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빠알리어와 테라와다의 서부인도기원설, 인도의 웃자인(Ujjain, Ujjeni)

담마다사 이병욱 2010. 8. 24. 23:35

 

빠알리어와 테라와다의 서부인도기원설, 인도의 웃자인(Ujjain, Ujjeni, 웃제니)을 찾아서

 

 

2천년대 들어와 초기불교가 보급되기 시작 하면서 알려진 것이 빠알리어(Pali)이다. 이제까지 범어(梵語)라 불리우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는 알려져 있었지만, 빠알리어는 매우 생소한 언어이다.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와 논장인 아비담마, 주석서인 청정도론이 광범위 하게 확산 되면서 빠알리어 또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빠알리어란 무엇인가.

 

빠알리어란 무엇인가

 

빠알리어는 크게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성전(聖典)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언어체계이다.

 

첫째, 빠알리라는 말은 테라와다 불교의 성전 그 자체를 의미한다. 3차 결집후에 테라와다가 불교의 정통으로 공인된 후 경장과 율장과 논장으로 구성된 삼장이 완성 되었는데, 이 삼장이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라는 말 자체가 삼장을 의미 하는 것이다.

 

둘째, 빠알리어는 기원전 6세기에서 부터 기원후 11세기 경까지 인도에서 사용된 인도 아리안의 민중어인 쁘라끄릿뜨(Prakrit)어의 일종이다. 부처님 당시에 이 민중어로 설법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언어라 볼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쁘라끄릿뜨어가 민중어 이었다면 이와 대비 되는 언어가 범어라 불리우는 산스크리트(Sanskrit)어이다. 고전 산스크리트어는 파니니(Panini)의 문전(文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규정된 완성어이자 인공어이고, 잘 다듬어진 아어(雅語)이고 또한 표준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중어인 쁘라끄릿뜨어는 인위가 가해지지 않은 자연어이자 속어이고 민중어이다. 이들 언어 모두 그 원천을 고대 인도의 베다어(Vedic)에서 유래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4세기 이후 인도본토의 전역에서 학술어와 공영어로 사용하는 풍조가 있었는데 인위적이고 형식적이고 난해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산스크리트 어로 된 대승경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부파불교시대에 각 부파가 각 지역의 민중어로 된 삼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승되지 못하였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대승불교경전 역시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짐과 함께 산실 되었다. 그러나 산실된 산스크리트어문이 최근 여기 저기에서 보물찾기 하듯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여 완전히 전해지고 있는 것은 테라와다불교의 빠알리 삼장이 유일하다. 그런 빠알리어는 어떤 발전단계를 거쳤을까.

 

빠알리어의 발전단계

 

모든 쁘라끄릿뜨어 중에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시대별로 문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빠알리어 뿐이다. 그 발생이래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빠알리어는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구분된다.

 

 

단 계

 

  

장소

1

성전의 게송

B.C 3세기 까지

인도 본토

2

성전의 산문

B.C 100년경 까지

인도 본토

3

성전의 주석서류

5~6세기를 중심으로 그 전후 수백년간

인도 본토 또는 스리랑카

4

후세의 제 문헌

10세기경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미얀마, 타이에서 발달

 

 

1단계는 성전의 게송시기로서 B.C3세기 까지를 말한다. 물론 게송 모두가 1단계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활달하고 순진한 맛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단계는 성전의 산문시기로서 B.C100년경 까지이다. 이 시기의 산문은 문법적이고 문장은 평이하고 활달하다.

 

3단계는 성전의 주석서류와 사서류등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 단계의 빠알리어가 가장 세련되고 정비된 것으로서 그 문장은 명료하고 유창하다. 5세기에 작성된 붓다고사의 청정도론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4단계는 모든 점에서 통일 되지 않은 잡다한 것이다. 이 단계에서 빠알리어는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미얀마, 태국등에서 발달 하였는데,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도 빠알리어와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작위적으로 흘렀다.

 

오늘날 남방 테라와다불교국가의 승려들은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빠알리어가 회화어나 서신어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빠알리어 어휘도 점차 증가추세라 한다.

 

서부인도설로 보는 이유

 

빠알리어가 4단계에 걸쳐서 2천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왔는데, 그 원천은 어디에서 시작 되었을까. 물론 인도-아리안어의 민중어인 쁘라끄릿뜨어의 일부이지만 근원지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서부인도설을 주장한다.

