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시대와 소통을 거부한 결과, 재가불자들 손에 달린 한국불교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2. 28. 14:19

 

시대와 소통을 거부한 결과, 재가불자들 손에 달린 한국불교

 

 

 

법구경 제1게송을 보면

 

법구경은 우리나라 불자들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의 불자들이 가장 아끼는 경전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런 법구경의 총423개의 게송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첫번째 게송이 있다.

 

 

마노뿝방가마 담마 Manopubbangmā dhamma

마노셋타 마노마야 manosetthā manomayā

마나사 쩻 빠둣테나 manasā ce padutthena

바사띠 와 까로띠 와 bhāsati va karoti va

따또 낭 둑카만웨띠 tato nam dukkamanveti

짝깡와 와하또 빠당 cakkamva vahato padam.

 

마음이 모든 법을 앞서가고

마음이 모든 법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의해서 온갖 행위는 지어진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

(법구경 제1게송)

 

 

빠일리어로 된 법구경을 실어 보았다. 빠알리어 원문이 나오고 우리말 해석이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까지 한문으로 된 법구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 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렇게 빠알리어 원문이 들어간 법구경도 갖게 되었다.

 

이 빠알리어 법구경은 어느 불자가 카페에 올려 놓은 것(http://cafe.daum.net/sukhatawya?t__nil_cafemy=item, 공부방폴더)이다. 누구든지 다운 받도록 하여 놓았다. 아마 이런 것이 최고의 법보시가 아닐까 여겨 진다.

 

법구경은 모두 423개의 게송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이들 게송의 대부분이 왜 해당 게송을 어떻게 설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마찬 가지로 제1게송 역시 그런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1게송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원인과 결과에 따른 연기에 대한 매우 심오한 뜻을 내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게송이 423개의 게송 중에 가장 앞에 나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1 게송을 다시 쓴다면

 

아비담마를 공부 하다 보면 마음부수라는 매우 생소한 용어와 부딪치게 된다. 이 마음부수를 심소(心所) 또는 마음의 작용 일부에서는 심리현상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음부수는 일반적으로 마음과 함께 설명한다. 마음 가는 곳에 마음부수가 따라 다닌 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예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오온일 것이다.

 

오온이라고 말하면 응당 색수상행식을 떠 올릴 것이다. 여기서 식이 마음이고, 수상행을 마음부수로 보면 이해 하기 쉽다. 수상행은 마음을 내기 위하여 부수적으로 따라 다니는 심리현상으로 보면 된다.

 

그 심리현상을 보통 52가지로 본다. 52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수(느낌)와 상(인식)을 따로 내어 설명 하다 보니 수상행이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마음부수는 행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온이 아니라 삼온으로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경우 색행식 이렇게 삼온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과 마음부수(수상행)은 항상 함께 한다. 그리고 함께 생긴다.그런데 마음()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마음부수(수상행)를 앞서 간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바로 법구경의 제1게송이 그런 경우이다. 이 제1게송을 마음과 마음부수 개념으로 다시 쓴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마음(mano 또는 vinnana)이 마음부수(cetasika)를 앞서 간다.

불선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뒤따른다.

마치 수레가 소의 뒤를 따르듯이.

 

 

얼마나 친절한 분인지

 

부처님은 부처님이 깨달은 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중생들이 알아 듣기 쉽게 설명 하였다. 원래 깨달음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설명하여야 겠다고 마음 먹은 자체를 대승이라 보는 것이다.

 

중생들의 근기가 서로 다르다 보니 각자의 근기에 맞추어 설법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법문이 8 4천가지나 된다고 한다. 8 4천가지 법문은 결국 연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에서 들어가는 문은 여려개이지만 나오는 문은 하나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법구경의 제1게송 역시 중생의 근기에 맞춘 전형적인 대기설법이다. 먼저 마음이 모든 법을 앞서가고 마음이 모든 법을 지배한다고 선언 한다. 그 다음에 첫번째 예를 들어 그러므로 마음에 의해서 온갖 행위는 지어진다고.라고 설명한다.

 

부처님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두 번째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반드시 고통이 뒤따른다.라고 설명한다. 여기까지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좀 더 알기 쉬운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을 이용 하여 마지막으로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라고 설명한다.

