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량심(四無量心)은 어떨 때 실패 하게 될까, 연민의 노래 Compassion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그런데 지혜와 자비는 별개의 이분법적인 개념일까. 지혜는 있는데 자비가 없다든가, 자비는 있는데 지혜가 없는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혜가 있으면 자비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 탐진치를 삼독이라 하는데 이런 삼독은 수행을 해 감에 따라 탐욕은 관용으로, 성냄은 자애로, 어리석음은 지혜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지혜가 개발 되면 자연스럽게 자비의 마음이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자비(慈悲)는 불교용어
자비는 일반적으로 사랑으로 알고 있지만 더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요즘은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타종교에서도 빈번히 사용 되는 자비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 이라고 나와 있고, 불교적인 용어로 사용 될 때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함’ 이라고 나와 있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자비는 불교용어임이 분명하다.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하여 인터넷 백과 사전을 찾아 보았다.
자비 (불교) [慈悲, maitri-karuna]
불교에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즐거움을 베풀어주는 것.
자(慈)는 사랑의 마음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말하는데, 산스크리트 마이트리(maitrῑ)는 벗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미트라(mitra)에서 유래한 말로서 진실한 우정을 뜻한다. 비(悲)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으로, 산스크리트 카루나(karunā)는 공감, 동정, 연민, 함께 슬퍼함 등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로서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자비의 정신을 강조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무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인 자비를 베푸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자비는 불교용어로서 중생을 불쌍히 여겨 괴로움을 없애 주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 바탕에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 동정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비는 산스크리트어 카루나에서 유래함을 또한 알 수 있다. 카루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참고 해 보았다.
구경법으로서의 까루나
아비담마에서 마음부수(심소, 심리현상, 마음의 작용)를 52가지로 분류 하고 있다. 그 중에 아름다운 마음에 관련 된 마음부수는 총 25가지 인데 그 중에 카루나와 관련 되어 있는 것은 두가지이다. 무량(無量)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연민’과 ‘같이 기뻐함’이다.
아름다운 마음부수 25 | ||
(sobhanacetasikam) | ||
아름다운 반드시들 19 | 절제(위라띠, virati) 3 | |
(28) 믿음 (信, 삿다, saddha) |
(37) 몸의 가벼움 (까야 라후따, kayalahuta) |
(47) 바른 말 (正語, 삼마 와짜, sama-vaaca) |
(29) 마음챙김 (念, 사띠, sati) |
(38) 마음의 가벼움 (찟따 라후따, cittalahuta) |
(48) 바른 행위 (正業, 삼마 깜만따, sama-kammanta) |
(30) 양심 (懺, 히리, hiri) |
(39) 몸의 부드러움 (까야 무둣따, kayamuduta) |
(49) 바른 생계 (正命, 삼마 아지와, sama-aajiiva) |
(31) 수치심 (愧, 옷땁빠, ottappa) |
(40) 마음의 부드러움 (찟따 무둣따, cittamuduta) |
무량 2 (無量, 압빠만냐, appamananna) |
(32) 탐욕없음 (不貪, 알로바, alobha) |
(41) 몸의 적합함 (適業性, 까야 깜만냐따, kaayakammanannata) |
(50) 연민 (悲, 까루나, karuna) |
(33) 성냄없음 (不嗔, 아도사, adosa) |
(42) 마음의 적합함 (찟따 깜만냐따, cittakammanannata) |
(51) 같이 기뻐함 (喜, 무디따, mudita) |
(34) 중립 (따뜨라 맛짯따따, tatramajjhattata) |
(43) 몸의 능숙함 (練達性, 까야 빠군냐따, kayapaagunannata) |
어리석음 없음 1 (不痴, 아모하, amoha) |
(35) 몸의 경안 (輕安, 까야 빳삿디, kayapassaddhi) |
(44) 마음의 능숙함 (찟따 빠군냐따, cittapaagunannata) |
(52) 통찰지의 기능 (慧根, 빤닌드리야, panninindriya) |
(36) 마음의 경안 (찟따 빳삿디, cittapassaddhi) |
(45) 몸의 올곧음 (正直性, 까야 우주가따, kayaujuk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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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마음의 올곧음 (찟따 우주가따, cittaujukata) |
연민을 빠알리어로 까루나(karuna, 悲)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카루나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연민은 자비와도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자비, 자애, 연민은 모두 빠알리어의 까루나의 번역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루나는 구경법(究境法)이다. 구경법은 빠알리어로 빠라맛따담마(paramatta-dhamma)라 하는데 고유한 성질을 가지는 궁극적 실재라는 말이다. 그런 구경법이 마음부수에 있어서 총 52가지 인 것이다. 따라서 까루나는 법(法, dhamma)인 것이다. 구경법으로서 까루나는 어떤 의미일까. 까루나가 속해 있는 범주인 무량에 대하여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네가지 마음의 무량한 마음은
무량(無量)은 빠알리어로 압빠만냐(appamananna)라 한다. 중생을 향한 한량 없는 마음을 낼 때 쓰는 용어로서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무량심으로 표현 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애이다. 빠일리어로 멧따(metta)라 한다.
