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전 검은 배(흑선, 黑船)의 위력은, 메이지 유신은 하급무사들이 주도한 혁명
료마전을 보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막서비스 하는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 료마전은 보면 볼수록 점점 재미가 더해 가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이지만 보는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역사 대하 드라마에서 전체적인 커다란 줄거리를 다 알고 보듯이 료마전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는 메이지 유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근대화 과정에서 일개 낭인에 불과 하였던 사카모토 료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장면은 이미 소설을 통해서, 여러 드라마를 통해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검은 배의 위력은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 된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이 일어 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이 ‘미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그 때 당시 도쿠가와 막부가 있었던 에도(토쿄)와 가까운 바다에 출현 하면서 부터이다. 그 때 료마는 에도로 유학을 와서 검술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 하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인 드라마가 시작 된다.
일본 근대화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 하는 사건이 바로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黑船, 쿠로후네)이다. 우리말로 번역 하면 ‘검은 배’이다. 왜 검은 배일까.
드라마에서 설명하기를 배가 녹슬지 않기 위하여 검은 ‘타르’를 발랐기 때문에 검게 보여서 흑선이라고 한다.
검은 배는 석탄을 때서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증기선 이었는데 그 때 당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최신식 배이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항공모함’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료마전에서 보는 검은 배(흑선)
그런 검은 배가 나타나자 일본의 역사는 소용돌이 치기 시작 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사카모토 료마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의 나이 불과 18세때이다.
이후 그가 낭인들의 칼에 맞아 죽을 때 32살 이었고, 바로 그 다음해 메이지 유신 정부가 1868년에 세워 졌는데 검은 배가 출현한 이래 불과 16년만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대활약 한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이고 그의 나이로 보았을 때 20대와 30대 초반 약 10여년이다.
활략하는 인물들의 나이는
검은배가 출현하여 메이지 유신이 성립될 때 까지 16년간 활약하던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20대와 30대들이다.
이들 이삼십대 사무라이들이 역사를 바꾸어 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사무라이들의 출신이 ‘미천’했다는 것이다. 무사계급이라도 다 똑 같은 무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가 속해 있었던 도사번(土佐藩)의 경우 ‘상사’와 ‘하사’로 나누어 져 있는데 료마는 하사에 속했다. 즉 하급무사 신분이었던 것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상사들이 하사들의 생사 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본다. 상사가 지나 가면 하사들은 무릎을 꿇어야 하고, 만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밸 수 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하급무사들이 격동의 시기를 맞게 된 것 이다.
260개의 다이묘로
그 때 당시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 하고 있었던 세력은 도쿠가와 막부 이었으나 전국을 완전히 통치 하지는 못하였다. 반 봉건형태로 유지된 봉건국가 체제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봉건영주 국가시대는 없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지형이 길고, 해안에 모여 살다 보니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여러 번 중에 가장 힘이 강한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대표 하고 있었을 뿐 변방은 반 독립국가나 다름 없었다. 그런 다이묘들이 사츠마, 죠슈, 도사와 같은 번인데, 에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반 독립국 처럼 되어 있었다.
전국에 걸쳐 260개의 다이묘가 있었다 하고, 이들 다이묘는 막부가 장악하고 있는 곡창지대를 제외한 전국의 3/4을 다스렷다고 한다. 즉 노른자위는 모두 막부가 차지한 것이다.
그래서 막부의 경제력을 보면 석고가 440만석인데 반하여 사츠마는 77만석, 죠슈는 37만석, 도사는 24만석으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 이었다. 그런 막부와 다이묘들은 어떤 관계이었을까.
장군과의 관계에 따라
막부는 다이묘들과 서약을 맺었는데 장군과의 관계에 따라 세가지로 분류 되었다.
명 칭 |
내 용 |
비 고 |
신판(親藩) |
쇼군 가문의 근친 |
아이즈번, 미토번 |
후다이(譜代) |
대대로 쇼군 가문을 섬겨온 신하 |
막부정치에 관여 |
도자마(外樣) |
동맹관계에 있는 다이묘 |
사츠마번, 조슈번 |
일본 드라마에서 종종 자막으로 설명 되고 있는 명칭들이다. 신판(親藩)의 경우 막부가문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드라마 신선조에서 ‘아이즈번’이 이에 해당 될 것이다.
후다이(譜代)의 경우 장군을 지키는 가신단에서 다이묘로 뽑힌자들을 말하는 데 막부정치에 관여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
도자마(外樣)의 경우 세키가하라전투이후 동맹자 또는 중립자 심지어는 적이었던 다이묘를 말하는데 도쿠가와가문과 동격 이었다. 따라서 그들에 통제는 매우 엄격 하였다. 막부말기에 사츠마나 조슈번이 이에 해당 된다. 이들은 막부의 힘이 약해 지면 언제든지 들고 일어서게 되어 있다.