 

이 정도라면 부처님이 얼마나 친절한 분인지 짤막한 게송을 통하여 절절 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같은 내용에 대하여 두번 세번에 걸쳐서 설명 하였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기설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 법을 따르는 부처님 제자들은 그와 같은 대기설법을 이론적으로 체계화 하여 놓았다. 바로 그것이 아비담마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법을 체계화 시켜 놓으면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와 같은 여러 표현이 어떤 하나의 이론으로 공식화 된다. 그 공식화는 언제나 연기법으로 귀결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예를 마음이 모든 법을 앞서가고 마음이 모든 법을 지배한다.마음(mano 또는 vinnana)이 마음부수(cetasika)를 앞서 간다로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마음을 마노(mano) 또는 윈냐나(vinnana)로 표현 하고, 마음부수를 빠알리어 쩨따시카(cetasika)로 표현 하여 이론을 전개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과 마음부수가 사실은 동시에 발생 됨에도 불구 하고 부처님은 중생들이 이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수레가 황소를 뒤따르듯이.와 같이 마음이 마음부수를 앞서 간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를 12연기로도 설명 할 수 있다.

 

순차적인가 동시발생적인가

 

12연기에서 무명, , 식 등으로 12가지 사이클이 있는데 이들이 차례대로 발생 한다고 생각 할 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비담마에서는 거의 동시발생적으로 본 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오온도 마찬가지이다. 색이 있어서 느낌()이 있고, 그 느낌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마음()에 저장한다는 것이 한국불자들이 알고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스님들이 이런 순차적인 인식체계를 제8식의 아뢰야식의 설명과 함께 사용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비담마에서는 오온을 동시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음부수인 수상행이 마음인 식과 거의 동시발생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론을 설명 해 주는 것이 아비담마이다. 그런 예를 12연기에서 보면 식과 명색과의 관계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

 

그런 12연기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2연기에서 식과 명색의 관계

1

2

3

4

5

6

7

8

9

10

11

12

무명

상카라

정신-

물질

여섯

감각

장소

감각

접촉

느낌

갈애

집착

존재

태어남

노사

無名

名色

六入

業有

老死

아윗자

Avij-ja

상카라

Sankh-ara

윈냐나

Vin

nana

나마

루빠

Nama

-rupa

사라야

따나

Salaya

tana

팟사

phassa

웨다나

vedana

딴하

tanha

우빠

다나

Upa

dana

바와

bhava

자띠

jati

자라

마라나

jara-

marana

 

 

구생연

의지연

식연명색

명색연식

 

 

 

 

 

 

 

 

 

 

표에서 식과 명색의 관계가 3번과 4번으로 분리 되어 있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식과 명색이 동시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를 식과 명색이 상호의존 한다고도 말한다. . 식이 정신-물질(명색)을 생기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물질(명색)도 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설명 하다 보니

 

이를 정리된 용어로 표현하면 구생연의지연이 된다. 구생연과 의지연은 아비담마의 24가지 조건(빳짜야, paccaya)중의 하나이다. 이런 조건은 아비담마에서도 가장 어려운 주제중의 하나라고 한다.

 

참고로 이런 마음과 물질에 관계된 조건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첫째, 조건 짓는 법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빳쨔야 담마(paccaya)’라 하고, 다른 법의 조건으로 작용 하는 법을 말한다. , 한 법이 다른 법을 일어나게 하거나 의지 하게 하거나 유지하게 하면 그 법은 조건 짓는법을 말한다.

 

둘째, 조건 따라 생기는 법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빳쨔야 우빤나 담마(paccaya-upanna-dhamma)’라 한다. 이 법은 조건 짓는 법에 의해 조건 지어져서 생긴 법을 말한다. , 조건 짓는 법이 제공해주는 도움을 받아서 일어나고 유지 되는 법을 말한다.

 

셋째, 조건 짓는 힘이다.

 

빠알리어로 빳쨔야 삿띠(paccaya-satti)’라 한다. 조건 짓는 법이 조건에 따라 생긴 법에 따라 생긴 법에 대해서 조건으로 작용 하는 어떤 특별한 방법을 말한다. 여기에는 24가지 조건(빳쨔야, paccaya)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24가지 조건(빳쨔야, paccaya)

 

24가지 조건

빠알리어

영어

1

원인의 조건 (因緣)

hetu paccaya

Root condition

2

대상의 조건(所緣緣)

ārammana

Object

3

지배의 조건 (增上緣)

adhipati

Predominance

4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無間緣)

anantara

Priority

5

더욱 틈 없이 뒤따르는 조건(等無間緣)

samanantara

Contiguity

6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

sahajāta

Co-nascence

7

서로 지탱하는 조건(相互緣)

aññamañña

Mutuality

8

의지하는 조건(依止緣)

nissaya

Support

9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親依止緣)

upanissaya

Decisive Support

10

먼저 생긴 조건(前生緣)

purejāta

Pre-nascene

11

뒤에 생긴 조건(後生緣)

pacchājāta

Post-nascene

12

반복하는 조건(數數修習緣)

