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는 잘못 된 삼귀의, 스님이 아닌 승가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0. 3. 21. 11:47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는 잘못 된 삼귀의, 스님이 아닌 승가로 해야

 

 

 

불자들의 가슴속에 늘 불안한 마음이 하나 있다. 스님 들이 각목들고 싸우는 것이다. 지난 90년대에 두번 있었던 각목싸움은 불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 되어 있어서 총무원장 선거 때 만 되면 그런 사건이 다시 벌어질 지 않을까 염려 한다.

 

이미 불자들의 무의식에 잠재 해 있는 그런 불안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무차회이니 보림회이니 하는 승가내부의 파벌 이야기만 나와도 늘 불안 하다는 것이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는 잘못 된 것

 

승가는 귀의의 대상이다. 귀의 라는 말은 영어로 ‘refuge’이다. 이 말은 피난처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승가는 믿고 의지 하는 곳이자 피난처 이기도 하다.

 

그런 승가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한글 삼귀의에서는 스님으로 표현 한다. ,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라고 모든 불교의식에서 독송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한다면 이 말은 잘 못 된 것이다. 스님들이 아니라 승가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삼귀의에 대한 백과사전을 찾아 보면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으로 나와 있다. 이에 대한 뜻 풀이는 부처가 설한 진리, 그리고 그 진리를 실천하는 수행자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가 성립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로 표현 되어 있다.

 

승가는 진리를 실천하는 수행자를 말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보통 이들 수행자를 ‘4부대중이라 말한다. ,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일컫는 말이다.

 

진정한 승가의 의미는

 

동아시아가 아닌 전세계적으로 통용 되는 승가의 의미는 무엇일까. ‘Tisarana’를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면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가(The Sangha) :

 

성자의 문하생들(the Blessed one's disciples)의 상가는 선한 도(the good way)를 수행하고, 올바른 도(the straight way)를 수행하고, 진실한 도(the true way를 수행하고, 타당한 길(the proper way)을 수행하는 것이다.

 

, 48(the four pairs of persons, the eight types of individuals)의 성자의 문하생들로 이루어진 상가는 보시할 가치가 있고, 환대할 가치가 있고, 공양할 가치가 있고, 존경하여 경배할 가치가 있고, 이 세계의 어느 분야에서도 이겨낼 수 없는 이점이 있다.

 

 

상가를 48,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와 과를 증득한 성자들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가는 공양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성자들을 복전이라 부른다.

 

상가라는 말은 언제부터

 

상가라는 말은 언제부터 유래 되었을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삼보(Three Gem)’라는 말은 불교도들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빠일리 성전에서 발견 된다고 한다.

 

그 빠알리 성전 중에 숫따니빠따(Sutta-nipata)에 경전이 하나 있는데, 그 경전 이름이 라따나숫따(Ratana-sutta, 보배경)이다. 경은 부처님(Buddha)과 담마(Dhamma)와 상가(Sangha)의 세가지 보배에 대한 연속적인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따나숫따에서 언급된 상가의 질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로 귀착되고 있다.

 

그 중의 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라따나숫따 게송6 (숫따니빠따 Sn II.1)

빠알리어

우리말 음역

  

Ye puggalā attha satam pasatthā,

Cattāri etāni yugāni honti,

Te dakkhi n eyyā sugatassa sāvaka,

Etesu dinnāni mahapphalāni

Idampi Buddhe ratana m pa n īta m ,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예 뿍갈라 앗타 사땅 빠삿따

짯따리 에따니 유가니 혼띠

떼 닥키네이야 수가땃사 사와까

에떼수 딘나니 마합팔라니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여래께서 찬양하신 여덟 단계 성인은

네 쌍의 도와 과 얻으신 분들

공양 받을 자격 있는 여래의 제자들

풍부한 공양 공덕 지으신 성인들

상가는 이 세상 으뜸가는 보배

이러한 진리로 그대들 행복하길!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상가는 사성제를 이해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은 여덟단계의 성자,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와 과를 증득한 성자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런 성자들은 모두 복전으로서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귀의처 또는 피난처로서의 상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승가의 의미는

 

현대에 있어서 상가의 의미는 두 가지로 쓰여 지고 있다. 좁게는 ‘비구’와 ‘비구니’의 승가사회이고, 넓게 보면 비구와 비구니는 물론 ‘우바새’와 ‘우바이’를 포함 하는 사부대중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승가라고 하면 보통 좁은 의미로서 비구와 비구니로 이루어진 승가사회를 말한다. 그리고 남성신도와 여성신도는 거사보살로 불리우면서 재가불자라 말한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승가와 재가로 엄격히 구분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오랜 불교사에 있어서 재가자도 상가의 일원이었다. 재가자 중에서도 출세간의 도와 과를 증득하여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모습만 재가자이지 출가자와 같은 성스런 삶을 구현 하고 있었기에 그들 또한 귀의처가 될 수 있었다.

