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봉은사와 시주금거부운동, 불교개혁의 칼자루는 누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0. 4. 24. 19:07

 

봉은사와 시주금거부운동, 불교개혁의 칼자루는 누가

 

 

총무원과 봉은사의 전쟁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다. 조만간 사찰과 거리에는 연등이 걸릴 것이고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잡은 연등축제 3주 후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불교의 큰 잔치를 앞두고 불교계는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무원과 봉은사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명전이 펼쳐진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공방은 매우 뜨겁다. 주로 총무원을 지지 하는 측과 이에 반발하는 봉은사측으로 양분 되어 있어서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 하여 그야말로 이전투구양상이다.

 

이렇게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장본인은 누구일까. 상식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무원을 지적한다. 총무원이 정치권력에 휘둘려 무리하게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추진한 결과 오늘날과 같이 치유 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고 비난한다.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만든 표면적이유는 포교의 활성화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꿩먹고 알먹고논리가 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정권의 미움을 사고 있는 스님을 제거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부자절을 직접관리하여 막대한 직영분담금을 확보 하겠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시주금거부운동을 한다는데

 

최대 20만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는 봉은사는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이상 상류층이 가장 많이 산다는 강남에 위치 하고 있다. 위치로 보나 신도수로 보나 여타 다른 절과 비교 하여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전통사찰이다.

 

그런데 그런 사찰에 다니는 신도들의 의식수준 역시 여타 다른 절과 비교 하여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 하였다. 비록 조심스럽게 거론 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총무원측의 잘못된 결정에 저항하는 시주금거부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시주금거부운동이 이미 진보적인터넷매체에서도 거론 되었다는 사실이다.

 

봉은사의 시주금은 얼마나 될까. 최근 발표된 보도에 따르면 봉은사의 연간 시주금액은 136억원이라 한다. 이 금액이 불교계에서는 매우 많을지 모르지만 강남에 있는 교회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금액이라 한다. 100억대가 넘는 교회가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봉은사는 목 좋은 강남에 위치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찰중에 봉은사 만큼 큰 돈이 들어 오는 사찰은 찾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종교별 시주금과 헌금은

 

조계종에서 1년에 쓰는 예산이 얼마이길래 봉은사를 탐내게 되었을까. 조계종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연도별 중앙종무기관 예결산을 자료를 보면 2008년도의 일반회계가 189억원이고, 특별회계가 77억원으로 나와 있다. 이 금액만으로 본다면 한국불교를 대표 하는 종단의 예산치고는 그다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계종의 예산은 각사찰로부터 올라오는 분담금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에서 연간 얼마나 많은 액수의 시주금이 들어 올까.

 

지난 2008년도 10월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계종을 포함하여 한국불교의 전체수입이 4700억원이라고 발표 하였다. 이 금액이 무척 많은 것 같이 보여도 개신교와 비교 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비교표를 만들어 보았다.

 

 

2008년도 종교별 수입금액

종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예산

4700억원

37천억원

4천억원

출처; 2008년 바른교회아카데미 발표자료

 

 

 

한국불교의 수입이 47백억원인 것에 비하여 개신교는 무려 37천억원이다. 무려 8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런 금액은 전적으로 신도들의 헌금이나 보시금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 약65%가 연간 360여만원을 내고, 자신의 수입에서 정확히 십일조를 낸다고 하는 사람은 23%에 달한다고 한다. 십일조와 더불어 건축헌금과 같은 각종 헌금을 합하면 가구당 평균 4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연간 37천억원이라는 금액이 나오는 것이다.

 

목사가 부럽다는 어느 스님

 

이런 내용이 발표 되자 어느 스님이 인터넷카페에 올려 놓은 글을 보았다. 개신교신자들과 비교하여 불교신자들의 신행행태에 대하여 비판한 글이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께....

바라는 것은 엄청 많으면서도.....

절의 재정에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의식도 인식도..없이....

약고 약삭빠른 계산으로,

자신의 돈은 마치 살을 떼어 주듯이 아끼고, 뼈를 발라 주듯이 진저리를 침 아끼면서도,

그저 부처님께 은혜는 무한정 받을려 애쓰며,

스님들의 살림살이들에는 도통 관심도 가지지 않은채.

지혜 있는 이야기 들으려고만 애쓰며,

무언가 얻어 갈것이 없는지만 애쓰며,

더 안주는 것에 안타까움들만 가지는

몹쓸 성정들만 가지고 살아 가는듯 합니다.

