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열반과 극락은 같은 것인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0. 7. 21. 23:54

 

열반과 극락은 같은 것인가

 

 

 

 

 

 

 

얼마전 여당의 대표를 뽑는 경선에서 종가집 며느리가 일은 안 하고 꽃단장만 한다는 말이 나왔다. 뒤늦게 전당대회에 뛰어든 어느 여성국회의원을 두고 같은 당의 경쟁자가 한 말이다.

 

뒤늦게 뛰어든 그 미모의 여성 국회의원은 출마의 변에서 국민을 위해서 나왔다라고 말하였다. 여당에서 말하는 국민은 어떤 국민일까.

 

수 많은 국민이 있지만 여당이 말하는 국민은 또 다른 국민이다. 돈도 많이 벌고 또한 세금도 많이 내는 5%의 기득권층도 국민인 것이다. 반면에 야당이 말하는 이 땅의 대다수의 서민들도 국민들이다. 이렇게 같은 국민을 놓고서 국민에 대한 해석방법이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일이 정치에만 있을까.

 

서로 다른 부처님

 

종교계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신도 부자와 가난한자, 지배층과 피지배층에 따라 다르다. 장로대통령이 매일 기도하는 신과 4대강을 반대하는 단체의 신은 또한 다르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신앙의 불교로서의 부처님과 법의 불교로서의 부처님이 서로 다르다. 그 다른 정도는 신행 뿐만 아니라 내생관도 다르다. 이런 다른 점을 감안 하면 무뉘는 같은 불교인데 실제로 들여다 보면 완전히 다른 종교처럼 보인다. 그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같은 불교라도 교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이 들에게 불성이 있어서 그 성품만 보면 성불 할 수 있다는 여래장 사상을 신앙의 불교라 한다. “나무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과 관음신앙 역시 여래장 계통의 불교이다. 이들 신앙의 이론적 기반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여래장사상의 이론적 배경을 대승기신론으로 보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한마음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 한마음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도 변함없이 있어서 참생명을 유지해 준다고 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진여 또는 진아 또는 법신이라고 한다.

 

이 진여가 때 묻은 것이 아뢰야식인데 모든 번뇌와 망상의 근원이고, 모든 업이 저장 되어 있어서 세세생생윤회하는 근원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비워 내어 내고 닦아 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수행이고 참나를 발견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진여불성을 보는 것이 성불이고, 열반이고, 극락이라고 한다.

 

열반과 극락은 같은 것인가

 

BBS불교방송의 대신기신론 강의(성정스님)에 따르면 열반과 극락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에 대하여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마음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로 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을 하나로 보는 것이 가장 차이가 크다. 마음을 생멸로 본다면 하나의 점들의 연속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마음을 하나로 본다면 선으로 볼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마음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5 12 18계의 세상이 존재 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따라서 열반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열반을 무기(無記)라 한다.

 

반면에 대승불교에서는 한마음으로 보기 때문에 열반이라는 것이 참나가 있는 행복한 곳으로 본다. 이 경우 열반을 상락아정으로 표현 한다.

 

욕계천상과 극락

 

여래장 사상에 있어서 상락아정인 열반과 동의로 취급 되는 극락은 어떤 곳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더 없이 안락해서 아무 걱정이 없는 경우와 처지 또는 장소를 말한다고 표현된다.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기 위하여 한국위키백과를 찾아 보았다.

 

 

극락(極樂)

 

극락(極樂)은 불교에서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佛國土)를 가면 있다고 하는 이상향으로 참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믿고 염불하면 죽어서 극락에 태어난다고 한다.

 

극락에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으며 어떤 번뇌와 괴로움도 없이 평안하고 청정한 세상이다. 선행의 정도에 따라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으로 구분되며 극락에 들어간 사람의 머리에는 꽃이 자라는데 이 꽃이 극락에서 남은 시간을 재는 시계의 역할을 한다.

 

극락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종료할 무렵이면 이 꽃은 점점 시들게 되고 이 꽃이 완전히 시들면 다시 윤회하게 되는데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부자집 자녀 또는 왕족이나 귀족 등)으로 윤회하게 된다.

