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고따마붓다는 아리안일까 몽고계통일까, 인도인들의 평균얼굴을 보면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0. 2. 4. 10:40

 

고따마붓다는 아리안일까 몽고계통일까, 인도인들의 평균얼굴을 보면서

 

  

 

인도여행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사진과 동영상을 볼 수 있지만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는 주로 책을 통하여 인도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방문하여 인도여행기를 작성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스님들의 책도 있었다.

 

그 중에 어느 스님이 쓴 인도여행기를 보면 부처님의 나라 인도방문 소감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이 피부색깔 이었다는 것이다.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가 까무잡잡 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인데,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런 피부를 가졌을 것으로 생각 하니 무척 실망 스러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인도인들의 평균얼굴을 보면

 

인도에서 공부 하고 있는 블로거의 블로그에서 인상적인 사진(http://blog.daum.net/whoami555/13741926)을 발견 하였다. 인도의 불자가정을 방문하여 느낀 소감에 대한 글이다.

 

그 사진에서 인도인가족의 얼굴을 보면 인도아리안의 평균적인 얼굴을 보는 것 같다. 32 80종호를 구족하신 부처님의 모습도 아마 그런 피부이었을 것이고 부처님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 이었을 것이다. 야소다라 왕비 또한 인도가정에서 볼 수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추측 할 수 있다.

 

 

 

 사진 http://blog.daum.net/whoami555/13741926

 

 

부처님의 모습이 우리 한국인의 모습과 비슷하리라고 한국의 불자들은 누구나 생각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로 절에 가보면 부처님의 모습은 항상 금색이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전형적인 한국인의 생김새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태어난 인도에 갔었을 때 부처님의 얼굴도 저들과 같이 까무잡잡했을 것으로 생각 한다면 충격으로 다가 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그런 까무잡잡한 얼굴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황인종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부처님이 황인종이지 않았을까 하는 여러 논문이 있다고 한다.

 

그런 논문에 대한 글을 마성스님의 글에서 볼 수 있었다. 붓다의 가계(http://www.ripl.or.kr/, 붓다의 생애와 사상4)라는 글이다.

 

몽고계통의 황인종설

 

대부분의 서구학자나 인도학자 또 이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석가모니 붓다가 틀림 없는 인도아리안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석가모니 붓다가 아리안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논문이 발표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석가모니 붓다는 어떤 인종이었을까. 이에 대하여 일부 학자들은 석가모니 붓다가 몽고계통의 황인종 이었을 것이라는 설을 제기 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들 수 있다.

 

첫째, 사캬족은 티벳계통의 몽고족 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도사학자 스미스(Vincent A. Smith)의 주장이다. 그는 사캬족에 근접하여 살았던 릿차비(Licchavi)족이 티베트의 장례 풍습과 사법절차가 행해졌던 점을 증거로 들었다.

 

둘째, 사캬족이 <리그 베다> 이래의 영웅으로 일종족(日種族)의 선조인 이크슈바쿠(Iksuvaku)왕의 후예인데, 이들은 모두 아리안 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마야부인은 콜리야족 출신인데, 오스트로-아시아계의 문다어를 사용 하는 코르인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설은 일본인 불교학자 이와모토 유타카(岩本裕)에 의하여 제기 되었다.

 

셋째, 초기경의 <락카나 숫따(Lakkhana Sutta, 三十二相經)>에 묘사된 내용에 근거 한다. , “그들의(석가족)의 안색은 청동 빛과 같았으며, 그들의 피부는 우아하고 부드럽고, 그들의 눈과 머리칼은 흑색이었다라는 신체적인 특성과 석가 왕국이 설립되었던 네팔을 포함하여 오늘날에도 히말라야 산맥 기슭을 따라서 분포된 민족의 대부분은 몽고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캬족들은 틀림없이 몽고계 인종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태국의 잠농 통프라스트(Chamnong Tongprasert)가 하였다.

 

아리안설의 근거는

 

이와 같이 석가모니붓다가 비아리안이었을 것으로 주장 하기도 하지만, 석가모니붓다가 아리안이었을 가능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 된다.