 

 

불교신자들은 받을려고만 하지 도무지 베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주를 해도 마치 살점이 떨어지는 것 같이 아까워 하며 바라기만 하는 아주 몹쓸 성정들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글의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참 교회 의 재정들이 너무나 부러울 지경입니다.

그들 신자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참여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

.

...그래도  .....기독교 신자들....부럽습니다.

목사들...부럽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고, 교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하는 신자들과 재정적으로 튼튼한 교회의 목사들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라고 쓰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만 이런 글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회에서 들은 이야기

 

실제로 사찰의 법회에서 불자들의 인색한 시주에 대한 법문을 종종 들을 수있다. 그럴 때 항상 하는 말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헌금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잘산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불자들이 대체로 못사는 이유가 시주를 많이 하지 않고 또한 배풀며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시주를 많이 하게 하려는 방편일 수 있으나 불자들의 열등감을 조장 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보시를 강조 한다. 그것도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같은 것이다. 주어도 주었다는 티를 내지 말고 주어라는 식의 보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재보시보다 법보시일 것이다. 금강경에서도 재보시 보다 법보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장식하여 보시 한다 하여도 금강경 사구게를 알려 주는 것 만도 못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자는 법보시하고, 재가자는 재보시를 함으로써 서로 공덕을 지어 나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스님들의 법보시는 없고 신자들에게 일방적인 재보시만 바라는 경향이 농후하다. 바로 이런 점이 교회와 비교 되는 부분이다.

 

법보시와 재보시 관점으로 보았을 때 교회는 이를 철저하게 준수 하고 있기 때문에 헌금이 많이 들어 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절에 돈을 너무 많이 가져다 주어도 안된다는데

 

재보시만 강조 하는 한국불교의 분위기에서 봉은사 명진스님은 지난 3 28일 법회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교회는 (신도들이) 십일조 등으로 돈을 많이 낸다. 그것으로 100억짜리, 200억짜리 교회를 뚝딱뚝딱 막 짓는다. 그런데 우리 불교는 어떤가? 초파일에 한 번만 와도 불자다. 정초에 한 번만 와도 불자다. 그것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너무 절에 돈을 많이 갖다 줘도 안 된다.

 

 

절에 돈을 너무 많이 가져다 주어도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하는 말과 정 반대이다. 왜 그런 발언을 한 것일까. 

 

가정을 꾸리고 재산을 소유 해도 되는 교회의 목사와 달리 출가수행자들은무소유와 청정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래서 머무는 공간자체도 매우 검소 하게 마련이다. 그런 곳에 돈이 너무 많으면 무소유와 청정함을 특징으로 하는 승가공동체의 정신이 훼손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돈이 너무 많아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돈 문제로 인하여 승가사회가 타락 하는 모습은 역사적으로도 보아 왔다. 그런 조짐은 현대라고 해서 조금도 바뀌지 않은 듯하다.

 

최근 조계종에서 추진 하고 있는 승려의 사후재산출연제도같은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원래 스님들은 재산을 모아서는 안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스님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사후에 종단으로 귀속시키자는 유언장 작성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종단에 귀속 한다는 내용이 없이 사망하였을 경우 그 재산은 현행법상 속가의 친지나 친척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속가의 친인척 중에는 타종교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강력히 추진 하고 있는 것이다.

 

재가불자들이 내는 시주금액은 얼마나 될까

 

한국불교에서 재가불자들이 내는 시주금액은 얼마나 되고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까. 미디어 붓다의 이학종 기자가 불교평론에 발표한 한국불교의 시주 현황과 용도에 관한 논문을 참고 하여 표를 만들어 보았다.

 

 

조계종 연간 분담금 내역

총예산

사찰분담금

  

197

164(83%)

98

(60%)

특별 분담금이나 관람료 분담금, 직영 분담금 등 문화재 관람료 사찰이나 유명 기도처

66

(40%)

재가불자들의 시주금

(재로 인한 수입 80%,

순수한 불전함수입은 20%)

 

 

 

조계종의 경우 1년에 사용 하는 예산이 197억원인데 그 중 164억원이 사찰에서 들어오는 분담금이다. 이 사찰분담금 중에 약60%에 해당하는 98억은 문화재관람료나 유명기도처등에서 올라오는 특별분담금직영분담금이다.