 

소유의 개념으로 본다면

 

승가와 재가의 엄격한 구분도 소유의 개념으로 본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따르고 있는 남방상좌불교에서는 4가지 필수품( , 음식, 거처, 약품)외 소유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것에 반하여 우리나라의 승가에서는 소유가 은연중에 허용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증거로서 최근 교계신문에서 볼 수 있는 사재의 종단 출연령이다. 승려가 가지고 있는 사유재산을 사후에 종단에 출연 할 수 있도록 하는 교계의 법이다.

 

무소유를 지향하는 스님들이 왜 재산을 축적할까. 가장 큰 이유는 노후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교계신문에 따르면 조계종 스님 5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65.4%가 노후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 한다는 것이다.

 

갈수록 노령화가 진행 되고, 노후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사유재산 축적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찰소임을 맡고 있는 일부 주지들이 재산을 축적 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 한다. 더구나 일부는 은처까지 두고 있다고 하는데 그쯤 되면 승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어진다고 볼 수 있다.

 

승가와 재가를 구분 하는 기준이 단지 삭발하고 가사장삼을 둘렀느냐의 기준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재산축적의 기준으로 따진 다면 모두 재가로 불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로서 1% 법칙이 있다.

 

미국에서 1%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흑인의 피가 단 1%만 섞여도 흑인으로 간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흑인들이 자신들의 인권에 대한 데모를 벌일때 마치 백인처럼 보이는 사람도 데모대에 합류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 경우 모두 1%의 법칙에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출가자가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면 그 출가자는 승가의 일원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반승반속의 승가자또는 사실상의 재가자라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단지 재산관리인으로서의 주지 또는 재산을 축적하는 승려는 더 이상 귀의의 대상이 아니다. 소유의 개념으로 본 다면 같은 재가자라 볼 수 있는데 어떻게 귀의처가 되고 피난처가 될 수 있을까.

 

깨달음으로 본다면

 

다음으로 성자와 범부의 기준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열가지 족쇄(삼요자나, samyojana)를 푼 존재를 성자로 보았다. ,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법에 대한 의심, 감각적 욕망, 악의, 색계에 대한 집착, 무색계에 대한 집착, 자만, 들뜸, 무명 이렇게 열가지 족쇄를 단계적으로 푼 자를 성자라고 말한다.

 

이중 자아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을 풀면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는 수다원이 되는 것이다.  

 

10가지 족쇄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신견(有身見)’ 이다. ‘내가 있다라고 생각 한다면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본마음, 참나가 있다고 생각 하는 한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자의 반열에 들어간 수다원은 7생 이내에 열반하여 해탈 하게 되어 있다. 다시 나고 태어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복전(福田, 뿐야켓따, punna-khetta) 이라 하여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10가지 객관적 징표인 족쇄를 풀지 못하였다면 천신과 인간, 출가자, 재가자를 막론하고 윤회계를 벗어 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똑같이 범부로 보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각목사태

 

재가자가 바라보는 승가사회는 늘 불안하다. 그 것은 지난 90년대에 있었던 각목싸움 사건이 불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용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번 조계종에서 봉은사 직영사찰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데 언제 또 각목들고 싸우지 않을까 불안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종교현실에서 불교 하나만 있으면 모를까, 개신교, 천주교등 이웃 종교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각목사태가 또 다시 벌어진다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챙피한일이 될 것이다.

 

아니 챙피한 정도를 지나 국민이 외면하게 된다면 한국불교는 골동품화 되고 박제화 된 소수종교로 전락 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재산문제이다.

 

사유재산을 축적하고 종단 재산으로 인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한 어쩌면 각목사태는 피 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각목사태가 터진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 당시 개혁을 주도 하였던 스님들이 이제 개혁의 대상으로 몰리고 있고, 더구나 사유재산 문제까지 얽매여 있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다는 것이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 합니다

 

출가자가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깨달음도 없다면 그런 출가자는 이미 재가자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회에 아무런 봉사 함이 없이 재산만 축적하려 든다면 그런 출가자는 귀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재가자끼리 무슨 귀의가 필요할까.

 

재산을 소유 하고 더구나 깨달음도 없는 스님들에게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한글 삼귀의는 맞지 않다. 또 한역경전이나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 오는 초기불교의 전통을 보아서도 단지 일반적인 의미의 스님들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진정한 승가의 의미는 48배의 성자들로 이루어진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서, 이들이 귀의처이자 피난처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진리를 실천 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승가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진리를 실천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비구’ ‘비구니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비구 비구니를 포함 하여 우바새’ ‘우바이로 이루어진 4부 대중이 모두 승가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 삼귀의 내용 중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라는 문구는 거룩한 승가에 귀의 합니다로 바뀌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Buddham saranam gacchami.
Dhammam saranam gacchami.
Sangham saranam gacchami.

 

붓당 사라낭 갓차미.
담망 사라낭 갓차미.
상강 사라낭 갓차미.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Tisarana

사진 dhammacitta.org/pustaka/gambar/w...llpaper/

 

 

 

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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