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라는 감옥에서, 열반과 해탈의 의미는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꾸는 꿈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비밀 한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 섣불리 말 못하는 내용이다. 그런 내용 중에 하나가 군대이야기이다.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군대와 관련된 ‘꿈’을 꾸는 것이다. 그 것도 ‘반복적인’ 꿈이다.
군대를 제대한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수 년전까지만 해도 군대에 관한 꿈은 여지 없이 ‘재입대’하라는 꿈이다. 분명히 3년 가까운 세월을 복무 했음에도 불구 하고 또 들어가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처음에는 재입대 하라는 영장이 나왔을 때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게 된다. 그리고 3년을 군 복무하고 나오는 것이다 도합 6년간을 복무 한 것이다.
다음에 꿈을 꿀 때는 꿈의 내용이 좀 더 발전 된다. 재입대 영장이 나왔을 때 군대에 이미 갔다 왔다고 ‘항의’를 한다. 그러나 거대한 국가권력의 힘 앞에 개인의 존재는 무력하다. 또 그대로 가게 되 3년을 복무 하게 된다.
꿈이 반복 될수록 항의도 늘어나고 억울함을 호소 하는 것도 늘어난다. 같은 내용의 꿈이지만 세월에 따라 ‘진화’해 감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무의식’을 지배 하는 재입대 명령의 꿈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런 꿈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 하는 날에
군대3년을 마치고 제대를 하는 날, 위병소를 통과 하였을 때 6월초의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공기는 마치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해방’되었다는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체감 하는 순간이었다.
영어로 해방을 ‘리버레이션(liberation)’이라 한다. 이 리버레이션이 불교 용어로 사용 되었을 때 ‘해탈(解脫)’의 의미로도 해석 된다.
그러고 보면 해방과 해탈은 ‘얽매임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한정 하였을 때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누구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속박에 따른 삶을 살아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벗어 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속박이 좋다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기만 해도 감사해 하며 그 곳을 떠 나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런 곳이 교도소라면 그 교도소가 좋다고 떠 나려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탈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는
얽매여 사는 곳은 감옥만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살아 가는 것 자체가 얽매여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감옥은 ‘이 세상 자체’라 볼 수 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자신이다. 그런데 자기자신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는 철저하게 정신과 물질의 작용이라 본다. 그런 정신과 물질을 다른 말로 하면 오온이다. 색수상행식의 다섯가지 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는 오온은 정신과 물질을 분해 해 놓은 것이다. 이 오온의 무더기에 끄달려 살기 때문에 속박을 당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감옥을 탈출 할 수도 있었지만 독배를 받아든 이유가 준법 정신을 준수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육체의 감옥’을 탈출 하기 위해서 이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열반과 해탈은 같은 말일까
인간의 육체를 하나의 감옥으로 본다면 정신 또한 감옥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육체와 정신의 감옥을 탈출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까. 그런 해법을 제시하는 종교가 불교라 볼 수 있다.
감옥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의 불교의 용어는 크게 해탈과 열반이라는 두가지이다. 그렇다면 해탈은 무엇이고 열반은 무엇일까.
사전의 내용과 수행처에서 들은 이야기를 조합하여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용 어 |
상 태 |
비 고 |
열반 |
탐진치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 |
여러 번 가능. 유신견을 극복한 상태 |
해탈 (목샤, Moksha) |
윤회가 끝난 상태 |
부처님과 아라한, 벽지불만 가능. 반열반(般涅槃, Parin Nibbana)과 같은 말 |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불자들도 열반과 해탈을 잘 구분하여 사용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열반이나 해탈이 다 같은 말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엄밀하게 따져 보았을 열반과 해탈은 다른 말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해탈을 설명 하는 데 있어서도 영혼이 있다라는 '유신견(有身見)'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은 비불교적 발상이라 볼 수 있다. 아마도 힌두교적인 관점에서 쓰여졋기 때문에 나온 오류라 보여 진다.
열반은 두가지가 있는데 오온을 가진 채 탐진치가 소멸된 상태의 일반적 의미의 ‘열반’과 오온이 소멸된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해방을 뜻하는 ‘반열반(般涅槃, Parin Nibbana)’의 두가지 있다.
반열반은 부처님이나 아라한, 벽지불과 같은 단계에서 이루어지므로 해탈과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열반은 어떤 상태를 말할까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수행을 통하여 열반을 체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것도 한 번 뿐만 아니라 자주 들어 갔다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열반의 상태를 묘원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집중의 상태에서는 몸의 자세가 바릅니다. 그리고 호흡이 있다가, 마음이 있다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다가, 마음마저 없어지는 열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 열반이라는 것은 그 과정만으로 볼 때는 그렇게 간단합니다. 몸과 마음이 없어지면 열반입니다.
수행중에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보다가 ‘몸과 마음이 사라진 상태가 열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열반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열반은 그 순간의 ‘정신적 상태’이고 그 냥 그 당시의 ‘정신적 상황’일 뿐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라 들어 가고 또 들어가고 이렇게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수다원, 사다함, 아나한, 아라한의 도와 과의 사쌍팔배(四双八輩)를 지향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한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각묵스님의 견해도 마찬가지이다. 이중표 교수의 ‘「육조단경의 반야․중관 사상」을 읽고’라는 글에서 밝힌 내용이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출세간은 욕계․색계․무색계를 벗어난 다른 세계로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열반을 실현한 성자들의 마음의 흐름들을 출세간이라고 구분짓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 안에 각각 작용만하는 마음(kiriya-citta)이라하여 여러 가지의 마음들을 구분하여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좌부 아비담마의 기초중의 기초이다
생사의 세계를 떠난 열반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자들의 마음의 흐름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열반에 이른 자는 있어도
그런데 자신이 열반에에 들었는지 어떻게 알까. 그 것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들어가는 것과 나왔을 때 밖에 모른 다고 한다. 그 중간은 ‘의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툭’하고 도에 들어가서 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닙바나에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는 스승만이 안다고 한다. 그런데 스승은 결코 그가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지 않는 다고 한다.
이야기를 해주면 “내가 수다원”인데 “내가 아라한인데” “내가 깨달았는데”하는 ‘아만심’이 생길까 봐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우리나라의 수행풍토와 크게 차이 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출가자들은 득도 하였다고 책이나 자기소개에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득도 했다고 하면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 하는데, 그 과정을 기억 하고 있다면 나(我)가 있다는 견해인 유신견(有身見)의 상태에서 깨달은 것이라 볼 수 있다.
깨달음이란 ‘집착이 끊어져서 열반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라고 볼 때, 깨달았다고 스스로 선언 한 다는 것은 유신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열반의 상태가 유신견이 없는 상태 즉, 나가 소멸된 상태에서 정신적 흐름을 말하기 때문에 “열반에 이른 자는 있어도 들어간 자는 없다, 혹은 이른 자는 있어도 얻은 자는 없다”라고 한다.
윤회라는 감옥에
사람들은 윤회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해탈이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빠져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감옥이 좋다고 계속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분이 부처님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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