 

이들 금액은 조계종을 지탱케 해주는 금액으로서 석굴암, 낙산사와 같이 재정수입을 크게 올리게 해주는 특별분담금수입과 갓바위와 같이 총무원에서 직영으로 관리하는 직영분담금수입에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이 차지 하는 비중은 사찰분담금금액의 60%에 달한다. 이번에 봉은사가 직영분담금수입에 추가 된다면 조계종의 예산은 대폭 늘어 날 것이다.

 

사찰분담금 중 40%에 해당하는 약66억원은 재가불자들이 내는 시주금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중 80% 52억원이 49재와 천도재와 같은 재로 인한 것이고, 나머지 20% 13억이 인등비등 순수한 재가불자들의 푼돈성격의 불전수입으로 인한 분담금이다. 따라서 재가불자들이 푼돈성격의 분담금은 전체 예산 197억원에서 6%밖에 차지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봉은사 직영전환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조계종이 신도들의 순수한 불전함 수입에 크게 의존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낙산사와 같은 4대기도도량등에서 나오는 특별분담금, 갓바위나 강화 보문사와 같이 직영사찰에서 나오는 직영분담금, 그리고 49재나 천도재와 같이 기복적이고 방편적인 방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문화재관리와 템플스테이와 같은 국고지원금에 크게 의존 하다 보니 재가불자들이 내는 푼돈 성격의 시주의 고마움을 모른 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시주가 아닌 특별하게 얻어지는 재원에 의존 하고 있다 보니 재가자가 그다지 대우를 받지 못하고, 포교 또한 활성화 되지가 않는다. 교회와 같이 죽기 살기로목숨 걸고 포교 활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이 공부를 하지 않게 되어 설법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사안일무위도식으로 일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봉은사를 직영으로 전환하는 것이 재정에 도움이 될지언정 결코 포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화재관람료는 언제든지 폐지 될 수 있다. 또 기복과 방편에 치우친 각종 기도나 천도재, 그리고 특별분담금이나 직영분담금등으로 유지되는 한국불교는 남방불교의 확산이나 미국이나 유럽의 불교가 역수입 되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

 

설령 재가자의 시주에 의하여 사찰이 유지 된다고 할지라도 시주현황이 제대로 파악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시주돈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 봉은사의 경우 과감히 재정을 공개 한 것이다. 2007년도 불교역사상 최초로 재정을 공개 하였는데 1994년의 조계종의 종단개혁불사에서 제정된 사찰운영회법을 실천한 것이라 한다. , 사찰 운영에 신도를 참여 시켜 사부대중이 사찰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그 결과 신도도 부쩍 늘었을 뿐만 아니라 재정도 크게 늘었고,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봉은사신도라는 자부심이 생겨 났다는 것이다. 이런 봉은사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 한다면 한국불교의 희망이 보일 것이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에 직영사찰로 지정 되어 성공모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봉은사

 

 

 

부처님당시에도 시주금거부운동

 

봉은사 신도들 중 일부는 시주금거부운동을 생각하고 있다고 매스컴에서 전한다. 시주금거부운동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그리고 부처님법에 어긋나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웁게 부처님당시에도 시주금거부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명한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이다.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이란 부처님께서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계실 때, 그곳의 비구들은 어떤 비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징계를 하고, 징계를 당한 비구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 동조하는 무리들과 함께 심하게 반목을 한 사건을 말한다.

 

꼬삼비에 있는 비구들이 서로 다투자 부처님이 그 곳을 떠나 버렸다. 그러자 신도들은 부처님을 떠나게 한 꼬삼비 비구들에게 공양을 할 수 없다고 맞선다. , 그들을 보아도 인사도 하지 말고, 공경하지도 말고, 걸식을 나와도 공양을 올리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다. 꼬삼비 비구들은 신도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꼬삼비 비구들은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신도들의 시주가 무조건적인 공양이 아니라 승단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에게 시주거부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여 바로 잡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로 보았을 때 시주금거부운동이 결코 반불교적이거나 반 불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개혁의 칼자루는

 

재가불자들이 올리는 시주가 승단의 갈등이나 부패, 그리고 부조리를 지속시키거나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시주를 거부 할 수 있다. 더구나 정치권력에 휘둘려 불교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불자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 하였다면 그런 승가에 시주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는 승단이 건강하게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 시주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종단에 대한 개혁은 누가해야 할까. 일부 스님들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부대중이 힘을 모아야 완성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재가불자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불량품은 구매 하지 않듯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승들에게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불교개혁의 칼자루는 재가불자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201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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