 

부처님이 주로 활동하던 곳이 마가다이었는데, 빠알리어는 같은 쁘라끄릿뜨어 계통인 마가다어와 다르다고 한다. 이는 지역적으로 다르다는 말과 같다. 마가다어가 통용되던 곳은 중부인도이다. 그러나 빠알리어의 기원을 서부인도에 두는 근거로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인도의 여러지방에 존재하는 30여점의 아소까왕의 법칙문 가운데 서부에 있는 길나르 각문의 언어가 빠알리어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둘째, 서부인도의 아완띠(Avanti)국의 수도 웃제니(Ujjeni)가 빠알리어의 원천일 것이라 여겨진다. 그 이유는 웃제니에서 가까운 바르후트(Bharhut)나 산치(Sanchi)의 불교유적에서 B.C200년 전후의 각문언어가 현재의 빠알리어와 가깝기 때문이다.

 

셋째, 현재 알려지고 있는 쁘라끄릿뜨어 중에 서북인도를 원천으로 하는 피샤차어가 빠알리어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넷째, 현재의 테라와다불교가 인도 본토에 있어서 서부인도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서부인도의 웃제니는 테라와다불교의 근거지이었다. 따라서 이 지역의 민중어가 성전어로 채택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서부인도설로 보는 이유는 부처님 사후 보수파계의 불교가 서방인도에 전해지고, 불멸후 백년에 있었던 제2결집에서 서방의 보수파가 동방의 혁신파와 대립하였는데, 이후 보수파가 테라와다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소까왕당시 테라와다의 장로들이 서부인도출신들이 많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실제로 서방에서 테라와다가 번성하였기 때문이다.

 

다섯째, 빠알리불교를 스리랑카에 전한 사람은 마힌다(Mahinda)장로이다. 마힌다장로는 아소까왕의 아들로서 이 곳 서부인도의 웃제니 출신이다. 따라서 그가 서부인도의 지방어를 모국어로 삼아 빠알리불교를 구전에 의하여 스리랑카로 전한  것이고, 이것이 스리랑카의 테라와다 불교의 시작이라 보는 것이다.

 

웃제니는 인도의 어디쯤 위치 하고 있을까. 지도를 찾아 보았다. Ujjeni라는 키워드로 조회하면 인도 남부가 나온다. 그러나 마성스님의 글 동남아 상좌불교의 역사와 현황에서 웃자인(Ujjain, Ujjeni)’이라는 용어에 근거 하여 ‘Ujjain’으로 검색하면 인도 서부에 위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맞다고 본다. 더구나 앞서 언급한 산치(Sanchi) 200Km밖에 되지 않아 더욱 더 확신을 준다.

 

 

 

 

웃자인(Ujjain, Ujjeni, 웃제니)

빠알리와 테라와다 불교의 시발점으로서 서부인도에 위치한다.

빨간 표시의 A지점이다.

 

 

 

마가다어 흔적, “bhikkhave”

 

이렇게 빠알리어의 근원을 서부인도의 웃제니지방으로 보지만, 부처님이 설한 중부의 마가다어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일부 흔적은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비구들이여하면서 법문을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비구들이여할 때 마가다어는 “bhikkhave”이다. 그러나 빠얼리로 한다면 “bhikkhavo”가 된다. 그러나 빠알리 성전에는 마다다어인 “bhikkhave”를 사용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각 지방에 가서 전법하라고 하였을 때 그 지방의 언어로 하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서부인도의 웃제니에서도 웃제니지방의 말로 전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이 서부지방의 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아마도 그 옛날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사모하여 마가다어로 설한 “bhikkhave” 만큼은 옛날 그대로 남겨 두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처님이 원래 마가다어로 설한 부처님의 언어가 테라와다의 중심지인 웃제니 지방으로 비구들에 의해 전승 유지 되는 동안, 점차로 서방어의 영향을 받아 피샤차어의 일종이 되었기는 해도 부처님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원래의 마가다어의 특질을 어느 정도 보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피샤차어가 나오는데 이 언어는 서북인도에서 피샤차족이 B.C6세기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부터 서북인도에 걸쳐서 거주하던 아리안족이 사용하던 언어이다. 이 지방은 이란과 접촉이 많아 언어가 이란어와 아리안어가 섞인 것이 피샤차어이다. 따라서 빠알리어는 서북인도의 피샤차어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민중어인 것이다.

 

이 글은 미즈노 고오겐(水野弘元)빠일리어 문법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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