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윤회 하며 흘린 피와 뼈들의 양은 얼마나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남자라면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여자인 경우 다른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어느 인터넷 카페에 ‘묻고 답하기’ 코너에 올라온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질문 >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납니다.
무슨 특별한 일 때문은 아닌데요, 울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듭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니, 다 큰 어른이 창피스럽기도 하구요.
또 제가 어떤 상태에 정체되어 있어 그런가 싶어 여쭈어 봅니다.
이에 대한 법사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 답변 >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많습니다. 법열로 인해 흘리는 눈물도 있고, 괴롭고 슬퍼서 흘리는 눈물도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슬픈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나는 것도 여러 가지의 눈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어떤 눈물이거나 그것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눈물은 마음의 현상입니다. 반드시 어떤 선행하는 마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눈물을 시도 때도 없이 흘리는 것은 원인에 상관없이 이미 눈물을 흘리는 것을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눈물은 배설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근심 걱정이 많으면 슬퍼지고, 슬픔이 많으면 슬픔을 즐깁니다. 슬픔을 즐기면 비탄으로 빠져 자학적 증상이 생깁니다. 그러니 눈물을 적당한 선에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후 생략)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그 것도 ‘알아차릴’ 대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눈물 흘리는 것을 ‘좋아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자가 눈물을 흘렸을 때
12연기에서 느낌(受) 다음에 갈애(愛)이다. 그런데 갈애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 둘째는 ‘존재에 대한 갈애’, 셋째는 ‘비존재에 대한 갈애’, 이렇게 세가지이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위 세가지 중 첫번째인 ‘감각적욕망에 대한 갈애’에 들어 갈 것이다.
그런데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은 진짜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눈물 중에서도 남자가 눈물을 흘렸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이다.
영화에서 “나 이제 옛날로 돌아 갈래!” 하면서 절규 하는 장면이 나온다. 철교에서 다가 오는 기차를 향하여 내 뱉은 이 말은 영화에서 가장 첫번째 장면이다.
그 첫 장면이 지나고 난 뒤에 시간이 거꾸로 흘러 주인공 설경구가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20대 초반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 하고 강가로 놀러 갔다가 바로 그 철교를 바라 보면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모두들 디스코를 추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자신만 슬며시 빠져 나와 철교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마치 미래의 사건을 모두 알아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후 영화는 시간을 역행 하면서 그 눈물의 의미를 설명 하여 준다.
영화 '박하사탕 '
‘또라이’는 누구
불교는 윤회를 인정 하는 종교이다. 윤회를 인정 하지 않는다면 경전에 나타나는 예류, 일래, 불환, 아라한의 정의가 모두 거짓이 되고 교학체계가 모순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윤회 없음을 주장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속된 말로 ‘또라이’ 일 뿐이고 그런 사람의 말은 믿을 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경전의 도처에서 윤회에 대하여 언급 하였고, 따라서 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윤회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무명에 가려지고 갈애에 묶인 채, 한 생에서 또 다른 생으로 끝 없이 윤회를 계속해 온 존재가 언제 시작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과거의 원인이 현재가 되고, 현재의 원인이 다시 미래의 결과로 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무명의 시작은 알 수 없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뼈들의 산’ 웨뿐라(Vepunlla)산
한 존재가 윤회를 거듭 하다 보면 과거 전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말하여 주는 법문을 들었다.
불교방송의 묘원법사의 법문에 따르면 웨뿐라(Vepunlla)산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웨뿐라 산을 올라 가는데 4일이나 걸린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백두산 만큼이나 높고 오르기 힘든 산인 것 같다.