둘째, 연민이다. 빠일리어로 까루나(karuna)라 한다.
둘째, 같이 기뻐함이다. 빠일리어로 무디따(mudita)라 한다.
둘째, 평온이다. 빠일리어로 우뻭카(upekkha)라 한다.
이렇게 4개의 마음 중에 구경법에 속하는 것은 까루나와 무디따 두개이다. 나머지 멧따와 우뻭카는 구경법으로 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멧따의 경우 구경법인 성냄없음(아도사, adosa)의 한 형태이고, 우뻭카는 구경법인 중립(따뜨라 맛짯따따, tatramajjhattata)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무량심은 어떨 때 실패 하게 될까
까루나는 단독으로 마음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3개의 무량한 마음들과 함께 내는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무량한 마음들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런 마음들은 어떤 경우에 실패 하게 되는 지 더 알아 보았다.
첫째, 자애의 특징은 복리의 형태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이런 자애는 증오를 가라 앉혔을 때 일어 난다. 그래서 성냄의 반대 개념이 자애인 것 이다. 중생을 바라 볼 때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자애가 일어나는 가장 가까운 요인이다. 그런데 자애가 무너질 때는 어떤 경우 일까. 그것은 자애가 ‘애정’으로 발전 할 때이다. 따라서 ‘부부간’이나 ‘연인간’에 자애가 일어 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애가 ‘갈애’로 발전해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연민의 특징은 중생에게 일어나는 고통을 완화 하기 위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생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연민은은 잔인함이 없을 때 나타난다. 고통에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 가장 가까운 원인이다. 연민이 실패 하는 경우는 ‘근심’을 일으킬 때 라고 한다. 연민으로 그치지 않고 걱정과 근심으로 발전 하였을 때 더 이상 연민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같이 기뻐함의 특징은 다른 이의 성공을 함께 기뻐 하는 것이다. 기뻐 하되 질투를 느끼지 않을 때를 말한다. 이런 기뻐함은 싫어함이 제거 되었을 때 나타난다. 이런 마음이 일어 나는 가까운 원인은 중생들의 성공을 보았을 때 이다. 실패할 경우는 어떨 때 인가. 세속적인 희열로써 ‘왁자지껄한 웃음’을 일으킬 때 실패 한다고 한다.
남의 행복을 자기 것처럼 즐겨 나누어 가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10만원을 보시 하려는 사람에게 “참 잘했다”라고 자기 일 같이 기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비록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보시를 하지 않았지만 10만원을 보시 하는 것과 똑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한다. 바로 이런 것이 같이 기뻐함이라고 볼 수 있는데 “5만원만 하지 뭐 하러 10만원 씩이나 하느냐”고 말한다면 보시자의 공덕을 깍아 내릴 뿐만 아니라 자신도 5만원의 공덕은 커녕 공덕이 하나도 없게 된다고 한다.
넷째, 평온의 특징은 중생들에 대해 중립적인 상태를 유지 하는 것이다. 즉 중생들을 향하여 평정한 마음의 상태로 보는 것을 말한다. 이런 평온은 적개심과 찬동을 가라 앉혔을 때 일어난다고 한다. 이 마음이 일어나는 가까운 요인은 업이 중생들의 소유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각자 지은 업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생들이라 생각 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온이 깨질 때는 어떤 때일까. 그 것은 무지에 바탕을 둔 ‘무관심’을 일으킬 때 라는 것이다.평온과 무관심은 다른 말이다.
알아차림이 있는 평온과 알아차림이 없는 평온의 차이는 감각적 대상에 마주 쳤을 때이다. 알아차림이 있다면 감각적 대상을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런 줄’ 알지만, 알아차림이 없는 평온은 쉽게 휩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차림이 없는 평온은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말로 표현 하면 ‘지둔’ 하다고 말 할 수 있다.
Compassion-Buddhist Song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VIF2UBI-IGE
MP3 [ Download - 3,082kb ]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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