āsevana

Repitition

13

업의 조건(業緣)

kamma

Karma

14

과보의 조건(異熟縯)

vipāka

Karma-result

15

음식의 조건(食緣)

āhāra

Nutriment

16

기능의 조건(根緣)

indriya

Faculty

17

선정의 조건(禪緣)

jhāna

Jhāna

18

도의 조건(道緣)

magga

Path

19

서로 관련된 조건(相應緣)

sampayutta

Associaton

20

서로 관련되지 않는 조건(不相應緣)

vippayutta

Dissociation

21

존재하는 조건(有緣)

atthi

Presence

22

존재하지 않는 조건(非有緣)

natthi

Absence

23

떠나가 버린 조건(離去緣)

vigata

Disappearance

24

떠나가 버리지 않는 조건(不離去緣)

avigata

Non-disappearance

 

 

24가지 조건 중에 여섯번째의 구생연과 여덟번째의 의지연이 12연기에 있어서 식과 정신-물질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 정신과 물질은 함께 생겨서(구생연) 서로가 서로를 지탱(의지연)해 준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용어로 ‘식연명색(識緣名色)’ 또는 ‘명색연식(命色緣識)’이라 한다. 이런 관계를 왜 알아야 할 까. 바로 그것은 재생연결식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과 정신-물질(명색)의 관계에 있어서 오온 개념으로 본다면 식은 마음이고, 명색에서 명은 마음부수이다. 즉 명은 수상행인 것이다. 12연기에서 무명과 행다음에 식인데 여기서 식은 재생연결식을 말한다. 이 재생연결식으로 인하여 재생이 되는 것이다.

 

어느 존재가 죽고 난 다음에 재생 되는 순간에 식만 올 것이다. 그러나 입태되는 순간에 거의 동시적으로 명색이 함께 발생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앞서기 때문에 마음인 식을 앞에 둔 것이다. 이렇게 함께 발생(구생연)하여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여(의지연) 정신과 물질이 함께 생겨 나는 것이다. 그리고 식과 정신-물질(명색)은 또한  여섯감각장소(육입)와 감각접촉()과 느낌()을 포함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식을 가장 앞에 두고 그 뒤에 명색, 육입, , 수로 두는 것은 식이 명색의 원인이 되고, 명색이 육입의 원인이 되고 하는 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설명 하다 보니 순서를 두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온이나 12연기 모두 원인과 결과를 구분 하기 위하여 편의상 나눈 것 뿐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아비담마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직설적이고 단도집입적인 설명이다. 중생의 근기를 전혀 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고 딱딱 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쓸모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폄하 하기도 한다. 또 그런 복잡하고 번쇄하고 난삽한 이론 때문에 대승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모두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수학에서도 원리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이 쉬어 보이듯이 불교도 마찬가지라 여겨 진다. 부처님이 예를 들어 대기설법으로 말씀 하신 내용을 이론화 하고 체계화 한다면 수백가지 수천가지 예를 들어 설명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아비담마는 일종의 수학 공식과도 같다. 아미담마에 나오는 수 많은 도표가 부처님의 말씀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만들었는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심지어 마음의 도표까지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데

 

이제까지 한국불교에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오지 못하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자에 있다. 한자는 뜻 글자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불리 하다는 것이다.

 

글자 하나가 이미지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논장이 발달 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을 공()으로 해석한 느낌이다. 공 하나로 설명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듯 하다는 것이다. 그런 좋은 예를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는 반야심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이라는 말이 그렇다. 모든 것을 공으로 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사성제도 부정되고(무고집멸도), 십이연기도 부정(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된다. 그 이전에 5 12 18계도 부정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5, 12, 18, 4성제, 12연기등이 모두 공한 것이 되어 말끝마다 모든 것이 공한 것이여!” 라고 말해 져 온 것이다. 물론 공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인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공한 것이라 여겼던 법들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런 법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논서가 또한 아비담마이다.

 

소통을 거부한 결과는

 

아비담마를 접한 것은 이시대의 행운이라 본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지구촌이 글로벌화 됨에 따라 부처님당시의 생생한 원음을 접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빠알리 삼장도 번역이 되어 한글로 된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산업화 사회에서 고도 정보화 사회로 이행 될 때 까지 한국불교는 오로지 한문경전에만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땟을까. 이를 잘 표현 해주는 글이 있다. 각묵스님의 <“도광 연구; 그의 삶, 구도와 보살행을 읽고>라는 글에서 이다.