 

 

열반과 거의 동의로 취급 되고 있는 극락의 개념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한국판 위키백과에 따르면 극락은 고작 욕계 6욕천에 지나지 않는다. 욕계천상이라면 색계나 무색계에 비하여 수명도 짧고, 더구나 남녀가 모두 있어서 인간세상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인간세상이 모든 것을 노고에 따라 얻는 것에 비하여, 욕계천상은 수고 없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점이 가장 차이나는 것이다. 이들 욕계천상의 생활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욕계 천인들의 삶

구 분

  

  

용모

남자는 20세 청년, 여자16세 소녀로 화생

미모로 태어남

기후

극심한 추위나 더위의 고통 없이 항상 적당

최적의 기후

소유

원하기만 하면 바로 나타남.

매우 안락함

천상에서 볼 수 없는 것

나이든 사람, 아픈 사람, 죽은 사람, 장례식, 불쾌한 광경

죽음을 보지 못함

천상에서 힘든 것

절박함, 후회의 감정이 없음.

수행을 하기 힘듬

생로병사와 불쾌한 것을 접할 수 없으므로

죽음의 원인

수명이 다함. 쾌락을 즐기다 음식을 먹는 것을 잊어 버림, 성냄

불꽃이 소멸하는 것처럼 사라져 버림

 

 

 

우리나라의 경우 불자들이 죽었을 때 극락왕생하기를 발원한다. 극락왕생발원은 스님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번 법정스님이 입적하였을 때 사찰에서 공식적으로 49재를 지내며 극락왕생발원을 하기도 하였다. 일반인들이면 모를까 극락왕생을 발원하여 욕계천상에 태어난다면 수행의 목적과 크게 어긋난다. 고대인도의 내세관이 반영된 욕계천상에 태어나기 위하여 세상과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서는

 

한국불교에서 열반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는 극락이 고작 욕계천상 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극락에 대하여 좀더 알아 보기 위하여 일본어판 위키피디아 (http://ja.wikipedia.org/wiki/%E6%A5%B5%E6%A8%82)를 참조 하였다.

 

극락은 아미타불의 정토를 말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수카와띠(sukhaavatii)라 하는데, 수카(Sukhaa)에 왓트(vat)을 붙여서 행복이 있는 곳 또는 행복만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한자어로 수가마제(須呵摩提)로 음역되고, 안양 (), 극락(), 묘락()등으로 해석 된다.

 

아미타경에서 중생의 고통이 없이, 단지 모든 즐거움만을 받기 때문에 극락이라 이름한다라고 써 있지만, 범장문에서는 중생의 고통을 모두 심신의 고통으로 보고, 심신의 고통이 떨어져 나가 행복의 재료만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설명 되고 있다.

 

결국 극락이라는 것은 상대적 입장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사고 또는 팔고와 같은 현실적인 심신의 고통 대신에 행복만 가득한 세계라는 뜻이고, 절대적인 입장으로 보았을 때 불고불락의 세계로서 무위열반계로 표현 된다.

 

극락은 행복만 가득한 세계를 말한다. 극락과 유사한 말은 무엇일까. 극락에 대한 여러 표현은 다음과 같다.

 

 

정토()

극락담궐국(湛蕨)

안양(安養)

무위()

안락()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제지토(諸智土)

청정처(清浄処)

엄정국(厳浄国)

연화장세계(蓮華世界)

대승선근계(善根界)

일승청정무량수세계(乗清浄無量寿世界)

열반성(涅槃城)

진여문(如門)

보토(報土)

 

 

비록 일본 자료이긴 하지만 극락에 대한 여러이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중 정토나 안양, 연화장세계, 진여문등은 익숙한 이름이다. 이런 이름으로 보았을 때 극락이라는 말이 여래장 사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한국판 위키피디아에서 표현된 욕계천상과는 거리가 멀고, 색계천상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색계2선천과 극락

 

색계는 초선 2 3 4선의 네가지 세상이 있다. 각각의 세상의 특징은 삼매의 경지에 따라 분류 된다. 즉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으로 대표 되는 경지이다.

 

심사희락정이란 무엇일까. ()은 빠알리어로 ‘위딱까(vitaka)’라 하고 ‘일으킨 생각’을 말한다. ()는 빠알리어로 ‘위짜라(vicara)’라 하고 ‘지속적인 고찰’을 말한다. ()는 빠알리어로 ‘삐띠(piti)’라 말하고 ‘거친행복’을 말한다. ()은 빠알리어로 ‘수카(sukha)’라 하는데 ‘잔잔한 행복’을 말한다. ()은 빠알리어로 ‘우뻬카(upekkha)’라 말하고 ‘지극히 평온한 상태로서 심리상태가 매우 깊어지는 단계’라 볼 수 있다.

