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왜 진작 몰랐을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후회하는 법구경‘마하다나의 아들'

담마다사 이병욱 2010. 5. 2. 10:03

 

왜 진작 몰랐을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후회하는 법구경마하다나의 아들 이야기

 

 

크게 잘못 되었다고 느꼈을 때

 

아침에 잠에서 깨어 크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런 후회의 감정을 느끼면 매우 심정적으로 매우 쓰라림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후회를 일으키는 요인이 알면서도 행한 것이 있는 반면에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지금 매출이 줄어 들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고객이 떨어져 나가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관행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느낄 때는 이미 후회와 근심과 탄식이 생겨 났을 때 이다. 그 때서야 원인이 무엇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져 보게 된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원인을 찾아 내고 다음부터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 한다.

 

비단 일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과정에 있어서 어느 날 크게 잘못 되었다고 느낄 때는 이미 근심, 탄식, 슬픔, 비탄의 감정이 생겨 났을 때 이다. 현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감정이 일어 나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당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모르고 지은 죄가 알고 행한 죄보다 더 무겁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끝자락에 와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이 맞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제서야 후회하고, 탄식하고, 슬픔에 잠긴다. 좀 더 오래 전에 살아 가는 방법에 대하여 알았더라면, 주위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하는 자기연민이자 자기학대의 감정이다. 이제까지 자기방식대로 또 되는대로 살아온 사람들은 스승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스승은 인생에 대하여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일 것이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겪은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생생하다. 그런 이야기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보다 노인들의 이야기가 좀 더 현실적으로 마음에 다가 올 수 있다.

 

삶에서 희로애락을 다 겪고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노인의 이야기야말로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애써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똑 같은 전철을 되 밟게 되는 것이다. 지혜 있는 노인들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허황된 욕심을 버려라!” 그러나 무언가 부족하다. 그래서 종교를 기웃거리게 된다.

 

왜 진작 몰랐을까

 

불교를 접하면서 느끼는 감정 중의 하나는 왜 이런 좋은 법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하고 탄식하는 것이다. “좀 더 오래 전에 이런 법을 알았더라면 내 인생이 이러지는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안도감이 교차 하는 것이다. 적어도 대승불교를 접할 때 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그런데 초기불교를 접하면서 왜 진작 초기불교를 접하지 못하였을까하는 아쉬움과 함께 초기불교를 진작 접했더라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후회감이 또다시 교차한다. 그래서 불교는 좋은 것이다. 대승불교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초기불교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직접설하신 내용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하시던 말씀을 부처님의 제자들은 경전으로 남겼다. 그런 경전을 보면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또 주제별로 설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경전 중에 법구경을 보면 인생에서 부딪치는 고민이 다 들어가 있는 듯하다.

 

법구경의 423개의 게송이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주제별로 되어 있다. 지금 늙어가는 것이 아쉽다면 늙어감(Old Age, Jarā-vaggo)’이라는 장을 보면 된다. 분노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분노(Anger (Kodha-vaggo)’, 욕망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욕망(Thirst, Tahā-vaggo)’을 보면 된다. 이 외에도 행복, 마음, 진리등 다양한 주제가 있어서 한번만 읽어 보아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초기경전을 접하게 되면 좀더 오래 전에 알았더라면또는 더 젋었을 때 알았더라면하고 탄식 하게된다. 그런 경전을 읽는 다는 것은 지혜로운 노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이미 그 경전 안에 어떻게 살아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경전이 수천년 동안 전승 되어 왔음에도 불구 하고 사람들은 그런 경전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른채 생을 마감한다. 설령 알았더라도 인생의 끝자락에서 발견하였다면 얼마나 억울 할 까.

 

날개 부러진 늙은 왜가리처럼, 힘이 다해 떨어지는 화살처럼

 

부처님의 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부처님법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부처님당시나 지금이나 후회하고 슬픔과 탄식과 비탄에 잠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온다. 아마 미래의 세상에서도 마찬 가지일 것이다. 그런 좋은 예가 법구경의 인연담에 있다.

 

법구경 게송 155 156에 대한 마하다나의 아들 이야기(The Story of the Son of Mahadhana)’가 바로 그것이다.

 

 

마하다나의 아들 이야기

 

부처님께서 미가다야 숲속에 계시던 때, 바라나시의 부호 마하다나의 아들과 관련하여 게송 155번과 156번을 설법하시었다.