그런데 윤회 하면서 한 존재를 거쳐간 뼈을 쌓아 놓으면 그 산과 맞먹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존재의 뼈 무더기가 커다란 산 만큼이나 많다는 이야기는 윤회가 그토록 길고 또한 고통의 세월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뼈들의 산’에 반드시 사람의 뼈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축생으로 태어난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색계나 무색계의 중생으로 태어 난 경우는 어떠할까. 화생으로 태어난 경우 죽을 때 또한 흔적도 없이 소멸 하기 때문에 그 뼈무더기에는 포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흘린 피의 양은 얼마나
윤회 하면서 뼈만 남겼을까. 윤회 하면서 흘린 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통해서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소로 태어나 소가 되어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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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도둑으로 살면서 길섶에서 약탈하다 사로잡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도둑으로 살면서 부녀자를 약탈하다가 사로잡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명에 덥히고 갈애에 속박 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며 흘린 피가 사대양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소나 돼지, 염소, 닭과 같은 축생이었던 때도 있었고, 사람으로 태어 나서도 도둑질 하다, 부녀자를 겁탈 하다 잡혀서 목이 잘려 흘린 피도 부지기 수로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태어날 때 왜 울까
윤회하면서 피만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흘린 눈물의 양 또한 얼마나 많을까. 아마도 흘린피의 양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 눈물을 모아 놓는다면 5대양을 넘쳐 흘러서 온 땅덩어리를 다 덮을 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는 의미는 아마도 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흘린피와 눈물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일종의 ‘원초적 슬픔’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윤회의 두려움’에 대한 공포 일 수 있다. 그런 원초적 슬픔의 예를 아기가 태어날 때 ‘울음’으로 보기도 한다.
아기가 태어 날 때 모두 다 기뻐 하지만 정작 태어난 아기는 울음으로써 이 세상에 신고를 한다. 그 우는 의미가 기뻐서 우는 것이 아니라 슬퍼서 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기쁘다면 당연히 웃어야 하나, 아기가 우는 것으로 보아 이 세상 살아 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고, 어떤 고난이 닥쳐 올지 모르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역행 하는 장면을 보면
박하사탕영화의 특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시간역행(時間逆行)’영화라고도 한다.
그런데 시간역행 하는 장면이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 [나]는 이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해지고 순결해지고 흠없이 되고
정신적 오염원이 없어지고 부드러워지고
활발발하게 되고 확립되고 동요함이 없게 되었을 때
전생의 삶들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하였다.
그런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수 있었소.
한생 전, 두생 전,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우주 수축의 여러 겁,
우주팽창의 여러 겁,
우주수축과 팽창의 여러 겁 전까지.
'거기에서 나는 이름이 무엇 이었고,
종족의 성[種姓]이 무엇이었으며,
용모는 어떠했으며,
어떤 음식을 취했고,
내가 겪은 즐거움 과 괴로움은 어떤 것이었고,
수명의 종말은 어떠했고,
거기서 죽어서는 어디에 태어났으며,
거기서는 다시 이름이 무엇이었고,
… 거기서 죽어서는 여기에 다시 태어났다.'
이와 같이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사소한 일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宿命通].”
<맛지마니까야, 마하삿짜까 경(Mahaasaccaka Sutta)>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전생의 삶들을 기억 하는 지혜인 숙명통에 관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한생전은 물론이고 우주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한 여러 겁 전까지 살았던 모습을 부처님은 생생 하게 기억해 내고 있는 것이다.
성씨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생겼고, 어떤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다가 심지어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하여도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무명에 덥히고 갈애에 끄달려서
우리도 부처님처럼 전생을 모조리 기억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더 이상 윤회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여기 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기 까지 무명에 덥히고 갈애에 끄달려서 여기까지 왔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기억 한다는 것은 기껏 해야 태어 나서 몇 년 후의 희미한 기억들뿐이다. 그 이전 생에 있었던 모든 과정은 태어 나는 과정에 있어서 모두 지워져 버린 것이다. 마치 게임에서 리셋하면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 하는 것과 마찬 가지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 나는 순간 울음을 터트렸다는 사실은 앞으로 전개될 인생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두려움과 공포 때문일 것이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면
누구나 울 때는 이유가 있다. 슬퍼서, 괴로워서, 또는 즐거워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 눈물 중에 법의 즐거움을 맛 보아 우는 ‘법열(法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린다면 좀 더 근원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전생을 기억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지금까지 한 행동으로 보아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예측 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그 흘린피와 뼈들을 생각 한다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수 도 있지도 않을까.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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