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끌탕하지 말자는데, 왜 느낌(受)으로 그쳐야 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2. 5. 10:25

 

끌탕하지 말자는데, 왜 느낌()으로 그쳐야 하는가

 

 

 

 

 

 

일을 하다 보면 실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실수로 인하여 금전적으로 손실을 입었을 때 무척 후회 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면서 후회해 보지만 일은 이미 벌어지고 난 후이다. 언제까지 후회 하고만 있을 수 없다. 이제는 그 일을 얼마나 지혜롭게 수습 할 수 있는 일만 남았느냐가 문제 이다.

 

끌탕하지 말자는데

 

일을 하다 실수하면 금전적으로도 손실이 크지만 가장 큰 손실은 고객이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거래를 해 왔던 고객이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하여 더 이상 주문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후회 막심 하다. 그 때 당시 좀 더 주의 기울여 확인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머리 속에서 떠 나지 않는다. 이런 영어 표현이 ‘should have p.p.’ 형태 일 것이다. 즉 과거완료분사형식으로서 “~했었어야 했는데하면서 과거의 후회를 표현 할 때 사용 되는 것이다. 이런 후회에 대한 우리말의 표현 방법은 없을 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수행처에서 자주 듣는 끌탕이라는 말이 떠 오른다. 종종 끌탕 하지 말라고 말하는 데 끌탕이 후회와 관련 있는 말일까. 끌탕에 대하여 인터넷 사전을 찾아 보았다. 국어사전에 간단히 속을 태우는 걱정이라고 나와 있다. 끌탕에 대한 영어표현은 ‘1. anguish 2. agony 3. worry’로 나와 있다.

 

끌탕의 사전적인 의미는 걱정이다. 따라서 영어문법에서 과거완료분사형인 ‘should have p.p’“~했었어야 했는데하면서 과거의 후회를 하는 표현과 일맥상통 한다고 볼 수 있다.

 

끌탕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하여 질질 끌면서 재탕 삼탕 하면서 울궈 먹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과 분란만 일으키는 해로운 마음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상좌불교의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해로운 마음 14가지는 다음과 같다.

 

 

 

해로운 마음부수 14가지

해로운 반드시들 4

해로운 때때로들 10

탐욕에 관계된 3

성냄에 관계된 4

해태에 관계된 2

의심 1

(14) 어리석음

(, 모하, moha)

(18) 탐욕

(, 로바, lobha)

(21) 성냄

(, 도사, dosa)

(25) 해태

(懈怠, 티나, thina)

(27) 의심

(, 위찌깟차, vicikaccha)

(15) 양심 없음

(無慙, 아히리까,

ahirika)

(19) 사견

(邪見, 딧티, ditthi)

(22) 질투

(, 잇사, issa)

(26) 혼침

(昏沈, 밋다, middha)

 

(16) 수치심 없음

(無愧, 아놋땁빠,

anottappa)

(20) 자만

(, 마나, mana)

(23) 인색

((), 맛차리야, macchariya)

 

 

(17) 들뜸

(掉擧, 웃닷짜,

uddhacca)

 

(24) 후회

(惡作, 꾸꿋쨔, kukucca)

 

 

출처 ; 아미담마 길라잡이

 

 

구경법 82법중에 마음부수와 관련된 법이 52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해로운 마음부수 14가지를 표로 나타내었다. 표를 보면 해로운 마음부수 14가지 중에 후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후회를 빠알리어로 꾸꿋짜(kukucca)’라고 한다. 한자어로는 악작(惡作)으로도 표현 되는 꾸꿋쨔(kukucca)아차! 잘못(ku) 했구나(kata)”라고 뉘우치거나 안달복달하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영어의 과거완료분사형인 “~했어야 했는데하고 끌탕 하는 마음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끌탕과 비교 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그렇네'이다.

