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불교가 꽃 피울 수 있을까, 아리안족의 동서양 문명 가로지르기
일요일 아침이다. 일요일 아침에 볼 수 있는 광경 중의 하나는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다.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교회라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예배 또한 오전 한차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교회일지라도 안내판을 보면 예배시간이 3부까지 있는 것은 보통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전국토에 교회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기독교는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반면에 도시에서 사찰은 찾아 보기 힘들다. 따라서 사찰에 가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통계상 불교가 1,072만명(종교인구의 43.0%)으로 개신교 861만명(34.5%)과 천주교가 514만명(20.6%) 보다 더 많다고 하지만 체감하는 불교인은 개신교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사찰대 교회의 숫자만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으니 ‘사람 사는 곳에 불교는 없다’라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대한민국은 기독교국가화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한국불교는 무기력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과 필리핀의 경우
아시아 국가에서 기독교가 가장 활성화 된 곳이 ‘한국’과 ‘필리핀’이라고 한다. 필리핀 국민들의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 그렇게 되기 까지는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배의 영향이 컷다. 식민지배를 벗어 나고도 기독교 국가가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필리핀 고유의 문화가 부재 하였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마젤란이 필리핀을 발견 하기 전까지 필리핀은 역사와 전통과 문화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미개한 부족국가 형태 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5천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왜 기독교가 득세 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제국주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전통과 문화를 ‘초토화’ 시켜 놓은 바탕 위에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미국에 의한 질서가 유지됨에 따라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팍스 시니카’ 시대와 ‘팍스 몽골리카’시대에 의한 불교의 국교화, 그리고 다시 명청시대에 의한 팍스시니카시대에 주자학의 도입과도 같았던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외국의 군대의 주둔 여부에 따라
아시아 국가 중에 서양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도 많았다.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등이 있었지만 이들 나라 들이 기독교국가화 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가 끝나자 이들 나라들은 오히려 자국의 전통종교가 더욱 더 번성 하였다. 대표적으로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을 들 수 있다.
그렇게 된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 나라의 공통적인 현상은 식민지 지배가 끝났어도 ‘외국의 군대가 주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룬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필리핀과 우리나라와 비교 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외국의 군대가 주둔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기독교가 득세하느냐 득세 하지 않느냐가 결정 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TV의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한국에서 유독 기독교가 득세하고 불교가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가다간 한국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기독교 천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또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대세일까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의문을 깨끗이 날려 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불교TV에서 방영한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5&PID=P509&DPID=45751)’이라는 프로그램에서이다. 이 프로를 진행한 사람은 동국대 ‘
미래에 과연 어떤 종교가 살아 남을까
유럽의 중세에 1,000년동안 사상을 지배 하였던 기독교가 근대로 넘어 오면서 효력을 상실 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주된 이유는 ‘자연과학과의 불화’라고 한다.
기독교사상의 경우 자연현상 밖에서 자연을 초월한 ‘신중심’으로 설명 되었지만 자연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더 이상 신의 의존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과 자연과학과 불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고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라는 것이다.
또 기독교는 철학과도 불화를 일으켰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관점이 이동됨에 따라 도처에서 기독교와 철학이 갈등과 불화를 일으켰는데 근대 말 니체(1844~1900)에 이르러 ‘신은 죽었다’ 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반면에 불교는 신에 의지 하지 않고 모든 현상을 자연내부나 인간내부에서 일어나는 ‘연기법’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충돌 하지 안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과연 어떤 종교가 살아 남을까. 현대는 물론 미래 역시 ‘과학과 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 한다. 따라서 과학과 불화 하는 종교는 살아 남지 못할 것이고, 과학과 좋은 사이의 종교는 살아 남을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아리안족의 ‘피(血)’와 ‘말(語)’은
김교수는 또 불교가 ‘문명 가로지르기(Intercultural, Intercross)’에 성공 하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 모두를 아우른 것이다. 그 예를 ‘중국의 불교화’를 들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문명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또 언어학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문화임에도 불구 하고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화 되어 중국불교가 꽃핀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지적 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를 일으킨 민족은 ‘아리안(Aryan)’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리안의 뿌리는 지금의 흑해 연안의 ‘코카서스’ 지방이었다고 한다. 이 아리안의 일파가 B.C15세기 경에 그리스로 가서 그리스 문명을 일으켯고, 또 다른 아리안은 지금의 이란 지방으로 내려가 페르시아 문명을 일으켯고, 또 다른 아리안은 지금의 인도로 들어가 인도문명을 일으켯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 문화를 계승한 유럽인이나 불교를 발생시킨 인도인은 ‘같은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같은 뿌리라는 증거는 ‘말(語)’에서도 확인 될 수 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나 라틴어의 뿌리가 유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가지 예로 산스크리트어 ‘티사라나(Ti-sarana)’가 있다. 티사라나는 ‘삼귀의’라는 뜻인데 여기서 ‘티(Ti)’가 숫자3을 뜻한다. 영어의 Three와 어근이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와 유럽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인도유럽어족’이라 하고 이에 속하는 유럽의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포르투갈어등 전 유럽의 언어가 망라 되어 있다.
동서양을 어떻게 구분할까
보통 동양과 서양으로 나눌 때 지정학적인 측면을 고려 한다면 터어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보스포러스’해협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피와 말’로 구분한다면 ‘아리안과 비아리안’ 또는 ‘한족과 비한족’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유럽과 인도를 같은 아리안의 서양으로 보고 중국의 한족을 동양으로 보는 것이다.
동서양 구분 방법 |
동 양 |
서 양 |
지정학적 구분 |
보스포러스 동쪽 |
보스포러스 서쪽 |
피(血)와 말(語)의 구분 |
한족(중국) |
아리안(인도+유럽) |
그런데 서양의 아리안들은 ‘셈족’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 참고로 셈족(Semites)은 아랍어나 헤브라이어 같은 셈어를 사용하는 종족으로, 에티오피아·이라크·이스라엘·요르단·레바논·시리아·아라비아반도·북아프리카 등지에 살고 있다. 또 셈족은 알파벳과 유일신 사상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즉, 유태교·크리스트교·이슬람교 같은 주요 종교는 셈족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셈족과 아리안과는 피와 말이 다른 종족인 것이다.
서양에서 불교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만일 서양의 아리안이 셈족의 기독교를 받아 들이지 않고 불교를 받아 들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불교는 피와 말이 전혀 다른 중국으로 건너 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불교는 중국에서 뿌리내렸다. 불교 전래 이래 500년 후부터 불교가 중국화 되어 중국의 사상을 지배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동서양의 이종문화(Intercultural)간의 문화 가로지르기(Intercross)에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오래 전에 동서양의 문화가로지르기에 성공한 불교가 서양에 접목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김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낙관한다고 하였다.
어쩌면 서양에서 전혀 새로운 불교가 출현 할지 모르고 아마도 일이백년 후에 서양에서 불교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로 피와 말의 뿌리가 같은 아리안이라는 것이고, 또 그런 이유 때문에 셈족의 유일신종교 보다 훨씬 더 수월 하게 전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끌탕하지 말자는데, 왜 느낌(受)으로 그쳐야 하는가 (0) | 2009.12.05 |
---|---|
불교경전도 매뉴얼화를 , 4부 니까야 요약편찬분을 기대하며 (0) | 2009.11.24 |
불자들이 1%만 사본다면, 각묵스님의 상윳따니까야 완간 소식을 듣고 (0) | 2009.11.21 |
자연은 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건만,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0) | 2009.11.19 |
한국불교에서 고따마 붓다의 위치는,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에서 (0) | 2009.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