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담마스쿨(Dhamma School)을 만들어 수행포교전략을

담마다사 이병욱 2009. 8. 12. 22:05

 

담마스쿨(Dhamma School)을 만들어 수행포교전략을

 

 

 

 

 

 

기적 아닌 기적

 

도시의 밤하늘은 온통 십자가 천지이다. 이런 현상은 전국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도시이건 농촌이건 할 것 없이 사찰 구경 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전국이 십자가의 물결로 뒤덥히다시피 하다 보니 주변에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불교신자는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1,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고유의 종교인 불교가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유일신교에게 모든 것을 다 내주는 형국이 되었다. 1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기독교가 기적을 창출한 요인은 무엇일까.

 

사실 알고 보면 유일신교의 교리는 매우 단순하다. 고교시절 미션스쿨에서 경험한 교리는 유치원동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허접한 교리로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 기적 아닌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 하여 보았다.

 

유일신교가 득세하고 있는 이유

 

먼저 유일신교가 득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음의 세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로 매뉴얼화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를 마치 하나의 상품을 파는 것처럼 시스템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맥도날드 햄버거의 비유를 들기도 한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어디서나 그 맛이 똑같다. 이유는 제조방법이 매뉴얼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매뉴얼 대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매뉴얼 대로 만들면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어서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안심하고 어디를 가나 찾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그렇다. 기독교라는 상품을 만들기 위하여 이단은 쳐내고 다듬고 고쳐서 오늘날과 같은 통일된 기준을 만든 것이다. 따라서 예배와 찬송과 의식이 매뉴얼화 되어 있어서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둘째로 설교위주라는 것이다. 한시간 설교를 하기 위하여 여러 시간 여러 날을 준비 한다고 한다. 성경구절을 선정 하고 이를 보완 설명할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공부하고 연구 하다 보니 지식이 풍부해지고 설교를 잘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법보시에 철저한 것이다.

 

셋째로 개척한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을 나오거나 기존교회에서 독립하게 되면 자신의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인 5-7명으로 출발하지만 1년이 지나면 2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20이상만 되면 자립의 기반이 마련된다고들 말한다. 이렇게 어렵게 개척한 신자를 유지하고 끌어 들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는데 드는 비용은 평균 7천만원이라 한다. 이렇게 개척하여 만들어진 교회가 전국적으로 5만개에 이르고 여기에 종사하는 종교인만 3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도심포교가 실패 하는 이유

 

그렇다면 불교의 도시포교는 어떠할까. 서울에서 교회 대 사찰의 비율이 5,700 180이라 한다. 점유율로 따졌을 때 사찰은 교회에 비교하여 3%밖에 되지 않은 수치이다. 대한민국최대 종교신자를 가졌다는 불교의 위상치고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수치이다. 비교라는 것도 어느 정도 대등해야 비교 가치가 있는데 너무 차이가 많이 나면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동안 한국불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종단과 스님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직무유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시포교가 실패 하는 요인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매뉴얼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점 유일신 종교와 가장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마음에 관해서 어떤 이는 마음이 있다고 하고, 또 어떤이는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경전도 제각각이다.  어떤이는 금강경을 공부하고, 또 어떤이는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공부한다. 모시는 불보살 또한 제각각이다. 정토신앙, 약사신앙, 관음신앙, 지장신앙등 수 없이 많은 불보살을 가지고 있다. 수행방법 또한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염불이 좋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절수행 위주로 한다. 이 밖에도 다라니 주력수행, 사경수행등 고유의 신행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통일된 매뉴얼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법문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목사들이 설교로 승부를 거는 것과 달리 출가수행자들이 주기적으로 법문을 하는 경우는 드믈다고 한다. 여기에는 책을 보지 말라고 하는 선불교의 전통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책을 보지 않고 교학을 소홀히 함으로서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문을 잘 하지 못 할 것이다. 설령 법문을 한다고 해도 교학이 뒷바침 되지 않은 법문은 신변이야기로 흐르기 쉽고, 그 내용 또한 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법문이 없는 불교는 기복이나 방편불교로 흐르기 쉽다. 다라니 주력수행이나 염불과 같은 사마타적 신행방법에 치우치다 보면 타력적인 불보살의 가피에 의존하기 쉽다는 것이다.