검은배 사건 이후 막부의 힘이 약해지자 도자마들이 들고 일어서 존왕양이를 주장 하며 막부 타도를 외치자 막부와 근친 관계에 있던 아이즈 번이 이들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일본 역사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이다.
구체제가 계속 유지 되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과 이참에 무력을 통해서라도 바꾸어 보려는 세력간의 ‘한판’ 대결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까지 선 보였던 역사 대하 드라마의 주제 이었다.
그런 드라마가 2004년도의 ‘신선조’, 2008년도의 ‘아츠히메’이었는데, 이번에 방영 되고 있는 ‘료마전’ 역시 그런 식의 이야기가 전개 되어 나갈 것이다.
독특한 인질제도
막부가 힘이 빠지면 들고 일어 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들 번들을 효율적으로 통제 하기 위하여 토쿠가와 막부는 참근교대(參勤交代, 산킨코터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유력 번들의 다이묘를 일정 기간 교대로 에도에 머물러 근무 하게 하고, 영지로 내려 갈 때는 부인과 가족을 에도에 인질로 두고 가야 했다. 일종의 인질제도를 이용하여 다이묘를 통제 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250년간 제도가 유지 되어 왔는데 검은 배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검은 배 하나 막아 낼 능력이 막부에 없음을 간파한 번들이 들고 일어 난 것이다. 그래서 천왕을 중심으로 뭉쳐서 오랑캐를 몰아 내자는 ‘존왕양이론’이 득세한 것이다.
그 중심에 하급 무사들이 있었는데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토시미’, 죠슈의 ‘가츠라 고고로’와 ‘쿠사카 겐즈이’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도사의 ‘사카모토 료마’와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20대와 30대의 젊은 무사들이었다.
천왕의 군대가 되어
도쿠가와 막부 말기 크게 관동과 관서로 발전 되었다.
장군이 있었던 에도는 그 때 당시 100만명이 살던 대도시 이었고 경제의 중심지이었으나, ‘쿄(京)’라 불리우는 쿄오토는 에도 보다 규모가 훨씬 못 미치지만 정치의 중심지이었다. 왜냐하면 그 곳에 천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부의 힘이 약해지자 번들 사이에서는 천왕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본을 만들고자 하는 기운이 강해 졌는데 이를 중재한 인물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이다.
그 때 당시 쿄오토에 주둔 하고 있던 군사 책임자 이었던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죠슈의 가츠라 고고로사이에 ‘사츠마 죠슈 동맹’을 성사(1867년) 시켰기 때문이다.
이들 동맹군들은 이제 번의 소속이 아니라 천왕의 군대가 된 것이다. 즉, 관군이 된 것이다. 그래서 관군의 자격으로 ‘에도 정벌’에 나서게 된것이다. 결국 토쿠가와 막부는 삿쵸 동맹이 성립 된지 1년만에 1868년에 붕괴 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하급무사 출신들이 정권을 잡자 이제 전의 주군이었던 다이묘들을 없애는 작업에 착수 하게 된다.
다이묘들이 소유한 영지들을 천왕에게 돌려 주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 대신 정부에서 이들 다이묘들을 임명(1869년)하여 그 땅을 다스리는 일개 지방장관 정도로 격하 시킨 것 이다.
그러다가 이 마저도 1871년에 다이묘의 영지는 완전히 폐지 되고, 다이묘들은 도쿄에서 연금을 받으며 사는 귀족이 되었다.
아래로 부터의 혁명
비록 드라마나 소설로 본 일본 근대사를 보았지만 메이지 유신은 하급무사에 의한 일종의 ‘혁명’이었다.
사츠마와 죠슈와 같은 유력 번들의 군주가 군대의 책임자로 임명한 하급무사들이 영지와 멀리 떨어져 전권을 위임 받은 상태에서 그들 하급무사출신들의 군사 책임자들끼리 스스로 동맹을 맺고 ‘천왕의 군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츠마나 죠슈의 영주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배신 행위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신분이나 가문이 미천한 하급무사들이 정권을 잡게 됨으로서 일본은 처음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 하고 최초로 통일다운 통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 역시 하사 출신의 미천한 가문출신의 사카모토 료마인데 오늘날 드라마를 통하여 다시 한번 영웅으로 재탄생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NHK대하드라마 료마전의 료마
진흙속의연꽃
'영화드라마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드 보는 재미에, 료마전과 삿쵸(薩長)동맹 (0) | 2010.09.30 |
---|---|
일본 역사드라마에서 배울점, 신선조 세리자와 가모 진검승부현장 야기저택 (0) | 2010.08.02 |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윤회 하며 흘린 피와 뼈들의 양은 얼마나 (0) | 2010.02.08 |
만들어진 영웅 사카모토 료마, NHK 료마전(龍馬傳)의 영웅만들기를 보며 (0) | 2010.01.15 |
아비지옥이란, 홍콩 느와르와 유덕화의 무간도 (0) | 2010.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