 

 

우리 불교가 여러 면에서 한글화에 실패했다는 말은 이 시대의 언어로 국민들과의소통에 실패했다는 말이다. 아니 국민들과의 소통에만 실패한 게 아니라 더 뼈아픈 것은 신도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하고 스님들끼리의 소통에도 실패해버렸다는 것이다. 국민들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신도들과의 소통과 스님들끼리의 소통에 조차 실패한 불교가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불교의 한글화는 한국불교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http://club.paran.com/club/home.do?clubid=bud-bbsView.do?menuno=1150-clubno=28-bbs_no=0Yjvs)

 

“도광 연구; 그의 삶, 구도와 보살행”을 읽.doc

 

 

한국불교는 실패 하였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그 가장 큰 이유로 한글화에 실패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과의 소통에도 실패 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님과 신도들과의 소통에도 실패 하였고, 심지어 스님들끼리의 소통에도 실패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불교는 무시 당하게 되었고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2008 8.27 범불교도 대회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

 

 

 

 

그런 실패의 영향이어서일까 최근 인터넷 교계신문에 일아스님이 기고한 내용을 보면 강원교육에 대한 비판 (http://www.mediabuddha.net/detail.php?number=4873&thread=23r02)을 볼 수 있었다.

 

일아스님은 말하기를 강원의 교재가 모두 한문투의 중국스님 들이 오래전에지은 교재라는 것이다. 그 것도 시대착오적인 서당식 교육이라고 강하게 비판 하였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시대에 맞게 부처님의 원음이 담긴 빠알리어 경전을 넣자고 주장 하였다.

 

많이 알아야

 

근대화 이후에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뀌고 산업화에서 고도 정보화 사회로 넘어 올 동안 우리 한국불교는 심산유곡에서 한자어로 된 경전을 지금까지 고수 하여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유일신교는 이 땅에 들어 와서 가장 먼저 한일이 바이블의 한글화작업이었다.

 

그 한글 작업 중에 그들의 신이름도 하나님으로 만들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흔히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중에 아이고 하느님!”하는데 이 하느님도 자신의 신이름을 부른다고 선교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땟을 까. 사람사는 곳이라면 십자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기독교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개혁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개혁당사자들이 개혁을 한다는 것은 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 하다 못해 아예 소통을 거부한 결과는 무시당하고 차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혁 할 수 있을까. 종단과 승가가 변하기만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재가불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사람 사는 곳에 불교가 없다 보니 배울 곳이 없다. 그러나 고도정보화사회가 도래 함에 따라 다행 스럽게도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바로 인터넷이다.

 

비록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세상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고 생각 한다. 모든 자료가 오픈 되고 또 공유 되는 곳 또한 인터넷이다. 따라서 그 세상에서 온 갖 정보를 다 얻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런 인터넷세상은 유럽의 근대화 시기에 구텐베르그의 활자의 발명과 버금 간다고 생각 된다. 그 때 당시 발명된 활판인쇄술로 인하여 바이블이 천만권이 판매 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 까지만 해도 바이블이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로만가톨릭 신부가 아니면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바이블이 자국어로 번역 되면서 신부의 독점적인 권력과 권위가 무너지고 중세 천년이 끝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일어 나게 된 것이다.

 

99.9%의 재가불자들이

 

세상과 소통을 거부 하면서 살아온 불교가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가장 먼저 도시에서 불교를 볼 수 없다는 것과, 젊은층에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점, 그로 인하여 무시당하고 차별 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된 1차적인 요인은 한역 경전의 한글화 실패라고 볼 수 있다. 한자어 경전을 고수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심화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부처님의 원음이 담긴 빠알리어 경전이 속속 번역 되기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불교 심리학의 결정판이고, 테라와다의 모든 것, 위빠사나의 완벽한 이론서라 불리우는 아비담마도 있다. 이들 한글경전들을 재가 불자들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사보고 깨우치게 된다면 종단이나 승가에서 한역경전을 고수 할 수 없을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많이 알고 깨우치게 된다면 종단과 승가가 개혁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 불자들이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개혁은 자연스럽게 일어 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불교가 중흥 하려면 무엇 보다 재가 불자들이 깨어 나야 한다.

 

불량품은 구매 하지 않듯이 비불교적이고 방편만 일삼는 스님들을 멀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 하려 하고 지혜와 자비로서 하화중생을 실천 하는 스님을 지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99.9%의 재가불자들이 많이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재가불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12-28

진흙속의연꽃

“도광 연구; 그의 삶, 구도와 보살행”을 읽.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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