 

 

첫째, 사캬족은 크샤트리야(Kshatriyas)라는 것이다. 크샤트리야는 아리안의 계급으로 사캬족이 그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상 그들이 아리안임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둘째, 사캬족의 사람들 그리고 석존이 아리안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캬족의 사회는 부계사회로서 모계제 사회가 아니라는 점도 사캬족이 아리안계 인물이라고 결론짓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아리안설의 반론은

 

첫째, 사캬족이 크샤트리야라고 하지만 새로운 부족이 아리안 문화권에 흡수되어 갈 때, 무력과 정치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크샤트리야로 자칭함으로써 아리안화되어 가는 사례가 여러 차례 있으므로, 크샤트리야라고 해서 아리안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사캬족이 아리안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증거로 아리안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인종집단과 어계(語系)를 같이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현재의 문화인류학이나 언어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어계와 인종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인도유럽어를 사용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인도아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성스님의 결론은

 

마성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사캬족이 아리안이라는 설의 근거도 박약하고, 그렇다고 비아리안이라고 단정 할 수 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까지 밝혀진 연구성과에 따르면 샤카족은 아리안적요소와 비아리안적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모니 붓다가 아리안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 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종족에 대하여 알려면 가계(家系)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 가계는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참조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숫따니빠따를 보면

 

그 문헌이 숫따니빠따에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왕이여,

저쪽 히말라야 기슭에 한 정직한 민족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코살라 나라의 주민으로 부()와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계(家系)는 아딧짜(Adicca, 태양)이고,

태생(가문)은 사끼야(Sakiya, 석가족)입니다.

나는 그런 가문에서 출가했습니다.

내가 기쁨을 바라고 갈망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때입니다.

 

 

이 게송에 대한 석지현스님역은 다음과 같다.

 

 

스승의 대답:

대왕이여, 저 히말라야의 산밑에

정직한 한 민족이 살고 있으니

이 민족은 예로부터 부()와 용기로 이름이 있는 민족이다.

 

이 민족성의 성은 <태양의 후예>이며

석가족(釋迦族)으로 알려져 있다.

대왕이여, 나는 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내가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자가 된 것은

결코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함이 아니다.

(숫따니빠따. 집을 버리다(출가) 422-423)

 

 

빔비사라(Bimbisara)왕이 태생을 알고 싶다고 하자, 석가모니붓다는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정직한 민족이 있는데, 자신은 그 가문에서 출생 하였고, 그 종족은 태양을 뜻하는 아딧짜(Adicca)라고 분명히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디가니까야에서도 석가모니붓다의 시조가 옥까까(Okkaka) 왕인데  히말라야 기슭의 연못 근처, 거대한 사까(Saka) 숲에서 살았다고 나오고 있다.

 

이런 근거로 보았을 때 석가모니 붓다의 씨족은 아딧짜(Adicca)이고 이를 근거로 한다면 사캬족이 아리안계의 태양씨족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이것을 근거로 사캬족이 비아리안계임을 증명 하는 학자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 하는 부처님상은

 

몇 해 전 예수의 초상이 발표 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상상 하는 백인의 모습이 아닌 전형적인 중동인모습이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투박하게 생긴 모습은 이제까지 보아 왔던 예수의 이미지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과연 그 모습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그 때 당시 예수가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인정 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붓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수천년동안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된 부처님의 모습은 동양스타일이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인도인을 비교 하였을 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상에는 인도적인 요소도 많이 남아 있다. 석굴암 본존불을 보면 곱슬머리를 상징 하는 소라머리형태의 머리나 양미간 사이의 백호등이 인도인들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청동이나 철을 재료로 만들어진 불상을 보면 흑인이나 다름 없다. 실상사의 철불이나 철원 도피안사의 비로자나불이 대표적인 모습일 것이다.

 

인도인들의 모습에서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나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르침일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인종과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어떤 피부를 가졌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는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또 부처님이 티벳계통의 황인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아전인수격이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살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바로 부처님 당시와 같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에서 보는 인도인들의 모습에서 석가모니붓다나 부처님의 제자, 그리고 마야부인, 야소다라 왕비, 라훌라의 모습을 발견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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