 

그렇네역시 수행처에서 사용 하는 말이다. 모든 사물을 볼 때 단지 그런 줄알고 지나치는 것이다. 정신적인 느낌으로 끝나자는 것이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 났을 때 즐거운 느낌인줄 알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 났을 때 괴로운 줄 알면 그 뿐이다. 더 이상 느낌을 갈애로 발전 시키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갈애가 집착이 되어서 업을 형성 하기 때문이다.

 

아파 죽겠다고 말할까

 

그렇네끌탕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서 죽겠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아프면 누구나 아픔을 느낀다. 이런 아픔은 부처님이라고 다를 바 없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아픔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부들은 이런 육체적인 아픔을 정신적인 아픔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이른 바 아파 죽겠네가 바로 그것이다.

 

몸이 아파서 아이 아파!” 하고  아이고 아파 죽겠네!’ 하고는 전혀 다른 감정의 상태이다. 아파 죽겠네라고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아픔을 떠나 이미 정신적인 아픔으로 끌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네와 끌탕에 대한 비유로서 또 화살을 들 수 있다. 1의 화살과 제2의 화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육체적으로 아픈 것을 1의 화살을 맞았다고 표현하고, 이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끌탕 하는 것을 2의 화살을 맞았다고 표현 할 수 있다.

 

누구나 제1의 화살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자는 제2의 화살을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육체적 아픔을 끌탕해서 아파 죽겠네!’라고 하여 정신적인 아픔으로 발전 시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1의 화살은 맞을 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않는다라는 말이 전해져 왔다.

 

그렇네끌탕’, ‘아픔아파 죽겠네’, ‘1의 화살2의 화살에 대한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느낌()

갈애()/집착()

그렇네

끌탕하기(~했었어야 했는데)

아이고 아파 !

(아이고 아파) 죽겠네!

1의 화살(苦受)

2의 화살(憂受)

 

 

연기론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네아이고 아파’ ‘1의 화살(苦受)’은 느낌()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더 발전 하여 갈애가 일어나고 집착이 생기는 경우가 끌탕하기(했었어야 했는데)’죽겠네’ ‘2의 화살(憂受)’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설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12연기는 윤회의 발생과 윤회의 소멸을 설명하기 위한 구조라고 말한다. 따라서 윤회의 발생 원인이 반드시 있을 수 밖에 없다. 윤회의 발생 원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는데 보통 무명(無明)’갈애()’를 말한다.

 

12연기의 삼세양중인과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어찌 할 수 없는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태어 나기 이전에 발생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몸과 성향은 모두 과거 전생의 무명으로 인한 행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생겨 나서 현재에 이르렀는데 또 다시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릴 수 밖에 없는 단계가 갈애()는 것이다.

 

그런데 갈애는 무명과 달리 자신이 개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명이 자신도 모르게 결정 된 것이라면 갈애는 하기에 따라 얼마 든지 제어 가능 하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느낌에서 갈애로넘어 가는 단계를 극복 하면 윤회의 수레 바퀴를 멈출 수 있다는 이야기기이다. 바로 이런 점이 부처님이 설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불교가 단지 믿고 따르는 기복과 방편이 아니라 생활에서 적극적으로 실천 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불교의 모습을 12연기법에서 본다.

 

그렇네끌탕에 대한 이야기는

 

수행처에서 말하는 그렇네끌탕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신적인 느낌에서 끝내자는 이야기이다. 좋다든가 싫다든가, 좋아 죽겠다든가 미워 죽겠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이미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 집착으로 까지 발전 할 수 밖에 없는 단계를 말한다. 따라서 “~했었어야 하는데와 같은 표현이나 “~죽겠네와 같은 표현은 가급적 사용 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대상을 보았을 때 단지 그렇네’ ‘그렇구나’ ‘그러려니하고 말자는 것이다. 여기에 끌탕하여 질질 끌어 재탕 삼탕 하여 곱씹어 보았자 업짖는 행동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 육체적인 아픔(苦受)을 정신적인 아픔(憂受)으로 까지 발전 시키지 말자는 이야기와도 같다.

 

대상에 부딪치면 누구나 제1의 화살을 피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제2화살 내지 제3의 화살을 맞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이다.

 

 

 

2009-12-0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