 

셋째, 쉽게 포기 한다는 것이다. 출가수행자가 커다란 원력을 품고 도심에 포교당을 만들지만 이내 곧 그만 둔다는 것이다. 포교당을 운영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고 한다. 재정적인 문제에서 부터 인간적인 갈등 등이 얼키고 설켰을 때 이를 슬기롭게 해결 하지 못하고 훌쩍 떠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교회를 하나의 승부처로 생각하고 사활을 거는 목사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 하면 프로정신이 부족 하다고 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대책은

 

한국불교의 도시포교는 거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일요일 오전에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중의 하나는 교회 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결혼식장에 가듯이, 파티에 가듯이, 패션쇼 하듯이 최고로 잘 차려 입고 옆구리에는 성경과 찬송을 들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것도 좀 이름있는 교회는 구름처럼 몰려 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유일신교가 약진 하다 보니 이제 불교대 개신교 신자가 역전되기에 이르렀다. 2008년도 한국 종합사회조사에 따르면 불교가 23.8%이고, 개신교가 25.9%로 나왔다. 이런 추세가 지속 된다면 현정권이 끝나는 시점에서 불교는 10%대로 추락하고, 개신교는 30%대로 진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불교의 매뉴얼화이다. 기존 대승불교로는 매뉴얼화가 불가능하다. 선불교에서 부터 정토신앙, 관음신앙, 지장신앙, 법화신앙등 각종 불교가 섞여 있고 경전 또한 다 다르고 신행방법 또한 제각각이어서 통일된 매뉴얼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좌불교로 매뉴얼을 만들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이미 불교의 역사와 함께 해온 니까야가 있고 수행방법 또한 체계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부처님의 가르침 그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 2 3 4 5차 결집을 통하여 역사적으로도 검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정하는 불교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행불교로 가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불교는 스님들만 수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은 절이나 하고, 다라니 외우고, 염불하는 것 위주로 흘러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기복불교, 방편불교로 변질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수행불교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앉아서 잠시라도 평온을 맛본다면 아마도 절수행이나 다라니 수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수행자체가 고역이 되기 때문이다. 수행은 좌선과 경행위주의 위빠사나를 하면 된다. 또한 법보시가 있어야 한다. 불자들이 재보시 하듯이 지도자는 반드시 법보시를 해 주어야 한다. 법보시할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모두 다 법보시할 내용이다. 니까야의 수천개의 경을 한번씩만 알려 주어도 평생 다해도 못할 것이다. 비록 수행의 경지가 얕다고 할지라도 함께 공부하면 된다. 법문을 못하면 책을 놓고 진도를 나가면 된다.

 

셋째, 담마스쿨을 만드는 것이다. 담마스쿨에서 담마를 지도할 담마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이다. 담마엘리트는 반드시 출가수행자가 아니어도 된다. 이를 업으로 삼는 재가수행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범으로 운영해 보고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에 구에 한나씩 수행센터를 만들면 된다. 요새 유행하는 요가나 단월드의 수요을 대체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구 단위에서 점차 확대 하여 동단위에 하나씩 설립 하면 전국화가 되는 것이다.

 

수행포교 전략을

 

미래는 명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명상은 객관명상(Objective Meditation)이다. 객관명상은 다름아닌 위빠사나이다. 잠시라도 위빠사나 체험을 하게 된다면 타 종교신자들 일지라도 평생 위빠사나를 하게 된다고 한다. 위빠사나를 하게 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처님 법과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수행을 통한 포교전략이야말로 미래의 한국불교의 존망이 걸렸다고 볼 수 있다.

 

 

 

20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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