 

삼매의 경지에 따라 색계세상을 분류 한다면 초선은 심사희락정(尋伺喜樂定) 모두 있고, 2선은 심사가 탈락 되고 희락정(喜樂定)만 있다. 3선은 희가 탈락 되고, 락정(樂定)만 있는 상태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4선은 락이 탈락돠고, ()만 남아 있는 경우이다. 따라서 4선의 상태는 지극히 마음이 평온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색계세상

 

 

 

 

 

구분

색계 세상

 

수명

삼매의 경지

핵심용어(키워드)

4

정거천

색구경천

16000 대겁

 

 

선견천

8000 대겁

 

 

선현천

4000 대겁

 

 

무열천

2000 대겁

()

큰과보

무번천

1000 대겁

 

(웨흐빠라, vehpphala)

무상유정천

500 대겁

 

 

광과천

500 대겁

 

 

3

변정천

64 대겁

 

깨끗함

무량정천

32 대겁

락정(樂定)

(수바, subha)

소정천

16 대겁

 

 

2

광음천

8 대겁

 

광명

무량광천

4 대겁

희락정(喜樂定)

(아바, abha)

소광천

2 대겁

 

 

초선

대범천

1 무량겁

 

범천

범보천

1/2 무량겁

심사희락정

(브라흐마, brahma)

범중천

1/3 무량겁

(尋伺喜樂定)

 

출처; 아비담마길라잡이/ http://cafe.daum.net/jetavana, 진흙속의연꽃 편집

 

 

표에서 색계 2선천의 경우 키워드는 광명이다. 무량한 빛으로 빛나는 세계이고 또 이 세계는 기쁨과 즐거움(행복)만이 가득하다.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서 극락의 다른 표현인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와 잘 맞아 떨어지고, 더구나 항상 즐거움만 있는 세계라는 뜻과도 잘 부합된다. 그렇다면 극락이라는 곳은 바로 이 색계2선천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영원에 대한 집착

 

색계는 선정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갈 수 있는 세계이다. 선정수행을 닦지 않고 보시와 지계의 공덕만을 닦았다면 욕계천상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색계2선천이든, 욕계천상이든 행복만이 가득한 곳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세상은 수명이 다하면 다시 윤회할 수 밖에 없다.

 

여래장 사상에서 극락을 열반과 동의로 취급하지만 상락아정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한 결코 윤회계를 벗어 날 수 없다. 상락아정이라는 말 자체가 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계는 욕계천상 아니면 색계2선천이 되기 쉽다.

 

부처님 설한 법에는 상락아정이라는 열반의 개념이 없다. 마음을 생멸로 보아야 법을 무상, , 무아로 통찰 할 수 있어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생멸로 보지 않고 한마음으로 보았을 때 자아를 강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 간다. 즉 영원에 대하여 집착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을 만들고 천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곳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 행복인지 모르고 사는 삶을 행복이라 볼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어떤 이들은 그런 곳을 지옥이라 말한다.

 

부처님이 강조한 것은

 

윤회계를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 한 분이 부처님이다.  만일 부처님이 타 종교처럼 천국이나 극락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 사는 가름침을 폈더라면 지구상에 수 없이 나타나고 사라진 그렇고 그런 종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이 위대한 점은 불사의 문을 연 것이다. 죽지 않는 다는 것은 결국 태어남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삶을 부처님은 초기경에서 강조 하였다.

 

 

 

Diṭṭhiñca anupaggamma,                        딧틴짜 아누빠감마

sīlavā dassanena sampanno                  실라와아  닷사네나 삼빤노

Kāmesu vinaya gedha                         까아메수 위나야 게담

na hi jātuggabbhaseyya puna retīti          나히 자아뚜 갑바새이야 뿌나레띠띠

 

계행과 지혜를 지니는 수행자는
잘못된 견해(자아라는 견해)에 매이지 않으며
감각적 욕망을 다스릴 수 있기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숫따니빠따의 자애경(Karaniya Metta Sutta) 10번 게송>

 

 

mā loka punarāgami.         마아 로깜 뿌나라가미

다시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라

(숫따니빠따의 라훌라경, 339)

 

 

2010-07-2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