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업대로 수명대로 사는 세상, 대범천은 왜 수다원을 부러워할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0. 4. 22. 14:35

 

업대로 수명대로 사는 세상, 대범천은 왜 수다원을 부러워할까

 

 

 

 

 

모든 일은 순식간에

 

모든 일은 순간에 발생된다. 일단 발생 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고, 전혀 다른 상항에 처하게 된다. 그 상황이 행운이 될 수도 있지만 불행도 될 수 있다. 행운이라면 행복한 상태로서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고, 불행한 상태라면 ()이 나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운이란 무엇일까.

 

운은 운수(運數)’라고도 말하는데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라고 국어사전에 풀이 되어 있다. 여기서 기수는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의 운수를 말한다. 운은 영어로 luck, fortune, chance등으로 표현 되는데 행운과 불운, 운명, 우연등을 말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운이 돕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말인데 흔히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또는 내 뜻대로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이다. 그런 좋은 예가 운전을 할 때 일 것이다.

 

신호를 잘 지키고 전후방을 잘 살피면서 안전운전과 방어운전을 하면서 달려 가지만 뒤에서 받아 버리면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크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억울한 일이 될 것이다.

 

가까운 원인, 먼 원인

 

실력은 되는데 잘못 선택해서 대학입시에 떨어질 수 있다. 또 충분한 실력이 있는데 입사시험이나 공개입찰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 운이 없다고 말한다.

 

때로는 억울하다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억울한 일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외부적 요인으로 인하여 당하는 경우 일 것이다. 이번 천안함침몰사건으로 사망한 병사들이나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동승하여 모두 사망한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억울 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것도 생사와 관련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하늘 탓또는 신의 뜻으로 돌린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한 일이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유일신교에서는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리지만 불교에서는 업과 관련된 과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모든 일은 원인이 선행하여 그에 대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인과법으로 보기 때문이다. 배가 침몰한 것도 어떤 원인이 있어서이고, 자동차가 전복 된 것도 어떤 원인이 있어서 라고 보는 것이다.

 

배가 침몰한 가까운 원인은 어뢰에 맞았거나 좌초에 의한 것이다. 또 자동차가 전복된 가까운 원인은 운전자가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 하였기 때문이다. 하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있게 되기 까지 먼 원인도 작용 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등 여러 원인이 얼키고 설켜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억울 하게 죽게 된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는지

 

우리나라 국민들의 기대수명이 평균 80.1세이다. 그런데 그 때 까지 살라고 어느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1/4변사체로 발견 되는 사고사라고 한다. 그 중에 1/4은 사고 원인도 밝혀 지지 않는 원인불명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마저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몇 년은 커녕 6개월도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서 원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앞날도 6개월은 커녕 당장 내일도 예측 할 수 없다.

 

뉴스에 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남의 일 같지만 나에게도 벌어 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불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오늘 밤 잠들면 내일이 올지, 내생이 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늘 밤 잠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내일이 온 것이고, 다른 환경에 와 있다면 다음생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북방대승불교에서 통용 되기 힘들 것이다. 대승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죽은 다음에 49일간의 중유(中有)’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방 테라와다 불교의 전통에서는 죽은 다음에 중유 없이 곧바로 내생이 결정 되기 때문에 내생이 온다라고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은 업대로, 정해진 수명대로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래 산 다음에 찾아 오는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애써 피하려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죽는 사람들이 있고 그 것도 사고로 죽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래도 죽음은 나와 상관 없고 아직 먼 일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죽음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다. 언제 어떻게 엄습할지지 아무도 모른다. 죽는 순간 마지막 죽음의 마음이 소멸 할 때 우주 또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왜냐 하면 한 존재에 있어서 마음이 없으면 외부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존재들이 느끼는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 간다. 그런데 죽는 다고 다 끝나는 것일까.

 

초기불교에 따르면 죽자 마자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고 한다. 전생의 마음의 과보가 다음생으로 이어져 새로운 존재로 재생 하여 윤회 하는 것이다. 그 존재는 전생의 존재와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다르지도 않은 존재이다. 또 몸만 바꾸고 자아는 그대로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업에 대한 과보를 이어 받아 태어난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는 천상에 태어나고, 또 어떤 존재는 지옥과 같은 비참한 곳에 태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그 존재가 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세계에 태어나기에 적합한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 업을 지은 것은 마음이다. 정신적 행위가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분류한 세계가 31가지나 된다. 이런 31가지 세계중에 자신이 지은 업대로 사는 세계가 인간을 포함한 사악도이고, 수명대로 사는 세계가 욕계천상을 비롯한 색계, 무색계 천상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은 자기가 지은 업대로 살아야 하고,

천상에 사는 존재는 자기가 사는 세상의 수명대로 살아야 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에 사는 존재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축생을 포함한 미물유정들은 언제 잡혀 먹을지 늘 두리번거리고 경계 하며 살아 간다. 아귀는 배가 고파 언제 죽을 지 모른다. 아수라는 싸우다 죽을 수 있다. 지옥에 있는 중생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지 모른다. 그러나 업에 대한 과보가 끝나지 않는 한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 할 것이다.

