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올린 글이 현대불교신문에, '세계 최대 종교는 불교15억'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0. 2. 5. 09:51

 

올린 글이 현대불교신문에, '세계 최대 종교는 불교15억'을 보고

 

 

 

 

 

 

방송을 탓었는데

 

몇 년 전 쓴 글이 방송을 탄 적이 있었다. 불교방송의 정목스님이 진행하는 마음으로 듣는 음악에서 이었다. 그 때 당시 방송 시간이 10시대 이었는데 마침 불 꺼진 방에 홀로 있을 때 이었다.

 

잔잔한 명상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청취자 사연을 소개 하겠다는 스님의 음성에서 뜻 밖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개 된 내용을 들어 보니 틀림 없이 내가 작성한 글이었다. 다만 거친 표현은 어느 정도 다듬어 방송함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몇 차례 방송을 더 탓다. 그 중 한번은 시간대가 저녁7대로 옮겨 지고 난 후에 들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청취자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다 방송을 타는 것은 아니다. 설령 방송을 탓다고 하더라도 그 때 듣지 못하였다면 방송을 탓는지 안탓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방송을 탓다는 사실 자체는 기분 좋은 일에 틀림 없다. 그런 소감을 블로그에 발표(http://blog.daum.net/bolee591/9400519)하기도 하였다. 2006년도의 일이다.

 

현대불교신문을 통해서

 

올린 글이 방송을 탄 이래, 최근에 올린 글이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신문을 통해서이다. 교계신문인 현대불교신문을 통해서이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토대로 하여 현대불교신문에 기사를 작성 한 것이다. 그 기사내용은 세계 최대 종교는 불교 15’ (http://news.buddhapia.com/news/BNC002/BNC0021709.html)이다.

 

그 기사를 알게 된 것은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댓글로 알려 왔기 때문이다. 그 기자는 가끔 블로그를 방문하여 들여다 본다고 하는데, 세계종교인구에 관한 글 (http://blog.daum.net/bolee591/16154498)이 있어서 기사화 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계에 있는 사람 같은데 누군지 궁금 하다고 한다.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불교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으니 교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교계라 함은 아마도 출가수행자나 교수와 같은 전문직을 말함일 것이다. 그 범위를 조금 더 넓힌다면 불교조직이나 단체, 종단, 학교, 언론, NGO등에서 일하는 사람을 지칭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범주의 일원도 아닐 뿐더러 그런 단체나 조직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였다. 다만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보고 듣고 느낀 사항을 솔직하게 표현 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조직이나 단체의 일원이라면 쓰고 싶은 사항이 있어도 제대로 글을 쓰지 못 할 것이다. 소속된 조직이나 단체의 이해 관계를 고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디에도 소속 되어 있지 않다면 쓰고 싶은 사항은 무엇이나 쓸 수 있다. 그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익명의 네티즌일 것이다.

 

신상에 대하여

 

사람들은 모르는 사항에 대하여 자꾸 알려고 노력 한다. 친하게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 자꾸 알고 싶은 모양이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가 얼마이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등을 알려고 하는데 이런 경향은 기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도 마찬 가지이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은 현실세계와 다르다. 현실세계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생활 하는 곳이지만 사이버공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 실명 대신에 필명이 대신 하기 때문에 현실세상과 똑 같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이버세상이 현실공간의 연장선상이라면 자신의 실명과 함께 자신의 사진을 걸고 온갖 개인적인 정보를 오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 아이디나 필명으로 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상대방을 굳이 알아야겠다고 생각 한다면 그 가 작성한 글을 읽어 보면 된다. 작성된 글이 그 필명의 얼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경우 대게 가볍게 글을 쓴다. 마치 잡담하듯이 글을 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경우 글의 깊이도 없을 뿐더러 그다지 남는 것도 없다.

 

또 어떤 이는 취미로 글을 쓴다고 한다. 자신의 본업이 있으면서 등산이나 스포츠활동과 같이 취미생활 하듯이 글을 쓰는 경우이다. 이 경우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 나지 못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작성된 글이 그 사람의 얼굴이나 똑 같다는 것이다. 잡담식으로 쓰던, 취미로 글을 쓰던 어느 경우이든지 자신의 현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글은 진지하게 써야 된다고 생각 한다. 한구절을 쓰더라도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하고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 걸고 써야 한다. 진검승부 하듯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진검승부에서 누군가 한 사람은 죽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죽기살기로 살아 남는 글을 써야 된다는 것이다.

 

소재가 나타 나면

 

글은 매일 쓴다. 어떤 소재이든 상관 하지 않는다. 한 구절의 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고,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전개 해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떠오르는 좋은 소재는 당장 써 먹는다. 아껴 두었다가 다음에 써 먹지 않는 것이다. 그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소재가 나타나기 때문에 글 쓸 소재에 대하여 걱정 하지 않는다.

 

사랑 관용 자애도 마찬 가지일 것이다. 있을 때 베풀어야지 아껴 두었다가 조금씩 배푼다는 것은 깍쟁이나 얌체 소리 듣기 딱 알맞은 말이다.

 

보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다음에 재벌이 된 다음에 왕창 보시 한다거나. 큰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중생을 교화 하겠다는 발상 역시 깍쟁이나 얌체와 다를 바 없다.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하며

 

가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사회적 지위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인터넷시대를 맞아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런 글 중에 하나가 기사화 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 한다.

 

남녀노소 인종 민족 종교 국가를 뛰어 넘어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쓸 수 있는 시대는 행운의 시대임에 틀림 없다. 미천한 존재도 이슈를 만들어 나 갈 수 있고,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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