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몰라서 욕심부리다 후회하고, 탐진치와 알로바 아도사 아모하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2. 15. 09:28

 

몰라서 욕심부리다 후회하고, 탐진치와 알로바 아도사 아모하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을까. 천상에 태어 나기 위해서일까. 구원받기 위해서일까. 어느 종교인에 따르면 천상에 나는 것도 아니고, 구원받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한다. 단지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종교를 믿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아쉬울 때 찾는 종교

 

이미 마음이 안정 되고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 종교의 기능은 필요 없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하고 역경이 닥쳤을 때 종교를 찾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른 바 아쉬울 때 찾고, 아쉬운 것이 없으면 종교를 찾지 않는 것이다.

 

하는 일 마다 꼬이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 질 때, 또는 남들에게나 있을 줄 알았던 불행이 나에게 닥쳤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종교를 생각하게 된다. 또 그 동안 막 살아 온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대게 중년이상인 것을 보면 그런 현상을 알 수 있다.

 

알고 지내는 분중의 한 분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 될 것이다. 그 분은 앉아 있을래야 앉아 있을 수 없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잘 아는 사람에게 돈을 떼인 것이다. 그 것도 평생 모은 재산을 거의 다 떼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도저히 분해서못 살 것 같아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안정화 되었지만 가끔 떼인 돈을 생각 하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특히 자녀들의 학비마련을 위하여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기한이 되어 갚으라고 독촉장이 왔을 때 더 하다고 한다.

 

돈을 떼이고 나서

 

왜 돈을 떼이게 되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탐진치로 귀결 된다. 돈을 굴려서 좀 더 많은 돈을 벌어 보고 싶은 탐욕이 작용 하였기 때문이다. 그 것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전재산을 올인하여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른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 risk, Hi return)’의 전형적인 케이스에 해당 된다. 결국 가지고 있는 돈을 투기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투자로 시작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투기로 변질 되어 전재산을 몰빵한 것이다. 그런 이면에는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려는 불로소득의 심리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그 순간 탐심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고 떼인 것을 알게 되고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번에는 분노로 잠을 못 이루게 된다. 떼인 돈만 생각 하면 억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돈을 위하여 얼마나 수 많은 나날과 얼마나 귀중한 시간을 다 바쳤던가. 마치 피와 같고 목숨과 같은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 하니 안절부절 하여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이다.

 

다음으로 후회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이 나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이다. 그러나 가장 큰 후회는 자신에 대한 자책일 것이다. 사람을 쉽게 믿고 쉽게 맡겨 버린 자신이 못 마땅한 것이다. 어쩌면 외적인 분노 보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책감이 더 괴로울지 모른다. 그 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어리석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알지 못한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 알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탐욕을 부리면 그 결과는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몰라서 당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고통의 뿌리는 어리석음에서 시작 된다고 한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왜 모든 고통의 뿌리가 될까. 탐진치 삼독중에 탐욕과 성냄도 있는데 왜 어리석음을 모든 해악의 뿌리라고 말할까.

 

탐진치 삼독 중에 가장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탐욕과 성냄은 잘 드러나는 것에 비하여 어리석음은 좀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리석은지 어리석지 않은지 또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인지 어리석지 않은지 좀처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탐욕과 성냄, 질투, 후회, 의심등 해로운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이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성내는 것이다. 성내는 것 하나만 보아도 상대방의 인품을 파악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탐욕이 뒤 따르고 이어서 질투, 후회, 의심등이 일어 나는 것을 보면 상대방에 대하여 파악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좀처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해로운 마음의 뿌리가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어리둥절 하고, 멍청해서

 

만악의 뿌리인 어리석음은 약방의 감초라 볼 수 있다. 해로운 심리현상인 14가지에 모두 공통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모든 해로운 것에 공통적으로 들어 가는 어리석음이란 무엇일까. 아비담마에 따르면 어리석음을 빠알리어로 모하(moha)’라고 한다.

 

모하는 muh(be dazed)를 뿌리로 하는 남성명사 인데 어리둥절함, 혼란함, 미혹함, 멍청함, 기절함, 어리석음의 뜻이라고 한다. 이 말뜻을 보면 온갖 부정적인 말은 다 들어가 있는 듯하다.

 

어리둥절해서 멍해 보이고, 혼란스러워 당황해 하고, 미혹해서 쉽게 넘어가고, 멍청해서 이용 당하고, 기절한 듯 해서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고, 어리석어서 후회 하는 것 같은 것이다.