 

불교에서 세상이란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기대수명이 있지만 천수를 누리다 품위 있고 존엄하게 살다 가는 경우 보다 병원 응급실에서 죽는지 조차 모르고 죽어 가거나, 변사체로 발견되어 사고사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에 사는 존재들은 수명이 보장 되어 있다. 잡아 먹혀 죽거나, 싸우다 죽거나, 사고로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생에 선근을 심고 공덕을 쌓은 과보로 태어난 세계에서 보장된 수명을 살다 가는 것이다. 그 수명은 얼마나 될까.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참고 하였다.

 

 

세상(Bhumi,부미)

세 상

영 역

수 명

감각기관

무색계

4

 

31

비상비비상처천

84000 대겁

 

30

무소유처천

60000 대겁

(마노)

29

식무변처천

40000 대겁

 

28

공무변처천

20000 대겁

 

색계

16

4

 

27

정거천

색구경천

16000 대겁

안이의

26

선견천

8000 대겁

 

25

선현천

4000 대겁

 

24

무열천

2000 대겁

 

23

무번천

1000 대겁

 

22

무상유정천

500 대겁

아이비설신

21

광과천

500 대겁

안이의

3

 

20

변정천

64 대겁

 

19

무량정천

32 대겁

 

18

소정천

16 대겁

 

2

17

광음천

8 대겁

 

16

무량광천

4 대겁

 

15

소광천

2 대겁

 

초선

14

대범천

1 무량겁

 

13

범보천

1/2 무량겁

 

12

범중천

1/3 무량겁

 

욕계

11

육욕천

11

타화자재천

16000천상년

안이비설신의

10

화락천

8000 천상년

 

9

도솔천

4000 천상년

 

8

야마천

2000 천상년

 

7

삼십삼천

1000 천상년

 

6

사대왕천

500 천상년

 

인간

5

인간

정해지지않음

안이비설신의

(또는 부분적)

악처

4

아수라계

정해지지않음

안이비설신의

3

아귀계

정해지지않음

 

2

축생계

정해지지않음

 

1

지옥

정해지지않음

 

 

 

 

이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욕계에서부터 무색계에 걸쳐 31개의 세계가 있는데, 이들 세계는 한 존재가 자신이 태어나기를 원해서 가는 세계이다.

 

삼계와 감각기관

 

색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선정수행을 하면 된다. 그런데 색계 세상은 욕계세상과 달리 남녀 구별이 없고 물질적인 즐거움을 바라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6가지 감각기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 눈()과 귀()와 마음(마노)3가지 기능만 가지고 태어 난다.

 

무색계의 경우 보는 것과 듣는 것 마저 염오하여 오로지 마음의 문을 통해서 만 인식하는 중생으로 태어난다.

 

이와 같이 색계와 무색계의 중생들이 여섯감각기관중의 일부가 결여 된채로 태어나지만 욕계천상에 사는 중생들은 모두 완전한 감각기관을 갖는다. 그래야 최고의 즐거움과 최고의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섯감각기관을 모두 완전하게 가지고 태어나지만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와 같은 4악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감각기관이 모두 완전하다. 그 이유는 감각기관이 완전해야 모든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경우 감각기관이 완전 할 수도 있고 불완전 하게 태어 날 수 도 있는데 그 것은 업에 따르기 때문이다.

 

죽어야 사는 존재

 

그런데 재미 있는 세계중의 하나가 무상유정천(無想有精天)이다. 무상유정이란 말은 인식이 없는중생이라는 뜻이다. 안이비설신의의 6가지 감각기관중 에서 의(마노, 마음)가 없는 것이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에 부딪쳐야 마음이 일어나는데 마노의 문이 없으니 아예 마음이 일어 나지 않는 것이다. 무상유정천에는 어떤 존재들이 태어나는 곳일까.

 

이들 중생들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에 부딪쳤을 때 마음이 일어 나는데 그 마음을 내고 또 인식 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한 탐욕을 제거 하는 제4선정의 수행을 닦게 된다. 비록 생명이 있는 육체를 가졌을 지라도 마음이 일어 나지 않는 세계에 태어 나기 때문에 인식기능이 없는 무상유정천에 태어 나는 것이다.

 

무상유정천에 사는 중생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몸만 있고 마음이 없기 때문에 죽은 듯이움직임이 없다. 이를 두고 마치 나무로 조각한 상과도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500대겁을 보내는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되는데 그 때서야 의식이 깨어 인식 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무상유정천의 중생들은 죽어야 살아 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거꾸로 보내는 곳이 무상유정천이라 볼 수 있다.

