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내가 누군데!” 무명과 갈애보다 더 무서운 유신견(有身見,sakaya-ditti)

담마다사 이병욱 2010. 4. 16. 10:25

 

내가 누군데!” 무명과 갈애보다 더 무서운 유신견(有身見, 사까야딧띠, sakaya-ditti)

 

 

 

도무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쓰는 말이다. 이때 도무지는  부사로서 아무리 해도라는 뜻과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라는 뜻이 있다. 마치 벽창호에 대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사용 하는 도무지는 한자어 도모지(塗貌紙)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로서 가정의 윤리 도덕을 어긴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고 물을 묻힌 조선 종이,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겹이고 착착 발라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종이에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사형(私刑)이 있었다는 기록이 황현(黃玹)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온다고 전한다.

 

아상이 너무 강해서

 

약을 먹으면 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한 부류는 너무 어리석어서 구제불능을 말한다. 불교에서 그런 사람을 일천제 (一闡提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잇찬티카(icchantika)의 음사인 일천제는 단선근(斷善根) 또는 신근부족(信不具足)이라 번역한다. 이말은 선근이 끊어진 까닭에 구제가 불가능한 사람 또는 성불이 불가능한 사람을 말한다.

 

또 한 부류는 너무 잘나서 남의 말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아 교화가 어려운 사람을 말한다. 이 경우 아만(我慢)’이 있다 든가 아상(我相)’이 너무 강하다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만과 아상이 강한 사람의 특징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관이 매우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또한 특징인데 대체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자수성가한 사람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그런 유형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겉으로 드러난 특징중의 하나는 를 잘 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경우 마구 화를 내는 것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화를 낸다는 것은 불만족의 표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알고 보면 탐욕과 어리석음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높여 잘난체 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인 아만은 자만(自慢, 마나, mana)’이라고도 한다. 이런 자만은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불선심 즉, 해로운 마음에 속한다. 82가지 구경법중에 52가지가 행과 관련된 마음부수인데 그 불선심에 해당 하는 마음은 14가지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질투 인색등과 더불어 잘난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행위인 자만은 불선업을 짓는 것이다.

 

자만은 내가 있다라는 견해에서 출발한다. 내가 있다라는 견해를 불교에서 유신견(有身見, 사까야딧띠, sakaya-ditti)’이라 하며 잘 못된 견해의 표본으로 본다. 이런 잘못된 견해는 존재론적발상에서 기인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지 탐욕과 관련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데!”

 

수행자가 유신견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좋은 예를 불교방송의 12연기와 위빠사나 강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찬나 장로는 왕궁의 시종이었는데, 싯달타 왕자가 진리를 찾아 왕궁을 떠날 때 왕자를 따라 나왔습니다.

찬나는 싯달타 왕자가 붓다가 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구가 되었습니다.

그 때 위빠사나 수행을 매우 열심히 했지만 이상하게도 도과의 첫 번째인 수다원에도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비구들에게로 가서 무상과 고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도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무려 40년 이상이나 노력을 하면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통찰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과의 첫 번째 단계에 조차도 이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찬나는 물질이 무상하며 느낌과 지각과 행과

의식 또한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아를 대상으로 할 때면 마치 높은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서

어느 순간이라도 곧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오온이 무아라면 그 자신을 도대체 누구로 여겨야 하며

도대체 무엇을 피난처로 의지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아 개념이 너무나 확고하여 무아에 대해서 명상을 할 때면

마치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찬나는 도과를 얻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부처님께서 반 열반에 드셨습니다.

낙심과 후회에 젖어 찬나 비구는 이 사원 저 사원으로 옮겨 다니며

다른 비구들에게 가르침과 충고를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난다 장로야말로 그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이라는 생각이 든 찬나는

자신이 머물던 수행처를 떠나 아난다 장로가 계시는 꼬쌈비로 갔습니다.

찬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난다 장로께서는 그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연기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는 것을 간파하셨습니다.

 

아난다께서는 찬나를 위로하고, 부처님께서 만타니의 아들인

까짜야나를 가르치신 방식으로 연기법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연기법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찬나는 드디어 유신견과 상견, 단견을

완전히 뿌리 뽑고 종식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도와 과의 깨달음이 그에게 왔습니다.

 

 

 

 

 

 

마부 찬나가 왕자가 성을 빠져 나가는 것을 도와 주고 있다.

사진http://sharcturus.blogspot.com/2008/05/happy-visakha-2551-be.html

 

 

 

찬나(channa)는 마부이었다. 부처님이 출가할 당시 부처님을 말에 태워서 함께 카필라성을 빠져 나온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런 그가 40년간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였어도 도과의 첫번째 단계인 수다원 조차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이유는 자아개념이 너무 확고한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잘난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또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바로 자신이 부처님의 마부이었다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존심 또한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나는 주인께서 왕성을 떠나실 때 그분과 함께 숲으로 갔었지. 바로 그때 오직 나만이 주인님의 친구였을 뿐 그분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니까.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사리뿟따라든가 마하목갈라나 등이 우리야말로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다.’ 라고 뽐내며 뜰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꼴이라니.”