 

이런 모하는 무명과 동의어이고 모든 해악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해로운 심리현상 14가지 중에 가장 먼저 언급이 되고 또한 공통으로 들어 간다. 그렇게 본다면 어리석음은 모든 해로운 마음의 대장이라 볼 수 있다.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배타적

 

탐진치 3독 중에 탐욕과 성냄 역시 해로운 심리 현상이지만 어리석음 처럼 모든 해로운 심리현상의 밑바탕에 베이스로 깔려져 있지 않다. 탐욕의 대상이 나타났을 때 탐욕의 마음이 일어나고, 성냄의 대상이 보였을 때 성내는 마음이 일어 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전재산을 바쳐 올인 하게 된 케이스도 돈을 투자 하면 불로소득이 생긴다는 마음 때문에 탐욕이 발생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돈을 떼이고 나서 문득 문득 돈을 떼어 먹은 사람이 생각 날 때 분노가 치미는 것도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일어 나는 것이다. 이렇게 탐욕과 성냄은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일어 난 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 흥미로운 것은 탐욕과 성냄이 동시에 일어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탐욕이 거머 쥐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성냄은 밀쳐 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탐욕과 성냄은 서로 배타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로운 마음의 대장격인 어리석음은 모든 해로운 마음에 공통적으로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몰라서

 

탐진치를 소멸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의 목적이라 한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반대로 하면 될 것이다. , ‘불탐’ ‘부진’ ‘불치가 바로 그 것이다.

 

불탐은 탐욕없음을 말한다. 탐욕 없음을 빠알리어로 알로바(alobha)’라 한다. 탐욕을 뜻하는 lobha에다 부정 접두어 a를 붙여서 만들어진 명사이다. 아로바는 욕심이 없고, 집착하지 않고, 움켜 쥐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탐심을 제어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탐심을 제어 하는 마음을 보통 관용이라 한다.

 

부진은 성냄없음을 말한다. 빠알리어로 아도사(adosa)’라 한다. 아도사 역시 성냄을 뜻하는 도사(dosa)에 부정접두어 a를 붙여서 만들어진 명사이다. 아도사의 특징은 성가심을 버리고, 열을 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성냄을 제어 하는 마음을 통상 자애(멧따, metta)’라 한다. 왜냐하면 자애도 성냄없음에 해당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모든 만악의 근원인 어리석음의 반대어는 불치이다. 불치는 빠알리어로 아모하(amoha)’라 하는데 어리석음을 뜻하는 모하(moha)에다 부정접두어 a를 붙여서 만들어진 명사이다. 이 아모하를 소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를 개발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명칭

빠일리어

풀이

 

명칭

빠일리어

풀이

어리석음

()

 

모하

(moha)

 

몰라서

 

 

 

 

 -à

 

 

지혜

(불치,

不痴)

아모하

(amoha)

빤냐

(panna)

세상의

이치를

알면

탐욕

()

 

로바

(lobha)

 

욕심부려

관용

(불탐,

不貪)

아로바

(alobha)

아로바

(alobha)

집착

하지

않아

성냄

()

 

도사

(dosa)

 

후회한다

자애

(부진,

(不嗔)

아도사

(adosa)

멧따

(metta)

마음이 편안해

진다

 

 

어리석음은 무명과 동의어이다. 무명은 무지를 말하고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모르기 때문에 욕심 부린다. 그 욕심의 대가로 반드시 후회 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할 수 있다.

 

 

몰라서 욕심부리다 후회한다.

 

 

여기서 후회는 질투, 인색 등과 더불어 성냄과 관계된 마음이다. , 자기자신 한테 성을 내는 것이다. 왜 성을 내는 것일까.

 

성을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불만족이다. 모든 것이 불만족 스럽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 하지 않다. 그렇다면 마음이 안정 되고 편안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그 것은 지혜를 개발 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에게 속지 않기 위하여

 

지혜는 아는 것을 말한다. 알게 되면 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속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자신에게도속지 않는다. 이렇게 아는 마음을 지혜라 볼 수 있다. 지혜가 개발 된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과 같다. 세상의 돌아 가는 이치를 알게 되면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성낼 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안정 되고 편안해 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할 수 있다.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 집착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이런 지혜를 빠알리어로 빤냐(panna)라 하는데 이 빤냐의 의미는 무상’ ‘’ ‘무아꿰뚫어아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지혜를 개발 한다는 것은 형성되어진 모든 법이 무상 하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임을 아는 것이라 볼 수 있다.

 

 

 

2009-12-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