 

84천대겁을 살아도

 

업에 따라 수명도 결정된다. 천상에 사는 존재들은 수명이 보장 되어 있어서 수명대로 살지만, 인간 이하 4악도의 중생들은 업대로살기 때문에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

 

천상에 사는 존재들은 수명대로 산다는데 과연 얼마나 오래 살까. 천상 중에 욕계천상의 경우 열심히 보시 하고 지계하면 태어나는 곳이다. , 도덕적인 삶과 봉사하는 삶을 살아 가는 존재들은 욕계천상에 태어나서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그런 욕계천상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바로 위이면서 동시에 욕계육욕천 중의 가장 아래의 천상이 사대왕천인데 이 천상에 사는 중생의 수명은 ‘500천상년이다. 이를 인간년으로 환산하면 ‘9백만년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계산 하면 욕계천상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타화자재천의 경우 무려 ‘92억 인간년에 해당 된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 산다는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에 사는 중생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무려 84천대겁이라 한다. 84천대겁은 얼마나 오랜 기간일까. 지구가 몇 번 생겼다가 없어져도 그들은 그대로 거기에 있을 정도로 오래 산다고 한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부처님도 출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법이 있는 시대에 태어 나지 않아서 선정수행으로만 최고의 경지에 올라 갔기 때문에 죽으면 어디에 태어 날지 모른다.

 

비상비비상처에 사는 중생이 비록 84천대겁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수명대로 살지라도 부처가 출현한 시대나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수행을 하지 않으면 결코 윤회계를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수다원을 부러워할까

 

천상에 사는 존재들은 수명이 다하여 죽게 되었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떤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부러워 하는 존재가 수다원이라는 것이다. 왜 수다원일까. 그 것은 일곱생이내에 윤회를 끝내기 때문이다.

 

수다원이 되려면부처님이 출현 하여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에 수행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수다원의 도와 과를 얻게 되는데 중생을 속박 하는 열가지 족쇄를 풀어야 한다. 그 중 가장 첫 번째 사항이 유신견의 극복이다. 내가 있다는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한 결코 성자의 반열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수다원이 되면 가장 부러워 하는 존재가 색계 초선천의 대범천이라 한다. 대범천은 수명이 1무량겁으로서 대겁은 아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색계초선천은 고대 인도의 바라문의 신인 브라흐마(범천)을 초선에 경지에 배대 시켜 놓았는데 색계 초선까지 불에 의하여 주기적으로 파괴 된다. 파괴되고 난 다음에 대범천이 위의 천상에서 떨어져 내려 왔을 때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 한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창조신도 수명이 다되면 죽어서 더 아래 세상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런 윤회과정을 알고 있기에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대범천은 두려움에 떤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범천이 가장 부러워하는 존재가 바로 수다원이라는 것이다.

 

행운의 시대에

 

천상은 항상 즐거움과 행복만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는 수행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너무 행복해서 수행을 할 마음이 일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지옥과 같은 4악도에서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역시 수행을 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만이 생노병사와 희로애락이 있어서 수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출현 하기 이전에는 선정수행만 있었다. 그래서 도달 할 수 있는 경지가 비상비비상처이었으나 부처님이 출현하여 정법을 펼치면서 불사의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런 행운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왜 행운의 시대라 할까. 과거 7불 중에 네번째 까꾸산다 붓다부터 고따마 붓다까지 내리 네분의 부처님이 현겁에 출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부처님들이 한 결 같이 강조 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Sabbe sakhārā anicca] ti [삽베 상카라 아닛짜]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싸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조건지어진 현상은 아닛짜라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7)

 

 

[Sabbe sakārā dukkhā] ti [삽베 상카라 둑카]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사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조건지어진 현상은 둑카라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대해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8)

 

 

[Sabbe dhammā anattā] ti [삽베 담마 안앗따]

yadā paññāya passati 야다 빤냐야 빠싸띠

atha nibbindati dukkhe 아타 닙빈다띠 둑케

esa maggo visuddhiyā 에사 막고 위숫디야.

 

모든 담마에는 자아가 없다고

내적 관찰의 지혜로써 이렇게 보는 사람은

둑카에 대하여 싫어함을 갖나니

오직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9)

 

 

이 게송에서 아닛짜(anicca)는 무상을 말하고, 둑카(dukkhā)는 괴로움을, 아낫따(anattā)는 무아를 말한다.

 

피난처가 되는 것

 

지금 아무리 고급아파트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달콤 하고 맛있는 음식과 편안하고 보드라운 잠자리를 가졌다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으로 사는 한 수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은 업대로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수행을 하여 수다원의 도와 과를 얻었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을 창조 하였다고 착각 하고 있는 대범천이나 84천대겁을 사는 비상비비상처의 존재들도 수다원이 되지 못하면 범부중생(뿌투자나, puthujjana)에 지나지 않는다.

 

범부중생이란 3계와 6도를 끊임 없이 방황하는 존재로서, 천상이나 인간. 재가자나 출가자를 막론 하고 수다원의 도와 과를 얻지 못하였다면 다 똑은 존재를 말한다.

 

수다원의 도와 과를 증득하여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 같은 성자의 반열에 들어가야만 공양할 자격이 있다. 그런 성자들을 복전(福田, 뿐야켓따, punna-khetta)이라 한다.

 

복전은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귀의의 대상이 된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믿고 의지 하는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

 

 

 

2010-04-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