 

마하다나는 바라나시라는 큰도시에 사는 부호였는데, 그의 아들은 어렸을 때 공부를 즐기지 않았다. 그의 아들은 나이가 들어 어떤 부잣집 딸의 사랑을 받아 결혼했다. 아들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쪽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 두 사람에게 황금 팔십만 냥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남겨 주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너무나 어리석어서 그 재산을 지키거나 불려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낭비를 일삼는 것이었다. 그들은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하지 않고 다만 친구들과 어울려 쾌락에 빠져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많던 재산도 바닥이 나서 마침내 땅과 집까지 팔게 되었고, 그러고도 모자라 가구까지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같이 그들이 아주 불쌍한 형편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재산이 많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고 자기들의 쾌락만 추구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버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과거 대단했던 부호의 아들이 거지가 되어 수도원의 양지바른 담쪽에 기대앉아 있는데, 사마네라 한 사람이 자기가 먹다 남은 음식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그때 그 장면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은근히 미소를 띠시었다. 이에 아난다 테라는 부처님께 왜 그들을 보시며 미소를 띠시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아난다여, 저 부호의 아들을 보아라. 그는 일생을 통해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생활을 해왔느니라.

 

만약 그가 어렸을 때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지금 이 도시에서 으뜸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니라. 그리고, 그가 어려서 빅쿠가 되었더라면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며, 그의 아내가 그랬다면 그녀도 아나가미에 이르렀을 것이니라.

 

만약에 그가 청년 시절에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지금 이 도시에서 두번째 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요, 그가 그때 출가하였다면 그는 아나가미가 되고, 그의 아내는 사까다가미가 되었을 것이니라.

 

아난다여, 그가 중년이 되었을 때라도 재산을 잘 키우고 관리한 법을 배웠더라면 그는 이 도시에서 세 번째 가는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요, 그가 그때 출가하였다면 그는 사까다가미를, 그의 아내는 소따빳띠를 이루었을 것이니라.

 

그러니 아난다여, 그는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나 혹은 장년이 되었을 때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느리라. 그랬기 때문에 그는 세상 사는 법을 모르고 재산을 지킬 줄도 몰라 마침내 그 많던 재산을 다 탕진하엿느니라. 그는 출가하여 빅쿠가 되었다면 도와 과를 성취하여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도, 이제는 그 모든 기회를 다 놓쳐 버리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버려진 인생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 두 편을 읊으시었다.

 

 

Acaritvā brahmacariya   아찌리뜨와 브라흐마짜리양

aladdhā yobbane dhana   알랏다 욥바네 다낭

jiṇṇakoñcāva jhāyanti   진나꼰짜와 자얀띠

khīamaccheva pallale.   킨아맛체와 빨랄레.

 

그들은 젊었을 때 청정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가진 재산을 모두 낭비한 지금 실의에 잠긴 모습은

마치 날개 부러진 왜가리가

물고기 없는 마른못에 있는 것과 같다.

(법구경 155)

 

 

Acaritvā brahmacariya   야짜리뜨와 브라흐마짜리양

aladdhā yobbane dhana   알랏다 욥바네 다낭

senti cāpārikhīnāva   센띠 짜빠띠키나와

purāāni anutthuna   뿌란아니 안욷투낭.

 

그들은 젊었을 때 청정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고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마치 힘이 다해 땅에 떨어지는 화살과 같이

지나가 버린 것을 신음하고 탄식할 뿐이다.

(법구경 156)

 

(거해스님의 법구경 인연담에서)

 

 

한 때 대단히 부유한 집안의 부자집 아들이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거지가 되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 그에게  세번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 세번의 기회를 잘 활용 하였더라면 표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세번의 기회

재산관리를 잘 했다면(세간)

출가 하였다면(출세간)

어렸을 때

으뜸가는 재산가

아라한

청년시절에

두번째 가는 재산가

아나가미(아나함)

중년시절에

세 번째 가는 재산가

사까다가미(사다함

 

 

만약 그가 어렸을 때 출가 하였다면 탐진치가 소멸된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고, 청년시절에 출가 하였다면 아나함이, 마지막으로 중년시절에 출가 하였다면 사다함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세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젊은 시절에 쾌락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은 결과, 모든 재산을 탕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생활을 해 온 것이다.

 

그 결과 마치 날개 부러진 왜가리가 물고기 없는 마른 연못에 있는 것과 같고, 힘이 다해 땅에 떨어지는 화살과 같은 비참한 존재가 되어 지난 일을 회상하며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발판 정도는

 

이 인연담에서 노년에 대한 출가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늦은 것이다.공부를 해도 젋어서 공부를 해야 더 높은 도와 과를 얻을 수 있지, 나이가 들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낮은 단계의 도와 과를 얻을 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 수다원의 단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연담에는 중년까지만 언급 되어 있지만 노년에 공부를 하면 수다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록 늦게나마 부처님법을 알아 공부를 한다면 다음 생을 위한 최소한의 발판 정도는 마련해 놓는 것은 아닐까.

 

 

 

 

사진 http://www.pbase.com/kaso/lanka

 

 

 

2010-05-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