 

 

이에 대하여 부처님이 찬나를 불러 훈계하는 게송이 법구경의 78게송이다.

 

 

Na bhaje pāpake mitte   나 바제 빠빠께 밋떼

na bhaje purisādhame   나 바제 뿌리사다메

bhajetha mitte kalyāne   바제타 밋떼 깔얀에

bhajetha purisuttame.   바제타 뿌리숫따메.

 

나쁜 벗과 사귀지 말라.

저속한 자와도 사귀지 말라.

좋은 친구를 사귀고

덕 높은 성자와 함께하라.

(법구경 78게송)

 

 

유신견에 뿌리박은 자만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설령 그가 말을 건다고 해도 대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아상이 깨지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찬나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아상을 깰 수 있었다.

 

내가 누군데!”하며 잘난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말을 걸어 오더라도 대꾸를 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답한다면 불선심도 짓지 않을 뿐더러 아상을 깨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무명과 갈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만, 자만, 아상은 내가 누구인데 감히하는 유신견에 기초 하는 불선심이다. 이런 유신견이 있는 한 결코 수다원의 도와 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다원이 된다는 것은 범부를 옭아 매고 있는 열가지 속박중에 유신견, 법에 대한 의심, 개금취견의 세가지 족쇄를 풀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따라서 일곱생이내에 해탈 하여 다시는 태어 날일이 없는 성자의 반열에 들어 가는 존재를 말한다.

 

수다원의 도와 과를 이루어 열반과 해탈에 이르게 하는 첫 관문인 유신견은 영원한 자아가 있어서 세세생생 몸만 바꾸어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상견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이라는 단견과 더불어 가장 무섭고 위험한 견해이다.

 

그 정도를 무명과 갈애보다 더 무섭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아라한 도를 얻어야만 무명이 완전히 뿌리 뽑히고, 갈애는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되고자 하는 열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라한 보다 낮은 단계에서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명이 있을지라도 아라한 보다 낮은 세단계에서 도와 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유신견을 가지고 있다면 수다원의 도와 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유신견이 무명보다 더 심각한 번뇌로 보는 것이다. 바로 이 유신견이 무명뒤에 숨어서 무명을 움직이는 자아인데 그 것은 보통 내가 있다거나 내가 누군데!” 하는 식으로 표출 된다.

 

숫따니빠따의 보석경에서

 

유신견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경에 나온다. 거의 부처님의 원음에 가깝다는 가장 오래된 경전인 숫따니빠따의 보석경(寶石經,Ratana-sutta, 寶經, 보배경) 9번째와 10번째 게송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하였다.

 

 

보석경(寶石經, Ratana-sutta, 寶經, 보배경)

 

첫번째 게송

뻐알리어 원문

우리말 음역

우리말 해석

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야니다 부따니 사마가따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중생들

 Bhummāni vā yāni va antalikkhe

붐마니 와 야니 와 안딸릭케.

천인이든 사람이든 언제나 행복하길!

 Sabbe va bhūtā sumanā bhavantu,

삽베 와 부따 수마나 바완뚜

그대들은 내 말을

 Athopi sakkacca sunantu bhāsitam.

아토삐 삭깟짜 수난뚜 바시땅

귀담아 들으라.

 

아홉번쩨 게송

뻐알리어 원문

우리말 음역

우리말 해석

ye ariyasaccāni vibhāvayanti

예 아리야삿짜니 위바와얀띠

부처님의 깊은 지혜 훌륭히 설해진

gambhīrapaññena sudesitāni

감비라빤네나 수데시따니

성스러운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니

kiñcāpi te honti bhusappamattā,

낀짜삐 떼 혼띠 부삽빠맛따

설사 그들에게 방일함이 있더라도

na te bhavam atthamam ādiyanti

나 떼 바왕 앗타망 아디얀띠

여덟 번째 입태는 갖지 않으리.

Idampi Buddhe ratanam panītam,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상가는 이 세상 으뜸가는 보배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이러한 진리로 그대들 행복하길!

 

 

열번째 게송

뻐알리어 원문

우리말 음역

우리말 해석

sahāvassa dassana-sampadāya,

사하왓사 닷사나삼빠다야

수행으로 통찰지혜 얻게 된 이들은

tayasu dhammā jahitā bhavanti

따야수 담마 자히따 바완띠

‘유아견(有我見), (에 대한) 의심,

sakkāyadihi vicikicchitanca,

삭까야딧티 위찌낏치딴짜

의식(儀式)에의 집착‘인

sīlabbatam vā pi yadatthi kiñci

실랍바땅 와 삐 야닷티 낀찌

세 가지 사견이 단번에 제거된다.

catūhapāyehi ca vippamutto,

짜뚜하빠예히 짜 윕빠뭇또

이로써 여섯 악행 범할 일 없으니

cha cābhithānāni abhabbo kātum

차 짜비타나니 아밥보 까뚱

사악도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Idampi Buddhe ratanam panītam,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땅

상가는 이 세상 으뜸가는 보배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이러한 진리로 그대들 행복하길!

숫따니빠타(Sn 2.1) 와 쿳다카빠타((Khp 7)에서

 

 

 

 

2010-04-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