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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검승부 하듯이, 대상을 만나면 반야검과 취모검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2. 30. 11:48

 

진검승부 하듯이, 대상을 만나면 반야검과 취모검으로

 

 

 

올 한 해의 끝자락에 있다. 내일 모레가 되면 새해가 시작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 질 것도 없다. 내년도 역시 올해의 연속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무언가 허탈 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더구나 아무 해 놓은 일이 없이 세월만 보냈다면 그 감정은 더욱 더 심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랬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부터 그런 감정은 덜 하다. 왜 그럴까. 바로 그것은 무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삶의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것 하나만 해도 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진검승부 하듯이

 

매일 글을 쓰다 시피 한다. 벌써 4년째 이다. 글을 쓰면서 허접한 글은 쓰지 않기로 하였다. 무언가 내용이 있고, 읽고 나면 건질 것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검승부 하듯이 글을 쓰는 자세에 임하게 되었다.

 

진검승부는 단 한번의 승부로 생과 사가 결정 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은 운도 따라 주어야 겠지만 철저하게 실력과 관계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진검승부 하듯이 글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사영화나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주로 일본 것이다. 그 중에 재미 있게 본 것이 NHK대하 시대드라마들이다.

 

2008년에 아츠히메를 보았고, 2009년에 신선조를 보았다. 신선조는 2004년 드라마 이지만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모두 막부 말기의 격동기이다.

 

또 이들 드라마의 특징은 진검승부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신선조가 그렇다. 검 한자루에 모든 것을 건 낭사들의 이야기이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이들 드라마를 보면 평소에 열심히 연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실전에 임하듯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드라마에 여러 검술 유파가 소개 되는데 그 중 사츠마 검법이 있다. 그 검법을 지겐류라고 한다. 한자어로 시현류(視現流)라고 표기 된다.

 

이 지겐류의 특징은 일격필살이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상대방을 베지 못하면 자신이 베이기 때문에 두번째 공격은 패배라는 것이다. 따라서 검을 빼었을 경우 반드시 상대를 단칼에 베어 눕힌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각오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겐류에서 두번째 공격은 존재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의 공격이 아니면 죽음일 뿐이다. 그래서 일까 지겐류를 수련 할 때 통나무치기를 하루에 만번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목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통나무에서 연기가 날 정도라고 한다.

 

진검승부는 매우 짧은 시간에 결정된다. 또 실력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실력차이가 크면 승부는 불과 0.5초에 결정 되고, 실력차이가 없다면 검과 검이 맞부딪친다.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간혹 검이 두동강이 나는 경우도 있다. 검이 검을 막다가 부러진 것이다. 이럴 때 꼼짝 없이 상대방의 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대비 해서 일까 반드시 검을 두개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검이 부러지는 경우를 대비한 예비검이라 볼 수 있다.

 

 

 

 

 

 

 

진검승부장면은 주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검승부를 모방한 장면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규칙과 법과 제도를 만들어 곳곳에서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포츠를 들 수 있다.

 

스포츠야 말로 승패가 확실히 결정 되기 때문에 현대판 진검승부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진검승부는 스포츠 뿐만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볼 수 있다. 선거라는 룰을 만들어 놓고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이런 진검승부가 정치판에만 있을 까.

 

아마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존경쟁 그 자체가 진검승부이기 때문이다.

 

 

 

 

 

 

 

 

 

반야검과 취모검

 

그러나 진검승부는 자기자신과 해야 한다. 자기자신과 한 판 붙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끊임 없이 올라 오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 적과의 싸움이다.

 

그런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검이 필요 할 것이다. 불교에서 보통 그런 검을 지혜의 칼이라고 한다. 반야검이라고 한다. 지혜로서 탐진치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런 반야검을 문수보살이 들고 있다.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표현 할 때 반야의 검과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림을 티벳 탕카에서 볼 수 있다.

 

 

 

 

티벳탕카의 문수보살, 지혜의 칼을 들고 있다.

 

 

 

티벳탕카를 보면 문수보살은 항상 칼을 빼어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누군가를 내려 칠듯한 자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칼이 바로 반야검이다.

 

반야검과 함께 불교에서 말하는 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취모검(吹毛劍)이다. 취모검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을 말한다. 벽암록 제 100칙에 나온다.

 

언제든지 대상을 만나면

 

이렇게 불교에는 두개의 검이 나온다. 이들 칼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람을 죽이려는 살인검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라 볼 수 있다. 어떻게 사람을 살린다는 것일까. 보통 반야검은 일체의 번뇌 망념을 끊어버리는데 사용 하고, 취모검은 일체의 사량분별을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불교와 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이지만 두개의 검을 차고 다닌다고 생각 하면 든든 할 것 같다. 언제든지 대상을 만나면 베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육근이 육경을 만났을 때 펼쳐 지는 온갖 감각적 욕망들이다. 이들 감각적 욕망을 단 칼에 베어 버리는 것이다.

 

 

 

2009-12-3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