 집착이다. 어떤 계기로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 여인이  사랑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함으로서 일상이 엉망으로 되고 비극적으로 결말이 난다는 영화이다.

 

돌아오지 않은 강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을 하다 보면 영원히 같이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집착을 하게 된다

 

서로 좋아 한다는 것은 느낌에서부터 나타난다. 느낌은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무덤덤하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느낌이라면 그 느낌으로 끝나지 않는다. 느낌을 더 증폭시키고자 한다. 그것이 갈애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이다. 갈애는 갈증과 같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만 느끼고 만족 하지 못한다.

 

12연기에서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 갔을 때 돌아오지 않은 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말로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윤회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과 같다. 느낌에서 갈애가 일어났다면 업을 짓기 때문에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12연기
1 2 3 4 5 6 7 8 9 10 11 12
무명
(無名)
상카라
(行)
재생연결식
(識)
정신-물질
(名色)
여섯
감각장소
(六入)
감각접촉
(觸)
느낌
(受)
갈애
(愛)
집착
(取)
존재
(業有)
태어남
(生)
노사
老死)
아윗자,
avijja
상카라,
sankhara
윈냐나,
vinnana
나마루빠,
nama-rupa
사라야따나,
 salayatana
팟사,
phassa
웨다나,
vedana
딴하,
tanha
우빠다나,
upadana
바와,
bhava
자띠,
jati
자라마라나,
jara-marana


 

 

12연기에서 느낌을 수(, 웨다나, vedana)라 한다. 그리고 갈애를 애(, 딴하, tanha)라 한다.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이 수()이고, 강을 건너고 난 후가 애()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집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보통 말하기를 갈애가 강화 되어 나타난 것이 집착이라고 한다.

 

집착에는 어떤 종류가

 

집착을 빠알리로 우빠다나(upadana)라고 말한다. 우빠다나는 강렬한’ ‘극심한이란 뜻의 우빠(upa)와 아다나(adana)의 합성어로서 꽉 움켜쥠이란 뜻이다. 따라서 우빠다나는 극심하고 지나친 갈애를 말한다. 갈애가 수십 수백 수천배 강화된 것이 집착이라는 뜻이다. 그런 집착은 한번 달라 붙으면 여간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남녀간의 애정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발전 되어서 소유 하고 싶은 집착의 단계로 가는 것도 같은 이치 일 것이다.

 

집착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 빠띳짜 사뭅빠다(paticca-samuppada)’에서는 집착을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감각적욕망에 대한 집착(kama-upadana, 까마 우빠다나)이다.

둘째, 사견에 대한 집착(ditthi-upadana, 딧띠 우빠다나)이다.

셋째,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silabbata-paramasa-upadana, 실라밧따 빠라마사 우빠다나)이다.

넷째,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atta-vada-upadana, 앗따 와다 우빠다나)이다.

 

 

감각적욕망에 대한 집착은

 

감각적욕망에 대한 집착의 대상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다섯가지이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하는 것도 갈애가 강화 되어 집착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집착은 몸의 감촉이다. 편안한 옷, 따뜻한 것, 시원한 것, 이성의 몸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집착이 몸과 같은 유정물에만 있는 것일까. 넓은 평수의 아파트, 고급승용차, 돈등도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정물 역시 감각적욕망의 대상이라 볼 수 있다.

 

사견에 대한 집착은

 

사견에 대한 집착은 삿된견해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사견에 대한 집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시란 좋은 업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돈만 날리는 것이라는 견해

둘째, 도덕적인 선행이나 악행이 가져오는 업보를 부정 하는 견해

셋째, 부모의 은혜를 부정하는 견해

넷째, 인간계와 축생계를 제외한 다른 중생계를 부정하는 견해

다섯째, 보이지 않는 세상을 설한 사문을 부정 하는 견해

 

 

이와 같은 삿된견해에 대한 집착을 가진 사람들을 불가지론(不可知論)’자라 말한다. 불가지론이란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입장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은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은 그릇 된 수행을 집착 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에 일부 고행자에게서 발견 되는 견해이다. 그 때 당시 고행자들은 동물처럼 발가벗고 네발로 기어 다니고 맨 땅에서 잤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악업이 정화 되고 새로운 업이 생겨 나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이나교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은

 

자아의 교리에 대한 집착은 유신견(有身見)을 말한다. 영혼이 있다는 믿음이다. 또한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견해를 말한다. 이런 유신견을 갖게 되면 자아를 자유의지와 스스로 결정권을 지닌 오온의 주인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너는 이 몸이 너의 자아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 몸을 항상 잘 간수하고

즐겁지 못한 것으로 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느냐?

(맛지마 니까야, M.i227ff)

 

 

이 밀은 자신의 몸에 대하여 어떤 통제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을 통제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인 유신견을 지적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 네가지 집착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네가지 집착중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은 갈애가 강화된 것이라 볼 수 있고, 나머지 세가지는  내가 있다는 유신견과 같은 삿된 견해에 대한 집착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영화에서와 같이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으로 발전 되기 싶다. 그 결말은 항상 좋지 않게 끝난다. 거기에는 반드시 감각적욕망과 그릇된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에 뿌리박은 그릇된 견해가 집착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집착은 반드시 남녀관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있고, 상사와 부하, 인기인과 그들을 따르는 팬들에게도 있다. 이와 같이 집착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요인은 항상 내 뜻대로!”에서 시작 된다. 남편도 내 뜻대로, 아내도 내 뜻대로, 자식도 내 뜻대로 되어야 하고 돈도 내 뜻대로 벌려야 한다. 이 뿐만 아니다이 세상 모두가 내 뜻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집착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은 한마디로 보는 힘이 없어서이다. 또 알아차리는 힘이 약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맛있는 곳을 찾아 몇시간 차를 몰고 다니고, 이성의 몸을 찾아 밤거리를 헤메이는 가 하면 편안하고 안락만을 추구 하기 위하여 땅을 사랑해도 지나치게 사랑해서 망신을 당한다. 또 명예와 권력을 과도 하게 추구한 결과 그에 대한 과보는 언제나 '근심'과 '탄식'과 '비탄'으로 귀결 되었다는 것이다.

 

 

 

 

 2009-08-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